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안 속아”…개미들의 이유 있는 삼성전자와 ‘헤어질 결심’ [투자360]
‘매도(Sell)’ 의견 전무…‘유지(Hold)’ 5건도 단 한 명 애널리스트가 작성
목표주가마저 현실 크게 벗어나…개미, 연초 1조 넘게 삼성전자 순매도
애널리스트, ‘매도’ 의견 시 기업과 관계 악화…“기업 정보 의존하는 乙”
기업 지급 IB 서비스 수수료, 증권사 중요 수익원…내부 압박에 부정적 보고서 못내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국내 증권가 애널리스트 등 전문가들이 연초부터 삼성전자 ‘주가 바닥론’을 외치며 반등 가능성에 무게추를 싣고 있다. 여기에 새해 들어 국내 증시로 다시 돌아온 외국인 투자자들도 삼성전자 매수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개미(소액 개인 투자자들)들 만큼은 초강력 매도세를 이어가며 전문가들을 상대로 온몸으로 맞서는(?) 모양새다. 지난해 내내 가파르게 하향 곡선을 타는 상황 속에서도 삼성전자 주가에 대한 장밋빛 미래만을 그리던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의 분석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개미들이 국내 증권사들의 분석을 믿지 못하는 이유는 최근 1년여간 발간된 삼성전자 관련 증권사 보고서를 헤럴드경제가 금융정보업체 에프엔가이드에서 제공받은 자료를 토대로 17일 자체 분석한 결과가 잘 보여준다.
에프엔가이드 상에 지난해 1월 1일부터 지난 12일까지 등재된 삼성전자 관련 증권사 종목보고서는 총 246개다. 요약·영문보고서와 삭제된 보고서, 독립리서치 등은 집계에서 제외됐다.
전체 보고서 중 ‘매수(Buy)’ 의견을 낸 것은 240개, ‘강력 매수(Strong Buy)’ 의견을 낸 것은 1개로 매수·강력 매수 의견이 전체의 98%에 달했다. ‘매도(Sell)’ 의견을 낸 보고서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중립 의견인 ‘유지(Hold)’를 제시한 보고서 수는 5개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단 한 명의 애널리스트가 몇 달에 걸쳐 반복해 제시한 것이었다. 사실상 모든 증권사와 소속 애널리스트들이 지난 1년간 계속됐던 삼성전자 폭락장 속에서도 ‘매수’만을 외쳤던 셈이다.
한국거래소 정보데이터시스템에 따르면 삼성전자 최저점 주가(9월 29일·5만2600원)는 지난해 최고점(1월 11~12일·7만8900원) 대비 33.3%나 떨어졌다.
6~12개월 앞을 내다보며 제시한 목표주가마저도 현실을 크게 벗어난 모습이다.
올해 들어 증권사들은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삼성전자의 ‘재고 소진’ 문제 등으로 발생한 ‘어닝 쇼크’가 이미 주가에 선반영됐다며 주가 상승 전 ‘매수’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개미들은 전문가들의 의견과 정반대로 움직이는 모습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들어 개인투자자들은 지난 16일까지 총 1조306억원어치의 삼성전자 주식을 순매도했다.
금융 투자업계 내부에서도 애널리스트들이 특정 기업에 대한 투자 의견을 무조건 ‘매수’로 제시하고, 목표주가를 높여 제시할 수밖에 없는 것은 기업과 주주, 증권사의 이익이란 3박자가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라 본다.
국내 한 대형 증권사 애널리스트인 A 씨는 “부도 위기나 대규모 비리 정황 등으로 회사 경영이 최악의 상태에 놓이는 등 누가 봐도 문제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매도’ 의견은 고사하고 ‘유지’ 의견을 내는 것도 해당 회사와 관계 악화를 각오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주가 전망이 부정적일 경우 ‘매수’ 의견을 유지한 채 ‘목표주가’를 내리는 방식으로 보고서를 작성하는데, 이마저도 해당 기업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외국계 증권사 애널리스트 B 씨는 “질 높은 보고서를 쓰고 싶은 애널리스트들의 입장에선 모든 자료의 정보를 기업이 주는 상황에 ‘을(乙)’의 입장이 될 수밖에 없다”며 “국내 한 중견기업에 대해 ‘매도’ 의견을 냈던 한 애널리스트가 해당 기업 행사에서 배제되는 경우도 있었는데, 하물며 삼성전자는 알아서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기업 주가 전망을 부정적으로 제시할 경우 증권사 내부에서 압박에 시달리는 점도 운신의 폭을 좁히는 요인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업들이 지급하는 기업금융(IB) 서비스 수수료가 국내 증권사들의 큰 수익원인 상황 속에 ‘매도’ 의견 보고서를 받아든 기업들이 증권사와 거래를 끊고 고객 명단에서 빠져나갈 경우 증권사엔 경영상 대형 악재”라고 꼬집었다. 자체 수입 기반이 다양한 관계로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 중인 글로벌 투자은행(IB)들과 국내 증권사들의 입지가 차이 나는 결정적인 지점인 셈이다.
주주들의 눈치 역시 볼 수밖에 없다는 것도 문제다. 국내 중소형 증권사 애널리스트 C 씨는 “소신껏 나홀로 ‘매도’ 의견을 냈다가 실제 주가가 떨어질 경우 해당 기업 주주들로부터 모든 비난의 화살을 맞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황 위원은 “개인투자자들이 보고서를 토대로 기업 정보를 파악해 투자에 나설 때는 투자 의견이나 목표주가 등 결론만 보고 판단해서는 절대 안된다”며 “증권사의 ‘의견’일 뿐이라는 점을 항상 되새기면서 보고서 속에 첨부된 각종 기업 관련 수치와 도표, 자료 등을 자기 나름대로 분석·판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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