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인간의 자유의지는 '상상'에서 시작됐을까

조동찬 의학전문기자 2023. 1. 17.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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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밤의 해바라기 칼럼


추억 속의 '스카이 콩콩'

아버지가 언제 오시는 지를 막내아들은 열 번쯤 물었던 것 같다. 성을 낼 법도 했지만, 어머니는 차분하게 답한다.

"아빠가 오늘은 일이 늦으시는 모양이야. 어서 자렴. 아침에 일어나면 '스카이 콩콩'이 네 머리맡에 있을지도 모르니까."

"엄마, 스카이 콩콩 타면 정말로 구름 위로 날아갈 수 있어요?"

TV 광고에서 '스카이 콩콩을 타고 함께 구름 위로 날아가 보자'며 함박웃음을 짓는 아이들의 말 때문이었을까? 첫째와 달리 평소 별로 보채는 게 없던 국민학교 3학년 둘째 아들의 요청에 아버지는 '올백'이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올백이란 영어단어 'all'과 숫자 '백'이 더해진 말이다.

'국산사자'라고 불리던 국어, 산수, 사회, 자연 과목의 시험이 당시 달마다 치러지고 있었는데 이 시험에서 만점을 받으면 스카이 콩콩을 사주겠다는 것이었다. 어제 치러진 시험 결과는 오늘 발표됐고, 나는 어머니에게 압력을 행사해-아마도 스무 번쯤 졸랐던 것 같다-이 소식을 아버지에게 전달하도록 했다. 아버지가 알기만 하면 된다고 믿었던 데는 이유가 있다.

나와 아버지와의 계약은 몇 년 전 성공적으로 성사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글을 떼면 뷔페에 데려가 준다는 약속을 아버지는 지켰다. 신데렐라의 호박 마차를 타야만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던 온통 유리 벽으로 둘러싸인 앰배서더 호텔 1층의 뷔페를 나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입성했다. 아버지가 오시는 걸 보고 자려고 했지만, 밤이 너무 깊었다. 이불을 머리 위로 올리며, 뷔페식당에서 하얀 천으로 정갈하게 덮인 동그란 테이블 위의 은빛 나이프와 포크를 떠올렸다.

글의 뜻은 모른 채 읽을 줄만 아는 막내가 오뚜기 수프를 먹고 싶다고 했을 때 스테이크를 얹어 주던 아버지의 거칠고 검은손에 이번엔 스카이 콩콩이 쥐어져 있기를 상상했다. 그러자 곧 머리맡이 따뜻해졌다. 늘 따뜻했던 아버지의 손이 마치 닿아있는 것처럼.

뇌가 상상할 때 반응 살펴보니

철수에게 뇌 기능 MRI를 장착한 후 소나무 사진을 보여 주었다. 소나무의 푸른빛을 포착하는 뇌 부위는 물론 풋풋한 솔향을 감지하는 뇌 부위 그리고 식욕을 담당하는 뇌 부위도 활성화됐다. 추석 명절에 솔잎을 넣어 찌었던 어머니의 송편이 철수는 떠올랐던 모양이다. 똑같은 소나무 사진을 보고도 사람마다 뇌 반응 다는 것은 기억과 추억이 다르기 때문이다.

푸른 소나무 사진이 철수의 뇌에 일으킨 물결이 잔잔해지기를 기다린 후 이번엔 철수에게 눈을 감고 푸른 소나무 사진을 상상하라고 주문한다. 솔향기를 감지하는 뇌 부위 그리고 송편의 추억으로 소환된 식욕 담당 뇌 부위가 예상대로 활성화됐다.

그런데 예상을 깨고 푸른빛의 시각을 담당하는 뇌 부위까지 활성화된다. 눈을 감았는데도 말이다. 이번에는 순서를 바꾸어 실험해 봤다. 철수에게 유명인을 먼저 상상하도록 주문하고 뇌가 활성화되는 부위를 표시했다. 그리고 활성화된 뇌가 평온해질 때까지 기다려 유명인의 실물 사진을 보여 주고 뇌가 활성화되는 부위를 점검했다. 그런데 결과는 똑같았다. 실물을 눈으로 봤을 때와 눈을 감고 실물을 상상했을 때의 뇌 반응은 같았다. ▶ 관련 논문 보기
[ http://%20https//pubmed.ncbi.nlm.nih.gov/15183394/ ]

상상의 뇌 반응은 항상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이태원 참사 현장의 사진이나 영상을 유포하지 않는 것은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받을 트라우마를 줄이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그 효과는 제한적이다. 사진이나 영상을 보지 않고 그것을 머릿속에 상상하는 것만으로 똑같은 트라우마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 관련 논문 보기
[ https://www.cell.com/neuron/fulltext/S0896-6273(18)30955-3?_returnURL=https%3A%2F%2Flinkinghub.elsevier.com%2Fretrieve%2Fpii%2FS0896627318309553%3Fshowall%3Dtrue ]

자유의지의 시작은 '상상'

지난 글에서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자유의지는 의식의 범주 안에 있어야 하는데, 자유의지를 이끄는 뇌 파형은 의식보다 앞서 무의식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자유의지가 의식 바깥에 있음은 분명해졌다. 다만 자유의지가 정말로 없는 것인지 아니면 현대 뇌 과학이 아직 못 찾아낸 것인지가 불분명할 뿐이다.

아인슈타인은 1916년 상대성 이론을 통해 중력파를 예측했다. 하지만 이것을 실제로 관측했던 것은 2017년, 101년 후였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실제로 관측하는 것은 더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대성 이론처럼 자유의지에 대한 '상상 이론'이 등장했다.

연구팀은 앞서 선택의 뇌파는 의식보다 먼저 발생하며 그것이 호흡, 날숨과 연동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수많은 변수 중에서 연구팀이 왜 호흡을 선택해 자유의지와의 관련성을 연구했을까?

그 대답은 논문에 기재된 저자의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었다. 제1 저자는 박형동이라고 읽히는 한국 이름이었는데, 특정 종교를 소환하지 않더라도 호흡은 동양 문화의 중요한 명상법이다. 호흡을 고르게 하는 것이 삶을 가다듬는 것이라고 그도 배워왔을 테니까, 선택의 뇌 파형이 호흡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궁금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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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premium.sbs.co.kr/article/K34F9hsBta ]

조동찬 의학전문기자dongchar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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