똬리모양 염주함·제주 문자그림… 일상 곳곳에 깃든 빼어난 미감
■ 가나아트센터 ‘진품 고미술 명품 이야기 전’ 29일까지
‘TV쇼 진품명품’ 양의숙 회장
소장해온 민예품 40여점 선봬
전통미 살린 채화칠기 삼층장
제주 양식의 알반닫이도 눈길
민예품 수집 이야기 책도 펴내
글·사진 =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양의숙 여사가 평생 우리 고미술의 아름다움을 찾아온 도정의 알짜배기 결실입니다.”
김형국 가나문화재단 이사장은 ‘진품 고미술 명품 이야기’ 전(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전시는 양의숙 한국고미술협회장이 출간한 동명의 책 출간을 기념한 것으로,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오는 29일까지 연다.
양 회장이 생애 처음으로 수집했던 전통 목가구 ‘너말들이 뒤주’와 친정어머니의 사랑이 담긴 ‘제주 알반닫이’를 비롯해 소장품 40여 점을 선보이고 있다. 전시품을 살펴보면, 김 이사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한국인의 일상과 가까우면서도 예술 미학의 고갱이를 보여주는 민예품들이기 때문이다.
양 회장은 고미술품을 다루는 프로그램 ‘TV쇼 진품명품’의 감정위원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책과 전시의 제목도 그걸 빌렸으나, 여기서 명품은 일반인은 범접을 못 하는 고가(高價)의 수집품을 뜻하는 게 아니다. 값의 높고 낮음을 떠나서 우리 조상들의 빼어난 미감(美感)을 담고 있으며 동시에 소장자의 삶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을 이른다.
제주 출신인 양 회장은 어려서부터 우리 민예품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홍익대 대학원에서 미술공예를 전공했고,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고미술 화랑 ‘예나르’를 운영했다. ‘예술을 나른다’라는 화랑 이름에서 느껴지듯 우리 것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양 회장은 “그런 애정을 지금껏 지켜올 수 있었던 것은 두 분의 어머님 덕분”이라고 했다. 자신에게 옛 물건들을 보여주며 미적 감성을 길러 줬던 친정어머니, 그리고 일을 하는 며느리를 아끼고 격려해줬던 시어머니.
이번 전시품 중 ‘제주 알반닫이’는 그가 45년 전 딸을 낳았을 때 제주에서 상경한 어머니가 가져온 것이다. 그는 당시 관절이 좋지 않은 어머니가 그 무거운 것을 힘들게 끌고 왔다며 역정을 냈다. 그러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신 지금은 무엇보다 귀히 여기는 애장품이 됐다”라고 했다. 19세기 목가구인 이 반닫이는 부채꼴형 경첩의 양옆에 커다랗게 마름모형 장석을 붙인 것이 특징이다. 다른 지역의 반닫이들과는 다른 장식의 미감으로 제주 양식을 보여준다.
역시 19세기 작품인 ‘저승효행상’도 부모에 대한 효를 일깨운다. 절집으로 출가하는 바람에 부모를 모시지 못한 승려가 저승에서 축생(畜生)이 되어 부모의 영혼을 모시고 불교의 낙원인 청정불국토(淸淨佛國土)로 가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철로 만든 조각상인데, 짐승과 인물의 표정이 생생해서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이번 전시에서 양 회장이 각별하게 아끼는 작품으로 꼽은 것은 ‘갖고 있던 금을 다 팔아서 구입한’ 염주함이다. 염주를 담는 똬리 모양의 함인데, 통나무를 둥글게 다듬어 목태(木態)를 만들었다. 자물쇠와 경칩 등 금속 장식은 못이 겉으로 보이지 않는 기법으로 부착해서 감탄을 자아낸다. 고려시대 말에서 조선 초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에서 돌아온 ‘채화칠기 삼층장’도 특별한 소장품이다. 19세기 작품이 어쩌다가 미국으로 흘러갔는지 모르겠으나, 양 회장은 처음 봤을 때 삼층장이 “어머니, 저예요”라고 말을 거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검은 칠 위에 붉은 칠을 입히고 앞면의 판에 꽃을 입체감 있게 새긴 솜씨가 절묘하다. 버선코 모양의 장식에선 직선과 곡선을 절충하는 한국의 전통 미감, 즉 중용의 미학을 볼 수 있다.
양 회장은 고향인 제주의 민속 문화를 알리는 데 평소 힘써왔다. 이번 전시에서도 제주의 나무와 흙으로 빚은 민속품들과 함께 ‘제주문자도’를 선보였다. 제주문자도는 여느 지역의 문자도와 달리 3단으로 이뤄져 있는데, 유교 덕목을 중심에 두고 상단과 하단에 현실과 내세의 상징물들을 그렸다. 배타성이 강한 제주의 토착 문화가 조선의 국가 이념인 유교를 수용한 흔적을 문자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과감하고 파격적인 구성으로 다른 지역과는 다른 독창성을 드러냈음을 알 수 있다.
이번 전시의 바탕이 된 양 회장의 책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우리 민예품의 미학을 널리 알리기 위해 애쓴 인물들의 이야기를 풍성하게 담고 있다. 양 회장의 대학원 은사였던 예용해, ‘뿌리 깊은 나무’의 발행인 한창기, 화가 권옥연과 김종학 등이 그 주인공이다.
양 회장은 “1990년대에 우리 고미술품에 대한 글을 써 놓고도 부끄러워서 출간하지 못했다”며 “이번에 고미술품을 다뤄온 반생을 되돌아보며 정직하게 나의 이야기를 풀어놨다”고 했다. 그는 “일반인이 고미술품 수집을 하고 싶으면, 일단 관련 책을 읽은 다음에 박물관을 열심히 찾고 전문가들에게 물어보라”고 권했다. 관심을 갖고 공부하면 안목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는 “싸고 좋은 건 없다”며 “가짜일수록 더 화려해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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