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아파트를 12억에 샀다"…모델하우스 난동 사건 전말
전국 대부분 비규제지역…'청약홈' 이용 의무 없어져
경쟁률·잔여 가구 등 비공개 허용…정보 비대칭 우려
무순위 청약 유도한 '깜깜이 분양' 가능성도 ↑
부동산 업계에서 '깜깜이 분양'으로 인한 청약자 피해가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가 부동산 시장 규제를 걷어내고 있지만, 청약자 보호를 위해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7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30대 직장인 A씨는 지난해 5월 대구에서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그에 따르면 분양대행사는 로열동·로열층은 인기가 좋아 하나 정도만 남았으며, 계약률은 30%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A씨는 분양대행사의 말을 믿고 계약했지만, 이후 공개된 계약률은 16%에 그쳤다. 로열동·로열층도 다수가 남아있었다.
당초 설명보다 낮은 분양률에 A씨는 "허위·과장 광고 탓에 계약했다. 입주자 없는 유령 아파트를 마음 졸여가며 12억원에 살 사람은 없다"며 모델하우스를 방문해 계약 해지를 요구했다. 시행사는 분양률 고지가 법적 의무사항이 아니며, 계약 해지는 불가하다고 맞섰다. 이에 격분한 A씨가 의자를 던져 모델하우스에 마련된 아파트 모형을 부수면서 이 사건은 전국적인 이목을 끌었다.
비규제지역 무순위 청약, 정보 '비공개' 허용
관련업계에서는 앞으로 A씨와 같은 사례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정부의 1·3대책으로 서울 강남·서초·송파·용산구를 제외한 전 지역은 비규제지역이 됐다. 비규제지역 무순위 청약은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을 이용하지 않고 자체 사이트에서 진행할 수 있다. 자체적으로 무순위 청약을 하는 경우에는 분양률이나 잔여 가구 수를 공개할 의무가 없다.
과거 무순위 청약의 경우 남은 가구수나 동·호수가 청약홈에 공개됐지만, 이제는 초기계약률을 비롯해 관련 정보를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얘기다. 결과적으로 청약자는 상담원의 설명에 의존해 청약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상담원이 10% 미만인 분양률을 50% 이상이라고 속이면 청약자는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을 내려야 한다. 이는 청약자의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시행사들이 청약홈을 이용하면 피할 수 있다. 자체적으로 무순위 청약을 진행하는 경우에도 청약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스스로 공개하면 된다. 하지만 시행사들이 청약홈을 이용하거나 스스로 정보를 공개하진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무순위 청약 접수 당일 자체 사이트에 청약 일정을 공고해 신청을 받는 것도 가능하다보니 '깜깜이'로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최근 무순위 청약을 진행한 서울 성북구 장위동 '장위자이 레디언트'도 자체 분양 홈페이지에서 신청받았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청약홈에서 무순위 청약을 여러 차례 진행했다가 저조한 계약률에 기피 단지로 낙인찍힌 곳이 많다. 누가 청약홈을 쓰고 싶겠냐"며 "자체적으로 무순위 청약을 하는 경우에도 분양률 등의 정보를 숨기는 편이 분양에 유리하다"고 지적했다.
특별공급과 1·2순위 청약 기간 마케팅 활동을 하지 않아 미분양을 유도하고, 무순위 청약에서 주택 판매를 집중하는 '깜깜이 분양'이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낮은 분양률을 감추는 동시에 홍보 대상을 구매 가능성이 높은 수요자로 한정해 사업비의 5~10%를 차지하는 마케팅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해당 시·군 거주 무주택자로 제한됐던 신청 자격도 내달부터 폐지되기에 구매층도 넓힐 수 있다.
"누가 정보 공개하고 싶겠나…안전장치 필요"
전문가들은 정보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는 깜깜이 분양으로 인해 청약자가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지적한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 수석위원은 "시장 냉각으로 미분양 물량도 늘어나고 있고, 정보 공개를 꺼리는 사업자도 늘었다"며 "서울에서도 잔여 가구 수 등을 모르고 청약해 피해를 겪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규제지역에서 자체적으로 무순위 청약을 하더라도 주기적으로 분양률 등의 정보를 공개하도록 하는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청약자가 최선의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정보 공개를 강제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도 "정부가 시장주의적 행보를 걷고 있다. 결국 '알아서 사고 알아서 팔아라'는 것인데, 청약자가 잘못된 정보로 피해를 보더라도 그 책임이 고스란히 청약자에게 떠넘겨질 우려가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정부가 안전장치를 마련한다는 명목으로 규제를 더하긴 어렵다고 내다봤다.
그는 "올해 분양하는 아파트들은 지난해부터 준비하다가 시기를 더 늦출 수 없어 나오는 것들"이라며 "이 물량이 잘 팔리지 않는다면 건설사 부도와 건설경기 침체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낮은) 분양률을 공개하면 쉽게 팔리지 않을 테고 건설 경기에 악영향을 줄 텐데, 이는 정부가 바라는 방향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또 "깜깜이 분양에 단점만 있는 것도 아니다"고 덧붙였다.
무순위 청약이 늘어나면 청약자 입장에서도 장점이 있다. 우선 청약통장을 쓰지 않기에 부담 없이 주택을 고를 수 있다. 당첨된 이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위험부담 없이 취소가 가능한 것이다. 타지역 유주택자도 참여할 수 있고 계약하면서 동·호수를 선착순으로 고를 수도 있다.
건설업계에서는 시장 침체로 미분양 물량이 쌓여가는 만큼 깜깜이 분양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순위 내 마감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는 깜깜이 분양이 더 효과적인 경우도 있다"며 "시간이 지나면 미분양 물량이 많은 일부 건설사들을 중심으로 (깜깜이 분양이) 늘어날 것"이라고 진단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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