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철하게 우아하게 전진하는 이보영의 피땀눈물

아이즈 ize 조성경(칼럼니스트) 2023. 1. 1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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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조성경(칼럼니스트)

사진제공=하우픽쳐스, 드라마하우스 스튜디오

최고에 오르기 위해 견고한 현실의 벽에 대항해 싸우는 투사가 나타나면 '대단하다' 싶다가도 '독하네, 어쩌네' 뒷말이 많아진다. 최고 자리에 오르는 과정이 험난하고, 포기하고 희생하는 것도 생기다 보면 독해지는 게 당연하기도 하다.

지난 7일 첫 방송한 JTBC '대행사'(극본 송수한, 연출 이창민)가 딱 그런 이야기다. 여주인공 고아인(이보영)은 광고회사에서 실력을 인정받기 위해 표독스러운 투사가 된 인물이다. 일을 위해 모든 걸 내던졌다. 자신보다 무능한 사람이 이기는 꼴은 보기 싫으니 제일 먼저 출근해 일하고 밤샘도 일상이었다. 그래서 최고가 됐다. 그런데 남들은 '성공에 미친 돈시오패스'라고 숙덕댄다.

매일매일 전쟁터에 나가는 전사처럼 일했고, 그 덕분에 카피라이터로 시작해 CD(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에도 오르고 스스로 "이기는 게 습관"이라고 말할 정도로 실력으로는 자타공인 업계 1위가 됐다. 여성에 지방대 흙수저 출신이기까지 하다 보니 학벌과 인맥으로 라인이 탄탄한 남성 경쟁자들보다 승진할 확률이 낮았지만 긴 싸움 끝에 유리천장을 뚫고 VC그룹 내 최초 여성 임원 자리까지 꿰찼다. 그래도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는 약과 술을 달고 살 정도로 불안증세에 시달리는 등 고달픔이 없지는 않다. 

사진제공=하우픽쳐스, 드라마하우스 스튜디오

게다가 임원이 되고 보니 그를 둘러싼 싸움은 더 치열해진다. 알고 보니 1년짜리 시한부 임원인 데다, 고아인의 승진이 못마땅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한고비 넘으면 또 한고비가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다. 독기가 잔뜩 오른 고아인이 진정할 틈이 없다. 특히 최창수(조성하) 상무와의 싸움이 점점 더 맹렬해지면서 긴장감이 고조된다. 여기에 VC그룹 3세 강한나(손나은)까지 상무로 입사해 판세를 읽기 더 어려워졌다.

'대행사'는 매회 미션을 클리어해야 하는 게임처럼 고아인이 새로운 위기를 만나고 해결해 나가는 이야기로 흥미진진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그 기저에는 일에 미친 싱글녀가 독기로 최고 자리에 올랐다는 전제가 짙게 깔려있다. 고아인 밑에서 일하는 카피라이터 조은정(전혜진)의 이야기가 대비되면서 이러한 전제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조은정은 맨날 회사에서 늦는 바람에 아들과 한 약속을 어기기 일쑤였다. 아들이 눈에 밟혀 일을 뒤로 할 때면 "성공하려면 미혼이 정답인가"하며 고민했다. 그러다 아들이 엄마에 대한 서운한 마음으로 보이콧을 시작하자 결국 일을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그런 조은정이 남편 앞에서 "저기 멀리 달려나가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뒷걸음만 치고 있다"며 서럽게 울었다. 고아인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이었다. 

사진제공=하우픽쳐스, 드라마하우스 스튜디오

사실 최고 자리를 마다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최고를 상상하며 잠깐은 '그 자리에 오를 수만 있다면 못할 게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 과정이 너무 고단하고 험난해서 섣불리 넘보거나 쉬이 도전하지 못한다. 최고는 실력으로든 자격으로든 자신을 입증해야 하는데 정말이지 쉽지 않은 일이다. 

희생하고 포기해야 하는 것도 너무 많다. 가족이든 건강이든 말이다. 그러니 최고가 되기 위해 독하게 마음을 먹기보다는 스스로가 생각하는 최선에 만족하는 삶을 살게 된다. 이상에 도전하기보다는 현실에 타협하는 것이다. 

'대행사'는 이러한 이야기를 고아인과 조은정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둘 중 누가 더 잘 살았다고 저울질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런 현실을 사는 사람들을 보여주며 잠깐이나마 나는 과연 어떻게 살고 있나 생각하게 해준다. 꼭 여성, 혹은 워킹맘이 아니라도 사회생활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일에 나 자신을 얼마나 던지고 있나' 드라마를 보며 자신을 투영하게 한다.

사진제공=하우픽쳐스, 드라마하우스 스튜디오

그러고 보면 고아인을 그리는 이보영은 단연 최고다. 최고가 되고야 말겠다는 다짐이 화면을 뚫고 나올 정도로 독이 잔뜩 올랐다. 일에 자신을 내던진 모습 역시 고아인인지 이보영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보영이 아이가 둘 있는 워킹맘이라는 걸 감안하면 이보영이 고아인보다 더 능력자라고 해야겠다. 그만큼 이보영의 물오른 연기가 '대행사'를 보는 최고 매력이다. 

1회 오프닝을 장식한 고아인의 광고 PT 속 게임 캐릭터처럼 이보영도 "최초를 넘어 최고가 되고, 처절하지만 우아함을 잃지 않으며, 나를 지키기 위해 때론 나를 버리는" 투철한 여전사가 된 듯하다. 극중 표현처럼 토끼 같은 얼굴로 사자처럼 싸우고 있다. 겉모습은 하우스에서 자란 꽃 같지만, 비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단단한 멘탈을 다부진 목소리와 표정으로 보여주고 있다.

고아인이 코끼리가 길을 내듯 광고계에서 새로운 길을 걷고 있는 것처럼 이보영도 안방극장에서 알게 모르게 존재하는 유리천장을 뚫는 중일 테다. 자신의 길을 수없이 고민해야겠지만 일단 결심하면 누구보다 강해지는 이보영이 화면으로 보인다. 투철하게 그러면서 동시에 우아하게 전진하는 이보영을 응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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