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조' 오일머니 온다…"바라카의 축복" 원전·방산·수소 후속 효과는
아랍에미리트(UAE)가 에너지 산업을 중심으로 300억달러(약 37조원) 대한(對韓) 투자를 결정했다는 소식에 원전업계는 기대감을 드러냈다. 큰 틀에서 양국 정부 주도로 역대급 협력을 진행키로 한 만큼 각 기업들에도 후속 효과가 이어질 것이란 기대다.
윤석열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UAE 대통령은 지난 15일(현지시간) 아부다비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원자력, 에너지, 투자, 방산, 기후변화 등 영역에서 총 13건의 양해각서(MOU)를 체결, 사실상 경제동맹 수준으로 양국 협력을 강화키로 했다.
무하메드 대통령이 직접 '바라카 원전'을 예로 들며 "어떤 상황에서도 약속을 지키는 대한민국에 대한 신뢰로 투자를 결심했다"고 했을 만큼 이번 협력에서도 원전 분야는 협력 의제 큰 축이었다.
우리나라는 2009년 아부다비 바라카 원전 수주를 계기로 UAE와 중동 국가 최초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수립했다. 바라카는 아랍어로 '축복'이란 의미를 가진 지역이다. 이는 우리나라 최초 원전 수출이자 UAE에는 아랍권 최초 원전 건설이었다. 그만큼 바라카 원전이 양국에 주는 의미는 크다. 양국 관계는 이후 2018년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됐다. 현재 UAE 바라카 원전 1·2호기가 상업 운전을 시작, 3·4호기도 상업운전이 예고됐다.
UAE가 중동 국가 중 가장 먼저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한 만큼 향후 양국간 원전 협력이 더 세분화되고 확대될 것이란 기대도 크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KOTRA)에 따르면 UAE는 2021년 기준 연간 발전량 중 88%를 천연가스에 의존중이다. 바라카 원전 4호기까지 상업운전시 UAE 전력 수요의 25%를 충당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천연가스 의존도는 점차 낮아질 전망이다.
UAE 내 원자력을 에너지원으로 하는 발전량은 2020년 1.56TWh(테라와트시)에서 2022년 20.21TWh, 2024년 36.16TWh로 늘어날 전망이다. UAE 내에서도 원전 발전량은 늘어날 것인데다 양국이 손잡고 수출에 협력한다면 중동, 아프리카 등에서 더 많은 사업기회를 잡을 가능성이 있다.
한 원전업계 관계자는 "2009년 이후 양국 정상의 상호 순방이나 고위 정부 관계자간 경제 관련 회담에서 원전은 주요 의제로 자리매김해왔다"며 "이번 MOU를 토대로 후속으로 체결될 세부 본계약들이 기대되며 원전 기자재, 건설, 전력기기 등 관계기업들이 긍정적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SMR(소형모듈원자로)과 같은 기존에 없던 원전 관련 신규 협력 분야도 MOU에 포함돼 양국 협력의 범위가 넓어졌단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이번 13개 MOU 중 원전 관련 내용은 △포괄적 전략적 에너지 파트너십(CSEP)을 통한 전략적 에너지 관계 강화를 위한 공동선언문 △넷 제로 가속화 프로그램 △한·UAE 원자력협정에 따른 행정약정 등이다. 구체적으로는 원전 제3국 공동진출, 넷제로 공급망 투자, SMR 기술 개발 가속화 등 협력의 내용이 담겼다.
이번 대통령 순방길에 동행한 경제사절단에도 원전 관련 기업들이 다수 포함됐다.
선봉에는 두산에너빌리티가 있고 삼성물산, SK 등도 각각 건설, SMR 등 사업이 관계돼 있다. 효성굿스프링스도 펌프와 같은 원전기자재 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 중견·중소기업 중에는 수산이앤에스, 비츠로이엠, 하나원자력기술, 케이엠엑스, 코리아누클리어파트너스(한수원 KNP 주식회사), 스프링피스 등이 동행했다.
특히 한국과 UAE가 원전 제 3국 공동진출을 선언한 만큼 현재 한국 정부가 추진중인 ' 2030년까지 원전 수출 10기 목표'의 실행도 더 탄력받을 전망이다.
한편에선 이번에 체결한 MOU가 구속력이 없는 만큼 실제 각 기업들이 본계약을 체결하고 수혜를 누릴 수 있을지 여부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도 나온다.
