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미분양 1위 대구 “1천만원만 내고 아파트 계약하세요”
2억원 낮춘 아파트도 2년째 안 팔려
‘한 블록 건너마다 하늘 위로 높이 솟은 크레인이 보인다’는 설명만큼 지금의 대구를 잘 표현하는 말은 없다. 크레인이 들어선 곳은 모두 새 아파트가 지어지는 공사현장이다. 2023년 1월8일 케이티엑스(KTX) 동대구역 출구를 나서자마자 ‘동대구역 엘크루에비뉴원 아파트’ 건설현장 크레인이 외지인을 반긴다. 동대구역에서 대구역을 잇는 약 4.5㎞ 남짓한 경부고속선 철도 양옆에 공사 중인 아파트 현장만 10곳이다. 대구에서 나고 자란 40대 박영수(가명)씨는 “구도심을 중심으로 (아파트 건설을) 해가지고, 대구 사람들은 자조적인 말로 대구 전체가 아파트로 만들어지고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노후한 아파트·규제 제외가 재개발 수요 부추겨
최근 아파트 미분양과 공급과잉의 중심에 대구가 있다. 대구시에 따르면, 2022년 11월 기준 대구의 미분양 공동주택은 1만1700가구다. 같은 시기 전국 미분양 공동주택(5만8027가구)의 20%를 차지하는 규모다. 수도권 전체 미분양 공동주택 수(1만373가구)보다 많다.
위기는 이제 시작이다. 대구시와 현지 건설·분양 업체 등은 입주를 앞둔 아파트 공급량이 2023년 3만5천여 가구로 정점을 찍은 뒤 점차 줄어 2025~2026년 비로소 적정 수요량을 맞추리라고 예상한다. ‘적정 수요량’이 어느 정도인지는 유동적이다. 대구시의 전체 주택 수는 100만5836가구, 이 가운데 아파트가 59만5392가구(2020년 기준)다. 2023년 한 해 공급량만 전체 아파트의 5.9% 규모에 이른다. 대구시 인구가 계속 줄어든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대구시 인구는 최근 3년간 243만6488명(2020년 1월)에서 236만3691명(2022년 12월)으로 줄었다. 그나마 1인가구가 늘면서 세대수가 103만2478가구에서 107만873가구(세대당 인구 2.36명→2.21명)로 소폭 증가한 점이 주택 매매 수요가 늘어나리라는 작은 희망을 갖게 하는 지표다.
대구에선 왜 이렇게 아파트 건설이 늘었을까. 대구경북연구원이 2021년 펴낸 ‘대구시 노후 중고층 아파트 현황과 개선 방향’ 보고서는 “1990년대 건립된 택지개발지구 아파트는 대부분 20년 이상 경과한 주택으로 노후화가 진행 중이다. 대구시 공동주택 중 20년 이상을 초과한 물량은 18만 호를 넘어 전체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며 2022~2027년 노후 중고층 아파트가 매년 2만 가구 이상 지속해서 발생할 것으로 봤다. 재건축·재개발 등의 수요가 계속 생겨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대구 부동산시장이 규제를 비껴간 것도 영향을 미쳤다. 대구시 관계자는 “2019년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가 서울은 적용됐지만 지역은 적용되지 않았다. 서울은 주택건설 사업을 해도 이윤이 남을 수 없는 구조가 되다보니 자금이 대구에 많이 몰렸다”고 설명했다. 실제 당시 국토교통부가 서울 집값을 잡는 데 초점을 맞춘 대책을 내놓으면서 대구 수성구·중구·남구 등에서 진행되던 재개발 사업이 탄력받기도 했다.
하지만 거품은 금세 꺼졌다. 아파트 공급이 쏟아져 나오는 시기와 금리 인상, 경기 위축 등이 맞물리다보니 대구시 부동산 거래는 사실상 ‘멈춤’ 상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1542건(2021년 11월)이던 대구 아파트 매매 신고 건수는 777건(2022년 11월)으로 크게 줄었다. 1년 만에 반토막 난 셈이다. 같은 기간 아파트를 포함한 전체 주택 매매 신고 건수 역시 2275건에서 978건으로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지금 대구의 부동산시장은 어쩌면 향후 수년간 서울과 수도권을 포함한 전국 부동산 경기를 가늠할 만한 바로미터인지 모른다.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심각”
1월8일, 대구시 수성구 황금동에 차려진 ‘힐스테이트 동대구 센트럴’ 분양사무소는 한적했다. 중장년 부부가 간간이 눈에 띌 뿐이었다. 거동이 쉽지 않은 노모를 모시고 온 이도 있었다. 최근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다’는 뜻으로 가능한 최대치의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매매하는 일)을 주도했다는 2030 젊은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각 층에 배치된 안내직원 수와 방문객 수가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 상담 부스도 한두 석을 제외하면 대부분 비어 있었다. 주거형 오피스텔 62실, 아파트 481가구를 포함해 총 543가구로 대단지는 아니지만 이른바 ‘브랜드’ 아파트인데다 당장 다음날인 1월9일부터 청약 접수를 앞둔 이날이 분양사무소 마지막 운영일인 점 등을 고려하면, 식어버린 부동산 열기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분양 상담 담당자는 “경기가 어려운데도 이곳은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작업이 일어나서 (자금을 조달했기 때문에) 2022년 7월 공사를 시작했다. 2026년 4월 입주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2025년을 기점으로 입주 물량이 줄어들 것”이라며 미분양에 대한 우려를 안심시키는 한편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무주택자나 (더 큰 평수나 새 아파트로) 갈아타고 싶은 1주택자는 지금이 기회예요. 지난 5년 동안은 청약 당첨도 쉽지 않았고 (당첨돼도) 가격이 비싸 자금 마련이 어려웠는데 지금은 분양가도 내렸거든요. 저희도 원래 84㎡ 기준 7억원대로 나올 예정이었는데 5억원대로 떨어졌어요.”
