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아마노의 거짓말이다” [국영호의 스포츠人사이드 #26]
홍명보(54) 울산 현대 감독은 지난 11일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라이벌인 전북 현대로 둥지를 옮긴 일본 선수 아마노 준(32)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처음에 저와 얘기할 때는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결국은 돈 때문에 전북 현대로 이적한 것이다. 거짓말을 하고 전북으로 간 셈인데, 지금까지 일본 선수를 많이 만나봤지만 역대 최악이다. 처음부터 솔직하게 돈에 관해 얘기했으면 팀에 공헌도가 있기 때문에 협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중요하지 않다고 했던 돈을 보고 이적한 것은 울산 팀이나 선수를 전혀 존중하지 않은 처사다.”
아마노는 하루 뒤, 전북 현대 클럽하우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반박했다.
“홍명보 감독님은 제가 거짓말쟁이고, 돈 때문에 갔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사실과 다르다. 울산과 작년 여름부터 재계약에 대해 협상을 했지만 공식 오퍼는 없었다. 감독님에게 울산에 남겠다고 한 것은 사실이었다. 타이밍을 보면 전북에서 공식 오퍼가 온 하루 뒤에 울산, 홍명보 감독님과 미팅을 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공식 오퍼는 없었다. 타이밍을 봤을 때 계약에 대해 정식적으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전북과는 계속해서 계약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김상식 감독님과 코칭 스태프에서 열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시즌이 마치기 전에 전북이 이미 요코하마와 임대 이적에 대해 협상을 했다. 빅클럽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지는 나 역시도 도전이다. 울산에 남고 싶다는 의사를 계속 밝혀왔다. 홍명보 감독님도 있었고, 이케다 세이고 코치도 있었기 때문에 에이전트를 통해 재계약 뜻을 전했다. 그러나 구단 측에서 정식 오퍼가 없었고, 어떤 제의도 받지 못했다. 재계약에 대한 뜻이 없다고 생각했다.”
홍 감독은 그로부터 나흘 뒤인 어제(16일) 울산 현대 기자회견에서 재반박 하면서 아마노가 ‘신의’를 저버렸다는 듯 얘기했다. ‘신의’는 홍 감독이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중에 하나다.
“(선수 시절) 일본에서 5년 동안 생활을 했고 일본에 많은 친구가 있다. 존경하는 지도자도 일본에 있다. 아마노에게 그런 생각은 했다. 일본에 갔을 때 존경하는 감독이 한 분 계셨는데 그런 감독이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홍 감독이 말하는 ‘일본에 갔을 때 존경하는 감독’이란 니시노 아키라(68) 감독을 지칭한다. 홍 감독이 선수 시절 1999년부터 3년 간 일본 가시와 레이솔에서 활약할 때 지도 받았는데 기량을 꽃피우도록 도움을 받았고, 덕분에 컵대회 함께 우승을 일궜으며 외국인 선수 최초로 주장까지 맡을 수 있었다. ‘은사’인 니시노 감독이 해임되자 홍 감독도 일본 생활을 접고 국내로 복귀했다. 홍 감독은 지난해 우승에 큰 공헌을 했던 아마노에게 니시노 감독처럼 되어주고자 했으나 정반대 상황이 벌어지자 배신감을 넘어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으로 같다.
아마노가 “정식 오퍼가 없었다”며 홍 감독과 울산 구단이 별다른 협상을 하지 않은 것처럼 얘기하자 울산 구단은 아래와 같이 세부 협상 과정까지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 2022년 7월, 울산은 아마노 선수의 에이전트를 통해 2023년 계약 논의 진행
* 2022년 10월 26일, 홍명보 감독, 조광수 코치와 면담 진행 & 조광수 코치와의 개별 면담 추가 진행
* 2022년 10월 27일, 울산 사무국과 아마노 선수 최종 미팅 진행 & 아마노 “잔류의 마음엔 변함이 없다” 개인 조건 합의
* 2022년 10월 31일, 울산은 요코하마 구단에 임대 제안서 전달
* 2022년 11월 3~4일, 3일 울산은 요코하마에 2차 임대 제안서 전달 & 4일 선수 계약서 및 구단 임대 합의서 전달
위 상황을 지켜봤기에 홍 감독은 아마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고, 거친 언사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이후 2022년 11월 20일 아마노가 전북 구단으로 임대 이적한다는 단독 보도가 나온다.
‘양 팀 모두 요코하마에 지급할 임대료 수준은 15만 불로 알려졌는데, 연봉에서 엇갈렸다. 본지 취재에 따르면 전북은 울산이 아마노에게 지급할 연봉 데드라인 수준보다 10만 불을 더 내놓았다. 아마노는 자기 가치를 더 매겨준 전북의 손을 잡았다.’ (스포츠서울)
홍 감독이 “(아마노가) 결국은 돈 때문에 전북 현대로 이적한 것”이라고 결론지은 이유와 궤를 같이 하는 보도 내용이다. 이후 전북 구단은 해를 넘겨 지난 1월 5일 ‘아마노를 요코하마로부터 임대 영입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누군가는 홍 감독이 특정 선수에게 지나친 표현을 했다고 지적하고, 프로는 계약서로 말하는 것이라고도 한다. 일정 부분 맞기도 하지만, 그 보다 중요하고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건 사람과 사람의 관계다. 축구나 비즈니스나 사람 간의 관계고 한번 틀어지면 '재거래'는 힘들다. 홍 감독은 믿었던 선수가 발등 찍는 상황에 거친 발언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변 사람들에게 던졌다. 홍 감독이 평소 자주하는 말이 ‘원칙’과 ‘신뢰’다. 아마노는 기자회견을 통해 본인의 입장을 상세하게 전했고, 거기에는 미처 하지 못한 말과 공개할 수 없는 사정도 있을 것이라 짐작된다. 자신의 가치관대로 이번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이렇게 상황이 흘러가며 양측은 흔히 말하는 ‘아름다운 작별’이 이뤄지지 못했고, 다가오는 K리그1 개막전(울산-전북)에서 ‘최악의 만남’이 이뤄지게 됐다. 결국 2월 25일 열릴 개막전에서는 울산과 전북, 양 팀 선수단은 아마노를 두고 서로 뭉치게 될 것 같다. 홍 감독의 강경 대응에 울산 선수들이 아마노와 어떻게 악수를 나눌지도 관심사다. 경기가 울산문수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만큼 울산 팬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흥미롭다.
[국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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