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 ‘벌떼 입찰’로 위장된 호남 기업 사정설

박창민 기자 2023. 1. 17.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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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중흥·호반·우미·제일건설 강제 수사 착수
정권 교체 때마다 돌아오는 호남 기업 흑역사 반복될까

(시사저널=박창민 기자)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고 본격화된 건설사 '벌떼 입찰' 사건이 호남 기업 사정으로 비화하고 있는 모습이다. 당초 벌떼 입찰에 연루된 건설사들이 모두 호남 기업이라는 점에서 정치권에서 뒷말이 끊이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에서 급성장한 호남 건설사들을 타깃으로 잡은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왔다. 정부는 이 같은 지적을 일축했지만, 호남 건설사들을 전방위 압박하면서 '호남 기업 사정설'이 현실화하고 있다는 반응이다. 재계에서는 지난 정부에서 급성장한 호남 기업인들을 상대로 사건을 확대하는 게 아니냐는 시선도 나오고 있다.

계열사 동원해 불법으로 낙찰받은 혐의

2022년 말, 벌떼 입찰에 연루된 건설사들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된 점만 봐도 그렇다. 경찰은 지난해 12월1일 벌떼 입찰로 공공택지를 공급받은 호반·우미·대방건설 등 3개 건설사를 상대로 압수수색에 나섰다. 같은 달 22일에는 중흥·제일건설 등을 대상으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현재 이들은 벌떼 입찰로 공공택지 분양 입찰에 참여해 형법상 업무방해·건설산업기본법 등을 위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해당 건설사 및 계열사 전·현직 대표 등 10여 명을 피의자 신분으로 무더기 입건했다.

벌떼 입찰이란 건설사가 LH(한국토지주택공사)의 추첨제로 결정되는 공공택지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 시공능력이 없는 위장 계열사 등을 동원해 당첨 확률을 높이는 행태를 일컫는다. 이 행위 자체는 불법이 아니지만, 위장 계열사를 동원해 벌떼 입찰을 하는 건 불법이다. 필지당 수백억원의 수익이 발생하는 공공택지 청약은 건설업계에서 '로또'로 불리고 있다.

앞서 국토부는 벌떼 입찰에 연루된 건설사들을 상대로 철퇴를 가했다. 최근 3년간 LH의 공공택지 추첨 과정을 현장 점검한 결과, 소속 직원 급여를 모기업이 대신 지급하는 등 택지 확보 목적으로 위장 계열사를 설립한 정황을 포착한 것이다. 이에 건설산업기본법 위반을 이유로 전국에 있는 지자체에 영업정지 등 행정 처분을 요청하고, 경찰에도 수사를 의뢰했다. 아울러 2022년 9월에는 벌떼 입찰 근절을 위해 공공택지 입찰 시 모기업과 계열사를 막론하고 1개 업체만 추첨하는 '1사 1필지' 제도를 도입하겠다고도 밝혔다.

공교롭게 국토부의 주요 타깃은 모두 호남 기업(중흥·호반·우미·제일건설)이었다. 이들 건설사는 LH가 2017~21년 분양한 공공택지 물량 178필지 가운데 67필지(37%)를 낙찰받았다. 호반건설이 18필지로 가장 많고 이어 우미건설 17필지, 대방건설 14필지, 중흥건설 11필지, 제일건설 7필지 등이다. 이들이 LH 공공택지 낙찰에 성공할 수 있었던 건 다수의 계열사를 동원해 입찰에 나섰기 때문이다. 해당 기간 동안 공공택지 낙찰 업체가 총 101개사인 데 반해 중흥건설 47개, 호반건설 36개, 대방건설 43개, 우미건설 41개, 제일건설 19개로 총 186개 계열사를 거느린 것으로 집계됐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2022년 9월26일 오후 서울 송파구 거여동의 한 아파트 단지를 방문해 '벌떼 입찰' 현황 및 근절 대책 등을 점검한 후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국토부·공정위·국세청 등도 전방위 조사

그 결과, 호남 건설사들이 벌떼 입찰로 급성장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실제로 이들 호남 건설사는 재계 서열에 지각 변동을 일으킬 만큼 잘나갔다.