한 원전업계 관계자는 "우리 기업은 이번 순방 관련해 별도로 체결한 MOU는 아직 없고 비즈니스 포럼이나 상담회 등을 통해 중장기적 관점에서 사업 기회를 찾는다는데 의의가 있을 것"이라며 "추후 어떤 식으로 UAE 등에 진출하게 될지는 기다려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16일 코스피 개장 이후 주식시장에서 원전주로 분류되는 기업 주가가 약세를 보였다. 두산에너빌리티가 전일 대비 3.79% 내린 채 장마감했고 한전기술은 3.95% 내렸다. 다만 윤 대통령 순방 전에 주가가 올랐던 만큼 오름폭을 반납했단 분석들도 있다.
한국무역협회 관계자는 "이번 UAE 순방에는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으로 대규모 경제 사절단이 동행, 양국의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새로운 협력 분야를 발굴했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생각된다"며 "특히 최근 양국 협력이 확대 되고 있는 원전, 방산, 수소 분야에서투자 협력, 금융 지원 강화의 성과를 거두며 상호 호혜적 협력을 강화했다"고 평가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아랍에미리트(UAE) 국빈방문을 계기로 양국의 방위산업 및 우주·항공 협력이 강화된다. 국내 방산기업과 우주·항공 기업들이 UAE를 교두보 삼아 중동 시장으로 뻗어나갈 전망이다.
16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15일(현지시간) UAE 타와준 위원회와 수송기 국제공동개발센터 운영 협력 등 '다목적 수송기 국제공동개발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타와준 위원회는 UAE의 방산획득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韓·UAE 첫 수송기 공동개발…KAI 민항기 사업까지 확대 기회
UAE는 항공기 개발 경험이 없어서 전략적 파트너로 KAI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KAI는 한국형 다목적 수송기(MC-X) 개발을 추진 중이다. KAI는 UAE와의 국제공동개발을 통해 수송기 개발을 위한 기반이 마련됐다고 보고 있다. 사업 내용과 규모 등은 연내 구체화될 전망이다.
수송기 개발은 민항기 개발로도 이어질 수 있어 의미가 크다. 강구영 KAI 사장은 지난 12일 '글로벌 KAI 2050' 비전 선포식을 통해 "항공기 국제공동개발 참여를 확대해 민항기 요소기술 확보와 더불어 수주 경쟁력을 높일 것"이라며 "민항기 요소기술을 기반으로 군용 수송기는 물론 자체 중대형 민항기 개발도 추진한다"고 밝혔다.
◇방사청, UAE에 방공유도·공중무기체계 수출 추진…제2의 '천궁-II' 신화?
같은 날 방위사업청도 윤 대통령과 모하메드 빈 자예드 알 나하얀 UAE 대통령이 임석한 가운데 타와준 위원회와 '한·UAE 전략적 방위산업 협력에 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양국은 방위산업과 국방기술 협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공동 투자와 연구 및 기술 개발을 위한 노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한국과 UAE의 방산협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UAE는 이미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다연장 로켓 '천무'를 운용하고 있다. 지난해 1월엔 국내 방산기업들과 35억달러(약 4조3000억원) 규모의 국산 중거리 지대공 미사일 '천궁-Ⅱ'을 계약했다. LIG넥스원은 유도탄과 교전통제소 제작과 함께 체계 종합을 맡았다. 천궁의 '눈' 역할을 하는 다기능레이더는 한화시스템, 발사대는 한화디펜스(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미사일 탑재 차량은 기아가 맡았다.
한화시스템은 최근 천궁-II 사업의 순조로운 이행 및 지원과 레이다 후속 사업 개발을 위해 UAE에 아부다비지사를 개소했다. 현지 주요 파트너와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사업 기회를 지속적으로 발굴해 중동 사업의 핵심 거점으로 키운다는 복안이다. 아부다비 지사는 향후 적극적인 영업활동을 통해 사우디 등 걸프협력회의(GCC) 국가와 북아프리카 등 주변국 대상으로 사업을 추진한다.
특히 양국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국의 UAE 방공유도 및 공중무기체계 수출 추진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시설이 이란의 순항미사일과 무인기(드론) 공격을 받으면서 UAE도 중동지역 석유시설 공습에 대비한 대공방어체계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 UAE는 천궁-Ⅱ에 이어 '한국형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로 불리는 장거리 지대공미사일(L-SAM)과 T-50 고등훈련기 등 한국산 무기체계에 관심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김지찬 LIG넥스원 사장이 이번 순방에 함께 한 것을 두고도 이들 무기체계의 수출 협상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란 분석이 뒤따랐다.
