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로움 있는 곳에 富 따른다”… 재테크 권한 ‘조선의 불온서’ 를 아십니까[나윤석 기자의 고전을 묻다]
■ 나윤석 기자의 고전을 묻다 - 조선 유일 재테크 서적 ‘해동화식전’ 발굴한 안대회 교수
조선시대 남인 지식인 이재운
‘부자 = 악 · 빈자 = 선’ 통념 엎고
재물 축적에 관해 풀어낸 산문
상인 9명의 성공 사례도 담아
“풍족한 삶 꿈꾸는 건 기본 욕망
이 책이 당시 사회 흔들었다면
근대 전환 더 빨라졌을 수도”
“조선 사회의 근간을 부정하는 불온하고 위험한 ‘재테크 서적’이었습니다.”한문학자인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는 조선시대 부의 미덕을 찬양한 산문‘해동화식전(海東貨殖傳)’을 이렇게 평가했다. 안 교수가 발굴해 지난 2019년 번역·출간한 ‘해동화식전’(휴머니스트)은 조선 유일의 재테크 책으로 ‘부자는 악하고 빈자는 선하다’는 당대 통념을 뒤집으며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방법을 고민한다. 남인 지식인이었던 이재운이 1750년 무렵 쓴 글은 상업을 중시하는 ‘중상주의적 경영론’에 다양한 재주로 거부(巨富)가 된 실존 인물들에 관한 ‘상인 열전’을 덧붙인 형식이다. 재물 축적에 관한 이야기라는 뜻의 ‘화식전’은 중국 역사가 사마천의 동명 저작에서 따왔다. 동쪽에 있는 바다, 즉 ‘해동’이 조선을 일컫는 용어임을 고려하면 ‘조선판 화식전’쯤 되는 셈이다. ‘화식전’의 형식을 계승했으나 관점과 사유는 철저히 독창적이라는 게 안 교수의 설명이다.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연구실에서 안 교수를 만났다.
―이재운은 어떤 인물인가.
“조선 영조 때 문인으로 5대조가 영의정을 지닌 이산해다. 이산해는 경제사상에 특히 깊은 관심을 보인 관료였다. 이런 집안 학풍은 자손들에게도 이어졌다. 이재운의 저술이 평지에서 돌출한 것이 아니라 가풍의 연장선에서 탄생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재운은 명문가 출신임에도 서자인 탓에 높은 벼슬에 이르지 못했다. 생원시 합격 이후 한직을 전전하다 파직된 뒤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유생들의 공부를 가르치면서 평생 불우한 지식인으로 살았다.”
―‘해동화식전’이 불온한 텍스트인 이유는.
“조선은 양반이나 사대부가 농사를 짓거나 장사로 돈 버는 일을 금기시했다. ‘군자는 의로움을, 소인은 이익을 추구한다’는 유학 이념이 지배한 사회였기 때문이다. 사농공상이라는 계급 구조에서 알 수 있듯, 이윤을 남기고 장사하는 행위를 상인 계층의 전유물로 제한해 상인을 천한 신분으로 묶어버렸다. 하지만 ‘해동화식전’은 유학 이념에서 출발한 이 구도를 정면으로 배반했다. 가난은 자긍심을 가질 일이 아니라 부끄러운 일이라는 다소 과격한 주장까지 펼치면서 조선의 ‘도덕적 명제’에 반기를 들었다. ‘돈 버는 게 뭐가 나쁜데?’라는 반항적 기운이 텍스트에 녹아 있다.”
―조선의 도덕적 명제란 어떤 것이었나.
“부를 추구하는 행위를 천박하게 여긴 조선에는 ‘가난 = 선(善), 부 = 악(惡)’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었다. 이재운은 이 명제를 뒤집어 부의 축적은 개인적 안위를 보장할 뿐 아니라 사회에도 도움이 되는 도덕적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나라가 부과한 세금을 거부하지 않는 충성스러움, 이웃에게 금전을 빌리지 않는 청렴함은 오직 부자만이 갖출 수 있는 미덕이라는 것이다.”
안 교수는 부와 도덕관념을 연결지은 해석과 함께 풍족하게 살고 싶은 마음을 기본적 욕망으로 인정한 것 역시 당시로는 보기 힘든 파격적 사유라고 했다. 이재운에게 부는 ‘누구나 좋아하는 생선회와 구운 고기’ 같은 것이었다. 그는 “갓난아기가 막 태어나서 응애응애 울고 있을 때 젖을 물리면 바로 울음을 그친다”며 “나이가 100세에 이르러 금방이라도 숨이 끊길 듯이 골골하는 늙은이도 자손들이 고기와 죽을 내어오면 기쁜 표정을 짓는다”고 적었다.
―지금 우리 사회는 18세기 중반과 많이 다르다. 돈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도, 돈을 벌고자 하는 욕망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도 없다. 오히려 돈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여러 문제를 낳는 오늘날, ‘부자 되기’를 권하는 ‘해동화식전’이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텍스트는 시대마다 다른 의미를 지닌다. 이재운은 조선 사회의 양반들을 향해 ‘당신들도 생업에 뛰어들어 돈을 벌어라’고 외쳤지만, ‘해동화식전’이 모로 가도 돈만 벌면 만사형통이라고 주장한 건 아니다. 돈이 다른 모든 가치에 우선하는 오늘날에는 ‘의로움이 있는 곳에 부가 따라온다’는 메시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해동화식전’에서 중상주의적 경영론에 이어 나오는 상인 열전이 바로 이런 메시지를 담고 있다.”
상인 열전은 여러 방식으로 부를 쌓은 실존 인물 9인에 대한 기록이다.
‘이재(理財)의 달인’ 이진욱은 인삼을 매점매석해 10배의 이익을 남겼고, 국제무역 상인을 대상으로 한 고금리 대출로 떼돈을 벌었다. 구두쇠를 일컫는 ‘자린고비’의 유래가 된 충청 인물 자린급(煮吝給)은 끼니때마다 밥을 한술 뜨고 들보에 매단 반찬을 올려다보는 극단적인 절약으로 부자가 됐다. 한양 청파동의 과부 안 씨는 셈이 밝은 늙은 종에게 재산 관리를 전담시켰다. 이들은 악착같이 돈을 벌었지만, 풍족해진 뒤에는 어려운 사람을 돕고 선행을 베풀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재운은 부자의 자격 조건으로 과감하게 결단하는 ‘용기’와 함께 주변을 품어 안는 ‘자애로움’과 ‘신의’를 지목했는데, 상인 열전 속 거부는 모두 이 요건에 부합하는 인물들이었다.
―‘해동화식전’이 당대에 끼친 영향력은 어느 정도인가.
“안타깝게도 미미한 정도가 아니라 거의 파장을 낳지 못했다. 이재운이 주류 사회에 녹아들지 못한 ‘고독한 지식인’이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화식전’의 논리와 구조를 채택해 ‘해동화식전’이 18세기 조선판 ‘화식전’ 정도로 평가절하된 것 역시 텍스트를 진지하게 들여다볼 기회를 앗아갔다. 이 책이 당대 지식 사회를 뒤흔들었다면 조선은 자본주의적 가치가 존중받고 근대 사회로 빠르게 전환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조선 왕조 내내 ‘안빈낙도’에 안주하는 선비가 존경받는 사대부의 전형으로 여겨지면서 선조들은 서양 침투가 본격화한 대한제국 시기에 이르러서야 중상주의에 눈을 떴다.”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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