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중국의 ‘굴레와 고삐’ 책략

2023. 1. 17.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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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의 하이라이트는 조선 사신단이 청나라 건륭제를 알현하는 대목이다.

칠순의 건륭제는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조선 사신단이 배례를 올렸고 판첸라마는 불상을 하사했다'고 기록돼 있다.

건륭제의 질문에는 주변국 외교전술인 '기미(羈미)책략'이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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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논설고문

‘열하일기’의 하이라이트는 조선 사신단이 청나라 건륭제를 알현하는 대목이다. 칠순의 건륭제는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그대들의 나라는 부처를 공경하는가? 사찰은 몇 곳이나 되는가?” 정사 박명원은 “우리는 본래 불교를 숭상하지 않고 사찰은 서울과 지방에 더러 있다”고 했다. 건륭제는 “곧장 (티베트 불교의 수장인) 판첸라마를 만나 인사를 올리라”고 했다.

사신단은 고민에 빠졌다. 귀국하면 경을 칠 노릇이었다. 연암 박지원은 ‘천자를 공경하는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 예법을 어찌 티베트 승려에게 하란 말이냐며 사신단이 그냥 털썩 앉아버렸다’고 썼다. 하지만 청의 공식 문건과 판첸라마 일대기에는 전혀 다르다. ‘조선 사신단이 배례를 올렸고 판첸라마는 불상을 하사했다’고 기록돼 있다. 실제 이 불상 때문에 성균관 유생들은 ‘사악하고 더러운 물건’이라며 학업을 중단하고 집단행동에 나섰다.

건륭제의 질문에는 주변국 외교전술인 ‘기미(羈미)책략’이 깔려 있다. ‘굴레 기 고삐 미’ 음훈 그대로 굴레를 채우고 고삐를 잡아당겨 교묘하게 지배하는 술수다. 만주족이 믿던 티베트 불교를 높이면서 성리학 조선에 굴욕을 강요한 것이다.

지난주 중국이 한국의 코로나 방역을 때렸다. 웨이보에는 ‘중국인에게 노란 카드를 강제 착용시켜 범죄자 취급을 했다’는 게시물이 누적 조회수 5억 회를 넘었고, 격리 호텔에 침대도 없고 식사도 허접하다는 가짜뉴스가 넘쳐났다. 한국·일본엔 단기 비자를 끊고 거꾸로 미국에는 항공편을 늘리라고 러브콜을 보낸다. 당(唐)·청(淸)시대 기미책략의 판박이다. 돌아보면, 당 태종은 자신이 형·동생을 죽이고 아버지를 감옥에 가두고는 연개소문의 쿠데타를 핑계 삼아 고구려를 침공했다. 같은 시기 토번 제국으로 급성장한 티베트에는 딸 문성 공주를 시집 보내 화평을 애걸했다. 기미책략의 두 얼굴이다.

한국은 대통령이 혼밥 박대를 당해도 ‘중국은 높은 봉우리’라 쩔쩔매던 과거의 정부가 아니다. 지난해부터 중국은 “칩4 동맹에 한국이라도 ‘노(No)’라고 말해 달라”며 소매를 붙잡고 있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기미책략의 이중성에 당당하게 맞서야 한다. 243년 전 열하일기의 비극을 반복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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