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에 '바이오' 살짝 붙인 상장기업 4년의 기록
사명에 바이오 붙인 기업 성적표
반짝 상승으로 끝난 사명변경 효과
2018년 대비 35.9% 떨어진 주가
실적만 기업의 가치를 결정하는 건 아니다. 기업이 속해 있는 산업의 전망, 성장 가능성도 기업가치와 주가에 큰 영향을 미친다. 특정 산업의 붐이 일 때 사명을 변경하는 기업이 증가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기업의 가치는 결국 실적을 따라가기 마련이다. 이름을 바꾼다고 기업가치가 높아지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8년 바이오 열풍에 편승해 사명을 변경한 기업들이다.
2435개,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증시에 상장된 종목 수다. 코스피 시장에선 913개의 종목이, 코스닥에선 이보다 많은 1522개의 종목이 거래되고 있다. 수많은 종목의 가치를 매기는 건 주가고, 주가의 가치를 결정하는 건 실적이다. 일반적으로 실적이 양호한 기업의 주가는 상승하고, 그렇지 않은 기업의 주가는 하락한다. 증시 격언 중 '주가는 기업 실적의 그림자'라는 말이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문제는 기업의 주가가 실적으로만 움직이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기업이 속해 있는 산업과 그 산업의 성장 가능성, 기업의 이미지, 브랜드 가치 등 다양한 요인이 주가와 기업의 가치를 결정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회사명도 한몫한다. 기업의 정체성이나 이미지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게 사명이다. 이 때문인지 사명을 변경하는 상장사는 생각보다 많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2018년 80개였던 사명변경 상장사는 2019년과 2020년 95개로 늘어났고, 2021년엔 122개로 더 증가했다.
사명을 변경한 이유로는 회사의 이미지 제고가 36.9%(59개)로 가장 많았다. 뒤를 이어 사업다각화(26.3%·42개), 분할·합병(20.0%·32개), 경영목적 및 전략 제고(11.3 %·18개) 등의 순이었다. 지난해 상반기 사명변경에 나선 상장사도 66개를 기록했다.
회사의 이미지를 높이고, 사업다각화를 위해 상호를 변경하고 있다는 건데, 대표적인 사례가 2018년 국내 증시에 불었던 '바이오 열풍'이다. 당시엔 사명에 바이오만 붙여도 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당연히 사명에 바이오를 붙여 비즈니스 모델을 부각하려는 기업이 많았다. 하지만 주가 상승세는 오래가지 않았고, '무늬만 바이오 회사'라는 비판을 받은 곳도 많았다.
그렇다면 2018년 바이오 열풍에 올라탔던 기업들의 가치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를 살펴보기 위해 2018년 사명을 바꾼 80개 기업을 살펴봤다. 당시 회사명에 제약·바이오·파마·랩스 등 넣어 사명을 변경한 회사는 모두 13개였다.
그중 7개는 사업다각화를 이유로 사명을 변경했고, 5개는 회사 이미지 개선을 위해 사명에 바이오를 달았다. 나머지 한곳은 최대주주 변경을 사명을 바꾼 이유로 들었다. 그중 바이오를 사명에 넣은 13곳의 현주소를 분석했다. 우선 주가를 분석해보자.[※참고: 13곳 중 2021년 상장 폐지된 폴루스바이오팜, 2018년 사명을 두번 변경한 닉스테크(바이오닉스진→한류AI센터)와 태양씨앤엘(케이디네이쳐앤바이오→제넨바이오)을 제외한 10개 기업의 주가를 살펴봤다.]
사명변경 효과는 오래가지 않았다. 10개 기업의 주가는 사명변경 2개월 후 평균 21.4%(사명변경 월 대비) 상승했다. 하지만 2018년 말 평균 주가 등락률은 –15.7%를 기록했고, 2019년 38.3%까지 떨어졌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바이오 열풍이 다시 불었던 2020년 10개 종목의 평균 주가 등락률은 -18.8%로 회복했지만 2021년 -24.5%, 2022년 -35.9%로 또다시 악화했다.
2018년 사명에 바이오를 넣은 10개 기업 중 2018년 대비 2022년 주가가 오른 곳은 코로나19 백신 개발로 주가가 상승한 현대바이오(190.2%)와 지난해 11월 어반리튬으로 사명을 변경한 피엠지파마사이언스(60.9%) 두곳밖에 없었다. 두종목을 제외한 8개 기업의 2018년 대비 2022년 평균 주가 등락률은 -76.3%에 이른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2018년 사명변경의 시작을 알린 곳은 콘돔 제조회사 유니더스였다. 이 회사는 2018년 1월 9일 최대주주가 바뀌면서 사명을 바이오제네틱스로 변경했다. 주가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사명변경 한달 후인 2018년 2월이다.
3자 배정 유상증자 소식에 주가가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고, 6860원(2018년 1월말 기준)이었던 주가가 한달 만에 1만8100원으로 수직상승했다. 상승세는 오래가지 않았다. 5월부터 하락하기 시작한 주가는 연말 8000 원대로 떨어졌고, 2019년 5000원대, 2020년 3000원대로 하락했다.
현재 주가는 1555원이다. 그사이 사명은 경남바이오파마(2020년), 블루베리엔에프티(2021년)로 계속해서 달라졌다. 5년 동안 사명이 3번 바뀌는 사이 주가가 77% 하락한 셈이다.
유니더스보다 사명을 더 많이 바꾼 곳도 있다. 정보보안 전문기업 닉스테크다. 이 회사는 2018년 4월 10일 사명을 바이오닉스진으로 변경했다. 대표이사는 물론 최대주주까지 모두 바뀌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회사는 사업목적에 바이오신약 개발·제조·판매업 생명공학 관련 사업 백신류 및 관련된 진단제 개발·제조·판매업 의약품, 원료의약품 및 의약품의 개발, 제조 및 판매업을 추가하면서 바이오 사업에 뛰어들었다.
2018년 12월 최대주주가 또다시 바뀌면서 7개월 만에 사명이 한류에이아이센터로 변경되면서 바이오 이미지는 사라졌다. 이 회사는 2020년 8월 마이더스 AI, 지난해 7월 세토피아로 사명을 다시 변경했다. 다양한 사명만큼 주가도 롤러코스터를 탔다. 2018년 1월 1만원대였던 주가는 최대주주 변경 소식에 급등세를 탔고, 사명이 바뀐 4월 5만2000원대까지 상승했다.
하지만 연말 주가는 2만5000원대를 기록하며 반토막이 났다. 2019년 들어 주가는 4000원대까지 더 하락했고, 2020년 3000원대를 거쳐 지금은 1000원대(1월 9일 1060원)를 기록 중이다. 2018년 사명 변경 전과 비교하면 주가가 90% 이상 떨어졌다.
통신장비업체였던 암니스는 바이오산업에 진출하며 2018년 1월 31일 사명을 폴루스바이오팜으로 변경했다. 당시 바이오시밀러 산업에 나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하지만 2019년과 2020년 2년 연속 감사의견 거절을 받았고, 2021년 11월 상장 폐지됐다. 이는 기업 가치를 높이기 위해 사명을 바꾸고 사업목적에 유행하는 신사업을 추가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란 걸 잘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정우철 블랙펄자산운용 대표는 "기업의 주가는 결국엔 실적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며 "투자붐이 일고 있는 산업에 어설프게 발을 올려놓는다고 기업 가치가 높아지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사명보다는 경쟁에서 살아남고, 성과를 올릴 수 있는 성장동력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하다"며 "특히 사명을 자주 변경하는 기업은 투자 시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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