[시평]전현희 권익위원장의 ‘大罪’
김종민 변호사, 前 광주지검 순천지청장
김영란법 발의 주체인 권익위
文정권 비리 터지는데도 침묵
조폭 가세해 권력 부패 구조화
임기 사수보다 책임 통감해야
권익위 존재 이유도 부정당해
반부패 개혁 없인 미래도 없다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의 대죄(大罪)는 반부패기구 수장으로서 나라가 부패공화국이 돼 가는데도 이를 외면하고 방치한 것이다. 위원장에 취임한 2020년 6월 이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대장동 개발비리, 성남FC 사건, 권순일 전 대법관 재판 청탁 의혹 등 권력형 부패와 비리 사건이 연일 터져 나오는데도 침묵으로 일관한 것이다. 부패는 국가와 사회 모두를 산산조각내는 공동체의 적이다. 부정청탁과 부패를 근절하겠다고 3만 원짜리 식사를 해도 되는지 온 나라가 야단법석인 가운데 2015년부터 ‘김영란법’이 시행됐지만, 크게 변한 것은 없다. 오히려 문재인 정권 5년 동안 조폭까지 가세한 권력형 부패가 구조화했고, 경기지사와 대선 후보 출신의 제1야당 대표가 피의자로 검찰 수사를 받는 참담한 현실이 우리의 모습이 돼 버렸다.
애덤 스미스는 “어떤 국가가 정체 상태에 접어드는 것은 그들의 ‘법과 제도’가 쇠퇴해 지대(地代)를 추구하는 특권층이 경제와 정치를 모두 지배할 때”라고 했다. 이 대표를 둘러싼 권력형 부패 의혹은 우리의 반부패 시스템이 고장 나,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 줬다. 반부패 제도 자체가 유럽 등 반부패 선진국에 비해 20년 이상 낙후돼 있고 공직자와 국민의 ‘부패 인지 감수성’이 낮은 것이 근본 원인이다. 논란이 됐던 문재인 전 대통령 자녀 가족의 청와대 관저 거주 문제만 해도 윤건영 전 국정상황실장은 이를 비판하는 여론에 대해 “친정에 있는데 야박함을 넘어 야비하다”고 했지만, 프랑스였다면 형법 제431-15조의 ‘공공재산유용죄’로서 10년 이하 구금형과 100만 유로(약 13억 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되는 부패범죄임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공직에 재직한 3년 7개월 동안 생활비를 사용하고도 매월 2000만 원씩 모두 8억6125만 원의 예금이 증가한 것이나, 2017년 4억3445만 원의 재산을 신고한 임종석 전 비서실장의 딸이 학비만 연 1억 원이 든다는 시카고 아트스쿨에 유학하며 명품을 걸치고 해외여행을 한 것도 프랑스에서는 모두 당사자가 자금 출처를 소명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그 자체로 형법 제321-6조에 따라 3년 이하 구금형과 7만5000유로(약 1억 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유럽반부패기구(GRECO)의 ‘입증책임 전환 규정’ 도입 권고를 2006년 프랑스가 형소법 개정으로 입법화한 덕분이다. 2015년 국회 법제사법위원이던 서영교 의원의 재판청탁 사건도 유야무야됐지만, 프랑스에서는 형법 제434-9조에 따라 10년 이하 구금형과 100만 유로 이하 벌금으로 처벌되는 중죄(重罪)다.
인간의 선의에 대한 믿음과 별개로 제도는 매우 중요하다. 신뢰에 바탕을 둔 사회제도가 부패하는 것을 못 막으면 국가는 쇠락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끊임없는 제도적 혁신이 필요하다. 프랑스는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정권 시절, 부유세(최고 세율 75%) 도입을 추진하던 주무 장관이 스위스에 비밀계좌를 갖고 있다가 들통난 사건을 계기로 2016년 20년 만에 대대적인 반부패 개혁을 추진했다. 강력하고 독립적인 반부패청(AFA)을 신설하고 공공과 민간 부문을 아우르는 ‘반부패 제도의 세계 표준’을 만들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떤가. 대장동 개발비리, 성남FC 사건의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데도 국민권익위는 침묵으로 일관했고 반부패 주무 부처로서의 역할을 포기했다.
전 위원장은 “임기를 마치는 게 법치주의에 부합하는 일”이라고 임기 사수를 외치지만,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존재 방식이자 법칙이다. 자신의 판단에 책임지지 않는다면 그는 아무것도 아니다. 공공과 민간 부문을 포괄하는 근본적인 반부패 개혁이 시급하다. 2008년 신설된 국민권익위는 수명을 다했다. 존재 이유를 증명하지 못했고, 부패의 심화와 확산을 방치한 책임을 묻지 않으면 안 된다. 강력하고 독립적인 반부패기구를 신설해 반부패전략과 정책 수립, 감독, 제도 개혁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검찰과 경찰, 금융감독원 등 집행기관은 반부패기구와의 유기적인 협력 아래 수사와 조사를 담당하는 역할 분담이 바람직하다. 부패와의 전쟁 없이 국가의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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