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AL 현장] 결승 패장보다 5년 귀인으로 남은 박항서 감독의 ‘라스트댄스’
[골닷컴, 태국 빠툼타니] 세상에는 기대와 다른 라스트댄스가 훨씬 많다. 리오넬 메시는 예외적 존재라는 사실을 간과해선 곤란하다. 많은 스포츠 스타의 마지막 춤은 그리 화려하지 않았다. 그래도 상관없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마지막 춤사위가 아니라 긴 시간에 걸쳐 짜인 기억의 매듭이기 때문이다.
16일 저녁 AFF컵 결승 2차전에서 베트남은 태국에 0-1로 패해 분루를 삼켰다. 하노이 원정 1차전(2-2무)와 합쳐 최종 스코어는 2-3이었다. 전반 중반 허용한 티라톤 분마탄의 장쾌한 중거리포를 결국 극복하지 못했다. 원정 득점 규정 탓에 선제 실점을 허용한 베트남은 두 골이 필요한 상황에서 힘겹게 싸웠다. 태국은 영리하게 달아나면서 대회 2연패에 성공했다.
경기 후, 박항서 베트남 감독은 “먼저 태국과 폴킹 감독에게 축하 말씀을 전하고 싶다”라면서 상대에게 박수를 보냈다. 태국 언론과 팬은 최근 베트남의 급부상을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결승 2차전에서도 태국 팬들은 박항서 감독의 제스처 하나하나에 매서운 야유로 반응했다. 동남아 최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베트남의 기세를 만든 주인공이 바로 박항서 감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태국 축구계는 호평 일색이다. 태국 국가대표팀의 누알판 람삼 단장(마담 팡)도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 축구를 바꾼 인물”이라며 칭찬했다.
이날 경기가 특별한 이유는 알려진 대로다.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 사령탑으로서 치른 마지막 경기이기 때문이다. 2017년 10월 베트남 A대표팀 및 U23 대표팀 감독직에 부임한 이래 박항서 감독은 눈부신 업적을 쌓았다. AFC U23챔피언십 준우승을 시작으로 AFF컵 우승 1회(결승 진출 2회), AFC아시안컵 8강, FIFA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진출(동남아 최초), 동남아시안게임 2연패, 아시안게임 4위 등이다. FIFA랭킹도 줄곧 두 자릿수를 지켰다. 베트남 축구는 박항서 감독의 전후로 극명히 나뉜다.
이런 사연 탓에 대회를 통틀어 박항서 감독은 최고의 관심 대상이었다. 태국에서는 감독보다 억만장자 단장과 주장 티라톤 분마탄의 존재감이 훨씬 크다. 김판곤 말레이시아 감독은 자국 내 최대 클럽과 마찰을 빚어 ‘올인’하지 못했다. 신태용 인도네시아 감독의 최종 성적은 적극적 미디어 홍보 활동와는 거리가 있었다. 박항서 감독이 화려하게 피날레를 장식하느냐가 최대 관심사였고, 대회의 마지막 매치업인 결승전 무대에 섰으니 베트남은 어느 정도 목적을 달성했다고 할 수 있다.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도 결승전 패배에 관한 질문은 거의 없었다. 질문 기회를 잡는 베트남 기자들마다 감사 인사를 잊지 않았다. 5년간 어떤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지, 혹시 아쉬움은 없는지, 앞으로 태국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향후 거취는 정해졌는지 등이었다. 하루 전 열린 M-1 기자회견에서는 한 베트남 기자가 질문을 꽤 길게 했다. 질문을 마치자 현장에서 큰 박수가 나왔다. 어리둥절해 하는 박항서 감독에게 통역자는 “이건 질문이 아니라 5년 동안 감독님께서 하신 모든 일에 대한 감사 인사였다”라며 내용을 전달했다. 결승전 기자회견을 마치고 퇴장하는 동안에도 박수는 길게 이어졌다.
지난 홈 1차전에서 박항서 감독은 “미딩국립경기장에서 마지막 경기였으니까”라면서 베트남 현지 기자들과 단체 사진을 찍었다. 원정 2차전에서는 태국이란 우승팀이 있었지만, 기자회견 시간 자체가 베트남이 훨씬 길었다. 이런 상황을 잘 알기에 주최 측도 베트남의 기자회견 시간 지연을 따로 제재하지 않았다. 박항서 감독은 “의무실에서 선수들과 함께했던 시간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다”라면서 석별의 정을 삼켰다. 그라운드가 아닌 ‘의무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소감 자체가 박항서 감독과 베트남 대표팀 선수단이 얼마나 고생하고 노력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박항서 감독이 제일 마음이 아픈 점도 “선수들과 헤어져야 하는 것”이었다.
2017년 10월 출발한 박항서 감독과 베트남 국가대표팀의 희망 가득했던 비행은 2023년 1월 태국에서 종료되었다. 경기에서 왜 패했는지는 관심 밖이었다. 현장 취재진은 저마다 공개적으로 존경과 감사를 전하느라 바빴다. 태국의 높은 벽을 재차 실감한 날에도 박항서 감독은 여전히 베트남 축구를 여기까지 끌어올린 귀인이자 은인으로서 현장을 떠났다.
사족: 2018년부터 동남아 국가만 출전하는 대회 현장에서 필자는 계속 한국어로 질문했다. 생각해보면 참 신기한 경험이다.
글, 사진 = 홍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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