◇우주 협력 강화…국내 우주기업 기대감
이외에도 양국의 우주 협력이 강화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UAE 우주청은 '우주탐사와 이용에 관한 협력 양해각서' 개정 합의서에 서명했다. 기존에 약속했던 우주과학기술 활용과 우주 법·규제·정책 의견 교환, 인력개발 등에 △평화적 목적 우주탐사 △인공위성 통신·항법 △지구 관측 △우주과학기술 실험·검증 △우주데이터 교환 △지상국 활용 △발사·서비스 협력 △우주상황 인식과 우주교통관제 등이 추가됐다.
한국이 인공위성·발사체 부문에 도움을 주고 UAE는 화성 궤도 탐사선에서 얻은 우주데이터를 공유해주는 식으로 협력할 것으로 보인다. UAE 모하메드 빈 라시드 우주센터(MBRSC)가 2026년 보낼 달 탐사 로버에 한국천문연구원 개발 장비를 탑재하거나 UAE 우주청과 과기부·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우주교통관제 협력을 하는 방안도 논의된다.
한국은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UAE와 위성개발 및 교육분야에서 협력해왔다. 국내 위성개발 기업(쎄트렉아이)이 UAE 최초 인공위성 두바이샛-1·2호를 개발했다. 카이스트(KAIST)는 쎄트렉아이에 파견된 UAE 연구인력을 받아 교육훈련을 제공했다. 이번 개정 합의서를 통해 쎄트렉아이의 UAE 추가 수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윤 대통령 UAE 국빈 방문에 동행한 경제사절단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김대영 전무, KAI의 강 사장이 함께했다. 우주·항공업계는 시장 진출 기회가 커짐에 따라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다. 이날 오후 아부다비에서 열리는 한-UAE 비즈니스 포럼에서 구체적인 우주 협력 사업을 도출해낼지 주목된다.
미래에너지 전략에 수소를 중심에 둔 한국 에너지업계가 UAE(아랍에미리트연합)와 수소사업 협력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이미 GS에너지 등 에너지 프런티어들이 UAE와 합작 수소사업을 시작해 성과가 가시적이기 때문이다. 이르면 2025년 양국의 수소사업이 '약속을 지키는' 사업임이 확인될 전망이다. 큰 틀에서 이뤄질 추가적 협력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다.
16일 UAE와의 전폭적인 수소사업 협력이 발표된 가운데 17일 에너지업계는 현지 수소생산과 운송, 한국서 가공 및 활용으로 구성되는 수소사업 밸류체인이 구축될거라는 전망을 내놨다. 시간은 필요하겠지만 글로벌 에너지시장에서 수소 수요가 크게 늘어나는 시점 이전에 한국과 UAE 간 합작 수소사업이 상업적 효과를 낼 수 있을거라는 기대가 읽힌다.
이날 한 에너지기업 고위 관계자는 "양 정부 간 큰 틀에서 협력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만큼 각론에서는 전망이 어렵지만 UAE가 현지 수소 양산 초읽기에 들어간 만큼 이와 연계한 다양한 수소 생산 및 활용 전략이 발표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UAE와의 협력은 특히 국내 수소시장의 구조적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요소가 크다. 다른 에너지기업 관계자는 "높은 신재생에너지 비용과 정체기를 겪었던 원자력발전 등 악재로 한국 내 수소생산 프로젝트가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수소산업 면에서 큰 호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에너지업계가 UAE와 수소사업 발전 가능성을 높게 점치는건 전례가 있어서다. GS에너지는 지난 2021년 11월 아부다비국영석유사 애드녹(ADNOC)과 블루암모니아 개발사업 협력을 선언하고 해당 사업 지분 10%를 확보했었다. 블루암모니아는 청정수소를 운송하기 쉽도록 암모니아 형태로 만든 상태다.
이 프로젝트는 성과를 눈앞에 두고 있다. GS에너지 고위관계자는 이날 "현재 EPC(설계·조달·시공) 관련 작업을 마무리하고 공장이 착공되기 직전단계"라며 "늦어도 2025년 말, 2026년 초엔 암모니아 형태로 수소를 한국으로 실어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암모니아는 수소에 질소를 더해 액체로 변환시킨 상태다. 액화수소보다 훨씬 안정된 상태로 장거리 대용량 수송을 할 수 있다.
미래 수소협력은 어떤 형태로 이뤄질까. 업계는 UAE가 발표할 추가적 수소생산 프로젝트에 한국이 참여하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수소 수요시장으로서 가치 뿐 아니라 수소운송 등 밸류체인 전반에 걸친 기술개발이 필요하다. 다른 에너지기업 관계자는 "액화수소는 물론 암모니아 운반선 기술 수준이 동반 확보돼야만 수소밸류체인이 제 때 기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성은 기자 gttsw@mt.co.kr, 최민경 기자 eyes00@mt.co.kr, 우경희 기자 cheeru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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