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촌주공에 떨고 있는 증권사들
계약률 저조하면 부동산 PF 리스크 전국 확산 불가피
(시사저널=이승용 시사저널e. 기자)
'단군 이래 최대 규모'라는 둔촌주공(올림픽파크포레온) 아파트 분양의 초기 계약률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초기 계약률이 시장 예상치를 밑돌면 사업 추진 과정에서 조합이 조달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의 만기 차환이 어려워지고, 그 여파가 전국 부동산 PF 사업장으로 확산하면서 금융사들의 유동성 리스크가 본격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동안 PF 사업을 적극적으로 확장했던 증권사들이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관건은 초기 계약률 77% 달성
둔촌주공 아파트는 총 1만2032가구가 들어서는 대단지 아파트로 사업 금액만 4조3677억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일반분양 물량은 4786가구로 1월3일부터 17일까지 청약 당첨자들을 대상으로 계약이 진행된다. 지난해 12월15일 마감된 청약에서 평균 경쟁률은 5.45대 1로 부진했다. 때문에 둔촌주공에 청약한 사람들이나 하지 않은 사람들이나 모두 시선은 온통 1월17일까지 청약 당첨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초기 계약률이 얼마나 될지에 쏠려 있다.
둔촌주공 초기 계약률이 중요한 이유는 둔촌주공 조합이 초기 계약자들로부터 받은 계약금으로 1월19일 만기가 돌아오는 7231억원 규모의 PF 자산유동화증권(ABS)을 상환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동산 사업 과정에서 시행사는 건설사업을 수행하기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해 PF 대출채권을 담보로 기업어음(ABCP)이나 전자단기사채(ABSTB) 같은 PF 자산유동화증권을 발행하고 차환을 이어간다. 그리고 분양 과정에서 받는 계약금, 중도금, 잔금으로 이를 순차적으로 상환해 나간다.
앞서 둔촌주공 사업은 지난해 4월 공사비 증액 문제로 잠시 중단됐다가 재개됐고, 조합은 기존 발행한 자산유동화증권 차환을 위해 8월 기존 8250억원의 ABCP 발행을 시도했지만 투자자를 구하지 못해 실패했다.
결국 10월 정부의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인 채권시장안정펀드 지원을 받고 KB증권(5423억원)과 한국투자증권(1800억원)이 주간을 맡아 7231억원 규모의 ABCP를 발행하는 데 성공했다. 대신 금리는 최대 연 12% 안팎으로 기존 발행금리(3.55~4.47%)보다 크게 높아졌다. KB증권은 1200억원을 직접 투자했고 시공사업단인 현대건설(2005억원)과 롯데건설(1710억원), 대우건설(1708억원)이 연대보증을 섰다.
증권가에서는 7231억원을 온전히 갚기 위해서는 1월17일까지 진행되는 초기 계약률 77%를 달성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김세련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세대별 가중평균 분양가 기준으로 계약이 100% 이뤄질 경우 사업지 기준 4조7000억원의 매출이 발생하며 후분양이니만큼 초기 계약금 20%가 회수되기 때문에 9430억원의 현금이 들어오게 된다"며 "이를 바탕으로 7231억원의 PF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계약률은 77% 수준으로 추산된다. 시공사 연대보증과 사업성 고려 시 PF 차환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되지만 차환 실패 시 제2의 PF시장 자금경색 여파가 있을 수 있어 모니터링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정부와 시장이 우려하고 있는 것은 둔촌주공 한 단지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미분양이 대거 발생하면 전국 부동산 PF로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수 있다. 서울 상급지인 둔촌주공에서 미분양이 대거 발생한다면 수도권이나 지방 부동산 시장은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1분기까지 만기를 앞둔 PF 유동화증권(ABCP, ABSTB) 규모는 30조원이 넘는다. 1월에만 16조원에 달하는 ABCP, ABSTB가 만기를 앞두고 있고 2월에도 10조원 이상이 남아있다.
특히 증권업계가 긴장하고 있는 이유는 증권사들이 부동산 PF 및 관련 자산유동화증권 발행 과정에서 매입확약 등 신용공여를 제공한 경우가 매우 많기 때문이다. 차환에 실패할 경우 증권사가 이를 떠안아야 한다는 뜻이다. 비수도권 부동산 관련 PF ABCP 비중이 높은 중소형 증권사의 경우 최근 유동성 위기에 대한 우려가 나오기도 한다. 이들 중소형 증권사는 부동산 개발사업 인허가 단계에서 시행사에 고금리로 단기 대출해 주는 브리지론의 사업 비중이 높은데, 시행사가 본PF 사업으로 진행하지 못하면 브리지론이 부실화하기 쉽다.
국내 신용평가사인 나이스신용평가는 올해 증권업 주요 모니터링 포인트로 부동산자산 부실화에 따른 건전성 및 자본적정성 저하 위험을 지적하고 있다. 이혁준 나이스신용평가 금융평가본부장은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3.25%까지 끌어올림에 따라 진행 중인 PF의 사업성이 크게 하락했다"며 "다수 사업장에서 브리지론의 본PF 전환에 제동이 걸렸고 우발부채가 현실화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둔촌주공 일병 구하기' 나선 정부
정부는 1월3일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 해제 △중도금 대출 보증 분양가 상한 기준 12억원 폐지 △전매제한 기간 단축 △실거주 의무 폐지 등이 담긴 부동산 규제 완화 대책을 발표했다. 이러한 대책을 소급 적용하면서 둔촌주공은 최대 수혜를 입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둔촌주공은 전매제한 8년, 실거주 의무 2년이었는데 전매제한은 1년으로 줄어들고 실거주 의무도 없어졌다. 기존 보유 주택을 입주 가능일로부터 2년 안에 처분해야 하는 의무도 면제됐다. 무엇보다도 둔촌주공 전용면적 84㎡는 분양가가 12억3600만~13억2040만원에 달해 이전까지 청약당첨자들은 중도금 대출이 불가능했는데 중도금 대출 분양가 상한선이 폐지되면서 전용면적 84㎡ 청약자들도 이제 대출이 가능해졌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를 통해 PF ABCP 차환에 어려움을 겪는 사업장에 15조원 규모로 보증도 제공하기로 했다. 미계약이 많아 ABCP 상환이 어려워지면 HUG 사업자 보증 대출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 정책 발표를 놓고 영화 《라이언일병 구하기》에 빗대 '둔촌주공 일병 구하기'라는 말도 생겼다. 정부 입장에서는 둔촌주공 리스크가 금융권 전반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겠지만 둔촌주공 초기 계약률이 얼마나 낮았기에 이렇게까지 파격적인 규제 완화에 나서야 했을까라는 시선도 그치지 않고 있다.
앞서 둔촌주공 청약에 당첨됐지만 정부의 규제 완화 발표 전 계약을 이미 포기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정부의 이번 소급 적용이 불공정하다고 불평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또한 '떴다방이 떴다'는 등의 뉴스를 놓고도 조합이 청약 대상자들을 속여 초기 계약률을 높이려는 언론 플레이라고 보는 시선이 존재한다. 이러나저러나 관심이 둔촌주공 초기 계약률에 쏠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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