인근의 ‘두류 중흥S클래스 센텀포레’ 분양사무소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21년 12월 처음 문을 연 분양사무소여서 그런지, 방문객은 아예 없이 텅 비어 있었다. 분양 상담을 하는 직원은 “원래 분양가의 10%인 5천만원가량을 계약금으로 내도록 했는데 3천만원으로 낮췄다가 지금은 (경기) 상황이 안 좋으니까 1천만원만 내면 계약할 수 있다. 부담이 없는 금액이니 꼭 계약하라”고 강조했다. 중도금 무이자 혜택도 제공한다고 했다.
건설·분양업체들이 갖가지 혜택을 제공한다며 손짓하지만, 정작 대구 시민들에겐 그림의 떡일 뿐이다. 기존에 살던 곳을 처분하고 싶어도 집이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대구 동구에 거주하는 40대 박영수씨는 아이의 중학교 입학 전에 학군이 좋은 수성구로 옮기고 싶어 2년 전에 집을 내놨다. 2년 동안 집을 보러 온 사람은 단 5명뿐이다. 8억원 중반대에 내놨던 48평대 아파트 매매가를 이제 6억원대까지 낮춘 상태다. 박씨는 “이사 가려는 수성구 아파트도 비슷한 수준으로 가격이 내려간 상태라 (6억원대에 팔리더라도) 크게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사려는 사람이 없어 아예 옮기지 못할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권영진) 전임 대구시장이 (아파트 건설) 허가를 엄청 많이 낸데다 불과 1~2년 전까지만 해도 대구 아파트값이 많이 오르다보니 여러 건설사가 (대구에) 뛰어들었다”며 “2008년 금융위기 때도 미분양 물량이 많았지만 그때는 거래량이라도 많았는데 지금은 거래량 자체가 없어 더 심각하다”고 걱정했다.
“2027년 이후에나 초과공급물량 소화될 것”
대구에서 평생을 살아온 60대 김희강(가명)씨 역시 매일 부동산중개업소에서 전화가 오기를 기다리며 산다. 그는 중개업소 4~5곳에 2억4천원대로 내놨던 아파트 호가를 1억9천원까지 내렸다. 이른바 ‘급매’ 매물이다. 그래도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없어 1천만원가량을 들여 인테리어 공사도 했다. “(인테리어 비용을 생각하면) 사실상 1억8천만원에 내놓은 셈이죠.” 손해를 보는 셈이지만 그럼에도 그는 반드시 지금 팔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1990년대 지은 구축 아파트거든요. 지금 못 팔면 시간이 지날수록 더 손해 볼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 대구에서 재개발·재건축만 100곳이 족히 넘을 거예요. 그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나면 지금 우리 집은 나중에 거저 줘도 (누구도) 안 살 거란 생각이 들어요. 좀 손해 보더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자식한테 물려주는 것보다 지금 파는 게 나아요.”
얼어붙은 시장이 단기간에 회복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1월3일 국토교통부가 1인당 중도금 대출 한도와 분양가 상한 기준을 폐지하고, 유주택자도 무순위 청약에 참여하게 하며, 분양권 전매제한 기간을 완화하는 등 규제완화 정책을 발표했지만 시장에 어떤 효과로 나타날지는 미지수다.
대구 수성구 학군의 중심지로 집값 급등을 이끌었던 ‘범4만3’(범어4동·만촌3동)도 가격 급락과 거래량 급감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곳에서 공인중개사사무소를 운영하는 이영민씨는 “정부마다 (부동산) 대책이 계속 뒤집어지니까 사람들이 (정책) 불신을 학습한 상태다. 최소한 2024년 총선이 지나고 입법권자들의 윤곽이 잡혀야 관련 정책을 제대로 펼칠지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초과된 공급량이 소화되는 시기는 2027년 이후로 본다. 그때까지 가계 부담이나 아파트 가격을 방어하는 여력이 입지에 따라 더 벌어질 것”이라며 “(입지별) 초양극화”란 표현을 쓰기도 했다.
미분양 중 임대주택으로 전환 움직임도
김병환 대구시 건축주택과장은 “2020년부터 주택시장이 과열됐다고 판단해 신규 택지 공급 억제, 주거복합 건축물 용적률 제한, 일조권 심의 강화 등 조례 개정을 해왔다. 주택건설 사업자들과의 간담회를 통해 지역 건설사에는 (아파트 대신) 임대형 지식산업센터 등 임대형 민자사업(BTL) 쪽으로 진출하라고 권하거나 대형 건설사에도 분양 시기 등을 조절하자고 이야기를 나눴다. (미분양 물량 중) 일부는 민간 임대주택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도 있다”고 설명했다.
대구시는 ‘거래량 정상화’에 초점을 맞춘다고 하지만 방법을 찾기가 쉽지만은 않다. 김 과장은 “관이 시장에 (과하게) 개입하기 어렵다보니 얼마간 지켜볼 수밖엔 없다. 다만 1인가구가 점차 늘어나는 상황과 새 아파트로 이주하고 싶어 하는 욕구 등을 반영해 새로운 주거종합기본계획을 만들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대구의 상황은 전체 부동산시장에 어떤 신호를 주게 될까. 김규정 한국투자증권 자산승계연구소장은 “특정 지역의 공급량 문제가 수도권 시장에 (직접적)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다만 장기간 미분양이 적체되면 프로젝트파이낸싱 부문에서 사고가 날 가능성이 커지고, 관련 위험도도 지금 올라와 있다보니 심리적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글·사진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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