먼저 중흥건설은 대우건설 인수에 성공하면서, 재계 서열 20위에 올랐다. 2021년 공정자산총액이 9조2979억원이었지만, 2022년 20조2920억원으로 증가했다. 2015년 자산총액 5조원을 돌파하며 대기업집단에 포함된 지 7년 만에 대우건설을 인수하면서 대형 건설그룹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호반건설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호반건설은 자산총액 13조7840억원으로 2021년 대비 30%나 증가했다. 재계 순위도 37위에서 33위로 올랐다. 특히 호반건설은 지난 5년 동안 건설뿐만 아니라 레저·금융·유통·미디어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업 확장을 본격화하고 있다. 국내 전선 업계 2위인 대한전선을 인수한 데 이어 서울신문 등 다수의 언론사까지 인수하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 이 외에 우미건설과 제일건설도 최근 몇 년 사이 신도시 아파트 사업에 뛰어들면서 전국구 건설사로 발돋움하고 있다.

호반건설의 시공능력평가 순위는 2012년 32위에서 13위로 올랐다. 같은 기간 우미건설은 47위에서 25위, 중흥건설은 77위에서 17위, 제일건설은 114위에서 24위로 껑충 뛰었다. 이와 관련해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은 "이들 업체는 벌떼 입찰로 무한 성장했고, 건설시장 경제는 혼란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벌떼 입찰 사건에서 호남 건설사들만 줄줄이 나오자 정치권에서는 문재인 정부에서 급성장한 호남 기업들을 타깃으로 삼은 게 아니냐는 지적도 동시에 나왔다. 그것도 여당 의원 입에서. 다음은 2022년 9월2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건설사 '벌떼 입찰'과 관련해 이용호 국민의힘 국회의원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사이에 오간 이야기다.

광주광역시 북구 무등로(신안동) 중흥건설 본사 건물 ⓒ시사저널 사진자료
서울 서초구 호반건설 본사 건물 ⓒ시사저널 사진자료

여당에서 먼저 나온 호남 건설사 타깃설

이용호 국민의힘 국회의원 : "호반, 중흥, 우미, 제일 등이 다 호남 기업인데 정권이 바뀌니 호남 기업이 집중적으로 타깃이 되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국민 정서나 공정거래 상식에서 접근하는 것은 좋지만 이런 오해가 없도록 세밀히 살펴 달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 "특정 기업만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상위 5개 기업이 지난 정부와 겹치다 보니 그런 인상을 가질 수 있겠지만 공평하게 처분할 것이다."

당시 벌떼 입찰 사건 조사를 진두지휘한 원희룡 장관은 '정치적 오해가 없도록 공평하게 처분하겠다'며 호남 기업 사정설에 대해 선을 그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국토부에 이어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그리고 경찰까지 가세하면서 호남 건설사들을 전방위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벌떼 입찰에 연루된 호남 건설사들의 부당 거래 혐의에 대해 조사하고 있으며, 국세청은 오너 일가를 상대로 세무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국회 역시 벌떼 입찰을 근절하겠다며, 법안 발의에 나섰다.

건설사 벌떼 입찰 조사를 문재인 정부 기간(2017~21년)으로만 특정했다는 것도 다분히 정치적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한 호남 건설사 임원은 "벌떼 입찰 문제는 건설사들의 오랜 관행이다. 당연히 문제가 있으면 제재를 받고, 제도적으로 바꿔나가야 한다"면서도 "그런데 전 정권 기간만 특정해 벌떼 입찰 사건을 다룬 건 석연치 않다. 공교롭게 벌떼 입찰에 연루된 주요 건설사들이 모두 호남 기업으로 문재인 정부에서 급성장했다는 부정적인 기류가 생겼다"고 밝혔다.

