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차이나] 코로나 시작된 中 우한, 4년 만의 춘제 대이동…중국인이 다시 움직인다
13일 오후 1시 중국 중부 허난성 정저우시에서 차를 타고 남쪽으로 고속도로를 약 500㎞ 달려 도착한 후베이성 성도 우한시 황피구의 푸허 톨게이트. 오후 7시가 넘어 캄캄한 시각이지만, 우한시로 진입하려는 차들이 몰려 요금소 주변이 온통 붉은빛이었다. 상당수 차량은 우한이 속한 후베이성을 뜻하는 ‘어(鄂)’ 번호판을 달고 있었지만, 기자가 탄 베이징 차량 ‘징(京)’이나 후난성을 뜻하는 ‘샹(湘)’처럼 다른 지역 번호판을 단 차량도 여럿이었다.
아무 줄에나 합류하고 보니, 창밖으로 ‘중·고 위험 지역에서 우한에 온 차량 전용 통로’라는 큼지막한 안내판이 보인다. 조금 더 앞으로 가니 ‘중·고 위험 지역에서 우한에 온 또는 돌아온 차량은 자진 신고하세요’라고 쓰인 또 다른 안내판이 곳곳에 세워져 있었다. 외지에서 온 사람은 안내판 속 큐알코드를 스캔해 우한시 코로나 방역 지휘부에 개인정보와 여정 동선을 보고하라는 내용이었다. 코로나 중위험 지역과 고위험 지역으로 지정된 곳에서 온 사람을 격리하려는 조치다. 이제는 쓸모가 없어진 중국 ‘제로 코로나(清零 칭링)’ 방역 정책의 잔재다.
중국은 지난해 12월 7일, 3년간 이어왔던 ‘제로 코로나’ 통제 정책을 사실상 폐기하며 지역 간 이동 제한을 풀었다. 거주지 외 다른 도시로 갈 때도, 돌아올 때도 코로나 핵산 검사를 받을 필요가 없어졌다. 음성이든 양성이든 상관없이 어디든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고속도로 통행료를 내고 톨게이트를 통과하고 나니 도로 주변이 더 붉어졌다. 1월 22일 춘제(春節·중국 음력설)를 앞두고 가로등에 걸린 둥그런 3단 홍등롱이 붉게 빛나고 있었다.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제 연휴(1월 21~27일)를 맞아 고향 우한에 오는 사람들을 환영하는 듯한 느낌이 물씬 났다.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던 저녁 8시, 우한 시내 한커우(漢口) 기차역 앞은 한 손엔 우산을 들고 다른 손으론 캐리어를 끄는 사람들로 붐볐다. 이제 막 우한에 도착해 역을 빠져나온 사람들과 기차를 타고 다른 지역으로 가기 위해 역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한데 뒤섞였다. 역사 앞 전광판엔 ‘항상 마스크를 착용하고 1m 거리를 유지하라’는 주의사항만 떠 있을 뿐, 역 안에 들어가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중국 전역 기차역에 들어갈 때 거쳐야 했던 코로나 방역 절차가 완전히 사라졌다. 스마트폰 앱으로 코로나 음성 여부도 확인하지 않고, 코로나 위험 지역에 간 적이 있는지도 보지 않고, 체온 측정도 하지 않는다.
기차역 안에서 신분증과 기차표를 검사하고 승강장으로 향하는 사람 대부분은 마스크를 썼지만, 마스크를 아예 착용하지 않았거나 턱까지 내리고 있는 사람도 더러 눈에 띄었다. 전 같으면 입구를 지키는 보안 요원이나 방역 요원이 마스크를 똑바로 쓰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을 텐데, 그 누구도 제지하지 않았다. 의료용 마스크를 쓴 채 캐리어 하나와 보따리 두 개를 들고 개표구로 가던 류씨는 “아직 코로나에 걸리지 않아 기차를 타고 멀리 가는 게 불안하긴 해도, 춘제 때 고향에 가는 게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그의 고향은 서쪽으로 약 1300㎞ 떨어진 윈난성 자오퉁시다.
올해 춘제는 지난 3년 동안의 춘제와는 완전히 다르다. 중국 정부가 코로나 감염을 박멸하겠다며 국민 이동을 통제한 초강경 ‘제로 코로나’ 정책을 버리고 맞는 첫 춘제다. 2020년 1월의 춘제 연휴는 2019년 말 우한에서 처음 보고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첫 발표 당시는 원인 불명 폐렴)가 중국 전역으로, 또 전 세계로 퍼져 나간 기폭제가 됐다.
한커우 기차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의 진원지로 알려진 ‘우한 화난 해산물 도매 시장(武漢華南海鲜批發市場)’과 약 1㎞, 걸어서 10~15분 거리에 있다. 우한시 위생건강위원회는 2019년 12월 31일 원인을 알 수 없는 폐렴 집단 감염을 처음 발표하며, 감염자 대부분이 화난 시장 상인이라고 밝혔다. 말이 수산물 도매 시장이지, 실제론 식용 야생 동물을 팔던 곳이다. 야생 동물로부터 사람이 감염되고 이후 사람 간 전염이 일어났다는 추정이 유력하다.
우한은 2020년 기준 인구 1100만 명인 중국 중부 내륙 교통의 요지다. 주변 9개 성과 연결돼 있다. 우한시는 감염 확산 고리를 끊겠다며 2020년 1월 23일, 외부로 연결되는 비행기, 기차, 배, 시외버스 운행을 전면 중단하며 도시를 봉쇄했다. 그러나 당시 춘제 연휴(2020년 1월 24~30일)를 앞두고 이미 수백만 명이 우한을 벗어나 전국 각지 고향으로 간 후였다. 춘제 명절 인구 대이동으로 바이러스가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갔다.
중국 교통운수부는 올해 1월 7일 시작된 40일 간의 춘윈(春運·춘제 연휴 전후 여객·화물 특별 수송 기간) 기간 기차·버스·비행기·배·자가용 등을 이용한 이동이 21억 건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해 춘윈 이동량의 두 배다. 중국이 한 달 전 코로나 방역 조치를 해제한 후 감염자와 사망자가 폭증하는 상황에서도 이동량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제발 고향에 가지 말라며 지방정부와 기업이 농민공(이주 노동자)에게 돈까지 주던 지난 3년 간의 춘제 연휴 때와는 딴판이다. 소비가 살아나고 경제 활동이 회복되는 신호가 서서히 감지되고 있다. 4년 만에 이동의 자유를 되찾은 중국인이 다시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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