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논리에 밀린 공공의료"…중앙의료원 병상축소 논란
기사내용 요약
국립중앙의료원 병상 1050→760 축소
기재부 "병동 1천개 이상 운영 비효율"
의료계 안팎 "전면 재검토 필요" 반발
"공공의료 확충 국민과의 약속 져버려"
"공공병원 확대, 의료서비스 향상 직결"
[서울=뉴시스] 백영미 기자 = 국립중앙의료원(NMC)이 신축·이전해 운영하려던 병상 수가 기획재정부(기재부)의 사업비 삭감으로 애초 보건복지부(복지부)가 요구한 1050병상에서 760병상으로 대폭 축소된 것을 두고 의료계 안팎에서 반발의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17일 관련부처에 따르면 복지부는 최근 중앙의료원과 협의해 총 1050병상(의료원 800병상·중앙감염병병원 150병상·중앙외상센터 100병상) 운영에 필요한 사업비를 기재부에 요구했다.
하지만 기재부는 사업비를 1조2341억 원에서 1조1726억 원으로 축소해 760병상(의료원 526병상·중앙감염병병원 134병상·중앙외상센터 100병상)으로 확정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중앙의료원이 이전하는 중구 방산동 일대 미군 공병단 부지가 있는 지역에 대형병원이 여럿 있어 병동을 1000개 이상 운영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정책 수립을 지원하는 정부출연 연구기관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을 통해 중앙의료원 신축·이전 사업계획의 적정성을 재검토한 결과라는 설명이다.
중앙의료원의 병상 수가 애초 계획보다 축소되자 의료계 안팎에서는 "공공병원 확충이 골자인 공공의료가 경제논리에 밀렸다"며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반발이 잇따르고 있다. 공공병원은 적정한 진료를 통해 진료비 부담을 낮춰 쪽방주민, 이주노동자, 장애인 등 취약계층의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공공병원 수는 2019년 12월 말 기준으로 전체의 5.5%, 병상 수는 9.6%에 불과하다.
국립중앙의료원 총동문회는 전날 성명서를 내고 "중앙의료원 신축·이전사업의 병상 규모가 대폭 축소된 것에 대해 분노와 배신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면서 "예산당국이 ‘신축·이전 공동추진단’이 수립한 기본원칙을 무시하고 총 사업비를 조정해 사업 규모를 대폭 축소한 것은 경제논리만 앞세운 결정으로서 개탄스럽다"고 밝혔다.
이들은 "중앙의료원이 필수 중증 의료의 중앙센터와 지역 공공병원의 3차병원으로서의 역할을 하려면 본원 800병상, 중앙감염병병원 150병상, 중앙외상센터 100병상 이상이 확보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예산당국이 주도한 신축·이전 총 사업비 조정 협의 결과는 당장 철회돼야 한다"면서 "중앙의료원의 병상 수를 대폭 축소한 것은 국가 공공의료 컨트롤타워로서의 기능을 포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중앙의료원 신축 이전 사업은 국가 공공의료 백년대계를 위한 역사적 과업으로 단순한 경제 논리에서 벗어나 미래 공공의료 수요에 대비할 수 있도록 병상 규모와 총 사업비가 산정돼야 한다"면서 "요구가 받아 들여지지 않을 경우 강력한 투쟁도 불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도 성명을 내고 "기재부의 사업비 축소 방침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 공백과 지역간 격차 해소를 위한 국가적 과제도 심각히 후퇴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정의당 강은미 국회의원과 보건의료노조 국립중앙의료원지부는 이날 오전 10시30분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본관 앞에서 '국립중앙의료원 신축·이전사업 병상 축소 규탄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강 의원은 "기재부가 중앙의료원과 복지부의 요구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병상 규모로 축소하고 총 사업비를 삭감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은 코로나19 대유행 속에서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공공의료 확충, 강화라는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리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가중앙병원인 중앙의료원이 응급·외상·심뇌혈관 등 필수 중증 의료 제공과 국가중앙센터로서의 역할, 공공보건의료 정책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공공의료 백년대계’를 망치는 행위이자 제1·2차 공공보건의료 발전계획 등 지속적으로 이어온 국가 공공보건의료 정책을 무너뜨리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는 "중앙의료원을 신축·이전을 통해 상급종합병원 규모로 확충한다는 보건의료노조와의 9.2.노정합의에도 전면 위배되는 결정"이라면서 "중앙의료원 병상 규모 축소 결정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윤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민간병원의 특성을 고려해 코로나19 이후 발생할 수 있는 감염병 대응 역량을 높이고 국민에게 적절한 필수의료를 제공하려면 중앙의료원의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임준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교 의료관리·예방의학 교수는 "중앙의료원 신축·이전이 50년간 방치됐다가 코로나19를 계기로 재추진됐지만, 기재부가 경제성만 따지고 공공의료의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는 국가중앙병원에 대한 이해가 상당히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국립중앙의료원 신축·이전 사업은 2003년에 처음으로 제안이 나온 후 문화재 조사, 소음 기준 미충족 등의 이유로 미뤄졌다. 그러다가 지난 2021년 4월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유족이 감염병병원 건립을 목적으로 중앙의료원에 7000억원을 기부하면서 새 전기가 마련됐고, 복지부는 기재부와 총 사업비 조정 협의에 들어갔다.
임 교수는 "민간병원은 수익을 추구할 수밖에 없어 코로나19 대유행 당시 감염병 대응에 한계를 드러냈다"면서 "공공병원의 양적·질적 확대는 민간병원과의 경쟁을 통한 전체 의료 서비스 향상과 직결될 수 있는 만큼 최소한 1000병상 규모 정도는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 민간병원은 국내 보건의료 체계의 90% 가량을 차지하지만 진료수익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데다 병상 확보 문제, 병원 내 감염 우려 등으로 감염병 대응에 한계가 있다. 실제 코로나19의 경우 전체 병원의 10%도 되지 않는 공공병원이 코로나 환자의 80% 이상을 감당했다.
임 교수는 "기재부가 (중앙의료원 병상 축소)입장을 번복하지 않는 이상 결국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positive100@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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