사실 윤석열 정부 출범 직전부터 문재인 정부에서 급성장한 호남 기업들을 잡도리할 것이라는 말이 끊이지 않았다. 대표적인 게 호반건설이다. 호반건설은 벌떼 입찰뿐만 아니라 여러 사법 리스크에 시달리고 있다. 먼저 김상열 전 회장은 계열사와 가족을 공정위 보고자료에서 누락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지난해 12월8일 1심에서 1억5000만원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대장동 수사' 여파도 주목

아울러 최근 공정위는 경영권 승계 관련 부당 내부거래와 지원 등 혐의로 호반건설에 심사보고서를 발송했다. 심사보고서는 검찰의 공소장 격으로 최종적인 제재 수위는 공정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결정된다. 시정명령과 과징금 외에 김상열 전 호반건설 회장을 검찰에 고발하는 방안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호반건설은 2008~18년 벌떼 입찰로 473개 택지 중 44개를 낙찰받고, 내부거래로 김 전 회장의 장남과 차남에게 일감을 몰아줘 각각 7912억원, 4766억원의 분양 수익을 올리게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외에도 '대장동 수사'의 불똥이 호반건설로 튀면서 그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도 미지수다. 검찰은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등 이른바 '대장동 3인방'이 대장동 사업에 앞서 위례신도시 개발사업에까지 깊숙이 관여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 범위를 넓혔다. 더 나아가 대장동 사건 관련자 공소장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성남시장 재직 시절 재선을 위한 선거 자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호반건설과의 불법 이면합의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이 적시됐다. 일각에서는 이번 수사가 정치권 불법 대선 자금 규명을 넘어 기업 수사로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최근 호남 건설사들이 떨고 있는 이유다. 사정 정국의 불씨가 어디로 튈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특히 호남 기업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정의 칼바람을 맞는 흑역사가 반복됐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는 호남 기업인 팬택·대주·프라임그룹 등이 잘나갔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이들 기업 모두 각종 부패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무너졌다. 중흥그룹도 2015년 박근혜 정부에서 호남 정치인들과 유착됐다는 의혹으로 대대적인 검찰 수사를 받은 아픈 기억이 있다.

벌떼 입찰 논란으로 움츠러든 건설사들
중견 건설사들 타격 불가피…대형 건설사들은 반색

정부가 공공택지 '벌떼 입찰'에 칼을 빼들면서 그동안 주택 위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성했던 중견 건설사들의 타격이 예상된다. 1월5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공공택지 입찰 과정에서 여러 계열사를 무더기로 내세워 낙찰에 참여하는 이른바 '벌떼 입찰' 업체에 대해서는 행정제재 및 택지 환수를 추진한다. 그동안 벌떼 입찰로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한 건설업체를 강도 높게 제재하겠다는 게 정부의 의지다.

의심 업체 중 법규 위반 업체에 대해서는 사전청약 참여 시 제공하기로 했던 인센티브 가점을 축소 적용한다. 이달부터는 모기업과 계열사를 포함해 1개 업체만 1필지 추첨에 참여할 수 있는 '1사 1필지' 제도도 도입한다. 공공택지 경쟁률이 과열되는 규제지역(주택법상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 및 수도권정비계획법상 과밀억제권역)의 300가구 이상 택지에 2025년까지 시행하고 성과를 점검한 후 연장 여부를 결정한다.

정부의 강도 높은 제재에 대해 건설업계는 억울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중견 건설사로서 LH 규정에 따라 적법하게 토지를 낙찰받았다는 것이다. 아울러 채산성이 맞지 않는다며 아무도 공공택지를 받지 않으려 할 때 기꺼이 나서 주택 공급에 힘썼다는 점을 무시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앞으로도 소규모 택지 등 대형 건설사가 외면하는 곳은 중견 건설사들이 맡아야 하는데 이렇게 몰아붙이면 누가 낙찰받으려 하겠느냐는 불만도 제기된다. 정부의 벌떼 입찰 제재 및 입찰 강화로 향후 경영활동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반면, 대형 건설사는 정부의 벌떼 입찰 제재 등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는 한편, 공공택지 입찰 기준 강화를 오히려 반기는 분위기다. 그동안 대기업 규제 등 여러 이유로 공동주택용지를 매입하는 것이 사실상 어려웠는데 새롭게 기회가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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