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을지로의 풍경을 그리다
철거된 세운상가 주변을
사진 같은 풍경화로 그려내
“화가는 미인 그리지 않아
낡은 것의 감동이 더 크다”
이후 작가는 5년간 근대화의 상징인 세운 상가 일대를 밤낮으로 찾았다. 눈이 와도 비가 와도 달려가 건물 옥상에 올라 사진을 찍고 그림으로 그렸다. 지난해 철거되어 타워크레인이 세워진, 이제는 사라진 풍경을 캔버스에 ‘타임캡슐’처럼 박제한 셈이다.
서울 종로구 초이앤초이에서 2월 25일까지 열리는 정재호 개인전은 ‘나는 이곳에서 얼마나 오랫동안’을 주제로 삼았다. 작가가 20여년 전 그린 한강 부근 풍경화에서 따왔다. 16일 만난 작가는 “옥상에 올라가 풍경을 찍어오면서 내가 여전히 이렇게 조망하는 것에 대한 향수가 있고 작업이 이어지는구나 싶어, 옛날 제목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정교하고 사실적 표현력으로 정평난 작가지만 그는 “40년을 그림에 매달렸지만 그릴수록 더 부족하다는 생각만 든다. 이제는 시력도 떨어진다”라면서도 “이제 실제 도시 풍경을 그리는 화가는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사진 같다’는 걸 넘어서는 실제 풍경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눈과 비가 내리는 낡은 건물은 카메라 렌즈보다 한결 따스한 색감으로 그려졌다. 그는 “사진을 셀수없이 찍었지만, 그리다 막혀서 다시 가보면 사진과 실재가 너무 달랐다. 카메라엔 잡히지 않는 볼 때만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있었다. 내가 그리고 싶은 건 이 곳의 색감과 대기”라고 말했다.
긴 시간의 노동과 인내를 요구하는 대작들을 그는 작년 한해 안식년의 도움으로 완성했다. 그는 “학교에선 유행에 따라 트렌드가 휙휙 바뀌는 학생들에게 자신만의 길을 찾으라고 조언하곤 한다”면서 “나 역시도 풍경화의 본질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지만, 결국 갖은 수단을 동원해 정확하게 그리려고 노력하는 수 밖에 없더라. 정확하게 그렸을 때 추하지만 아름다운 지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도 거리에서 이젤을 펴고 풍경을 그리는 스페인의 국민화가인 안토니오 로페즈 가르시아의 고전적 회화를 좋아한다고 털어놨다. 고집스런 장인은 말했다. “내 붓은 낡지 않은 것을 그릴때는 잘 안움직인다. 화가들은 미인을 결코 그리지 않는다. 낡은 대상이 주는 감동이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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