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야영] 절벽 옆 세 평 언 땅에 3명 함께 눕다
나만큼이나 산이라면 못 올라서 안달이 난 김혜연이 몇 달 전부터 충북 알프스를 종주하자며 졸랐다. '하필이면 겨울에? 음… 괜찮은데?! 간만에 이 한 몸 불살라 보자!' 때마침 "겨울산, 겨울산!" 노래 부르던 한예진에게도 연락이 왔다. "그래! 너도 가자!" 그렇게 세 사람이 뭉쳤다.
충북 알프스는 충북 보은군 서원리에서 시작해 구병산, 형제봉을 지나 속리산 능선의 여러 봉우리들을 거쳐 신정리의 묘봉까지 43.9km에 이르는 장거리 코스다. 묘봉~관음봉~북가치 구간과 구병산~서원리 구간은 일부 비법정 탐방로와 산불방지기간으로 입산 통제 중이었다. 준법 정신이 투철한 혜연이는 입산 통제 구간은 빼자고 했다. 나는 산에서 취사할 일 없으니 전 구간을 걷자고 했다. 43.9km를 굳이 '충북 알프스'라고 이름 붙인 다음 특허청에 출원 등록까지 하며 홍보해 놓고, 비법정 탐방로로 묶어 통제하다니! 이해되지 않았다. 막내 예진이는 언니들의 의견에 따르겠다며 한 발짝 물러섰다. 결국 모범 산악인인 혜연이를 범법자로 만들 수 없어 양보했다. 들머리는 법주사로 정했다. 국립공원을 벗어나 1박 하고, 하산은 구병산 대신 신선대에서 내려가기로 했다.
해가 지기 전에 국립공원을 벗어나자!
보은읍에서 밥을 먹고 콜택시에 올랐다. 배낭 두 개를 트렁크에 구겨 넣고, 나머지 하나는 뒷좌석 중간에 세웠다.
"어이쿠, 그 큰 걸 짊어지고 산행하는 거예요? 멋져요 아주!"
기사님의 칭찬에 어깨가 솟았다.
"네~ 충북 알프스 종주합니다!"
자신만만하게 답했다. 택시는 법주사 입구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포장길을 달렸다. '산 입구까지 택시 타고 간다고?' 머릿속에서 아주 잠깐 '이성' 팀(택시 타자!)과 '감성' 팀(택시 안 돼!)이 찬반 토론을 벌였다. 자, 합리적으로 계산해 보자. 문명의 이기를 애써 거부할 필요는 없다.
"기사님… 차로 갈 수 있는 최고 높이까지 가주세요! 하하하."
이성 팀이 승리했다. 귀에 닿을 듯 솟아 있던 어깨가 스르륵 내려갔다. 영혼까지 끌어 모아 최선을 다해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던 택시는 세심정휴게소에서 멈췄다.
"여기까지가 최선이에요. 도로 끝입니다!"
기사님의 말대로 임도가 끝났다. 3km를 날로 먹었다.
날씨가 포근했다. 우리는 곧 거대한 역삼각 김밥같이 생긴 바위와 마주했다. 그 앞에서 사진을 찍자고 하자 혜연이와 예진이는 기울어진 바위를 똑바로 세우려는 듯한 포즈로 바위를 손으로 받쳤다. 우스꽝스럽게 앞뒤로 붙어 시지프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로, 신을 기만한 죄로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는 벌을 받았다) 코스프레를 하는 두 녀석의 장난 덕분에 즐거웠다. 문장대 사거리에 다다를 때까지 3km 남짓 쉴새 없이 올랐다. 오르는 내내 때아닌 더위와 오르막에 지쳐 낙오되는 등산객들을 지나쳤다.
출발이 늦었던 우리는 지체할 수 없었다. 해가 지기 전에 국립공원을 벗어나야 했다. 결국 문장대 사거리에서 배낭을 내렸다. 간식 주머니에서 빵과 에너지 바를 주섬주섬 챙겨 입에 넣었다. 다행히 셋 다 종주할 때는 식탐이 없다. 겨우 몸을 움직일 정도의 에너지원만 섭취했다. 우리 셋은 성격이 제각각이다. 하지만 종주 시 이동 속도, 체력, 식량 취향과 개그 코드는 대체로 비슷하다. 좋은 파트너인 것이다.
사거리에 배낭을 둔 채 문장대에 올랐다. 10여 년 전 백두대간 종주를 할 때 문장대에서 선배들이 해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얘들아, 문장대를 시계방향으로 세 바퀴 돈 후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대!"
"언니, 진짜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예진이는 시계방향으로 움직였다. 혜연이는 안 속는다며 요지부동이었다. '한 놈 걸렸으니 됐다!' 옛날에 '그 한 놈'은 나였다. 막내는 언제나, 누가됐든 때묻지 않고 순수하다. 막내의 소원타임이 끝나고 내려가려는데 한가운데 커다란 자쿠지Jacuzzi(욕조)처럼 생긴 웅덩이가 있었다. 베네수엘라 호라이마 테푸이Roraima-Tepui산에서 봤던 자쿠지 얘기를 했다. 혜연이에게 바위 욕조 안에 들어가 포즈를 취해 달라고 했다. 나의 옛날 여행사진을 보여 주지도 않았는데, 그녀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그때 나와 똑같은 포즈를 취했다. 웃음이 나왔다. 무심한 척 다 맞춰주는 동생들 덕분에 즐거웠다. 문장대 인증을 마치고 내려갔다. 배낭을 짊어지고, 능선을 오르내렸다.
기암괴석이 즐비한 능선은 한시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문수봉, 청법대를 지나 신선대 휴게소에 도착했다. 다시 예전 일이 떠올랐다. 백두대간 종주 때 항상 새벽 3시쯤 출발해 쉴새 없이 달렸다. 심신이 지칠 때쯤 도착한 이곳에서 동료들과 나눠 마신 시원한 당귀주가 세상 꿀맛이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그날 다짐했다.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겠다'고. 꿀맛은 꿀맛이고 고생은 고생이다. 등산의 'ㄷ'자도 모를 때, 지인의 권유로 백두대간을 시작했다.
당시 나는 왜 이 능선을 걷고 있는 건지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무작정 길을 따라갔다. 사방이 어두울 때 산행을 시작해 깜깜할 때 내려왔다. 결국 이런 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멈췄다. 백두대간 완주에 실패했지만 함께했던 선배들 덕분에 산행 실력이 좋아졌고, 지식도 엄청나게 쌓였다. 산에 관한 흥미가 불탔다. 나중엔 혼자 세계의 오지를 마음껏 다닐 수 있게 됐다. 그때 추억을 안주 삼아 신선대에서 한 잔하고 싶었지만, 갈 길이 멀어 포기했다. '언젠가 또 여기 와서 당귀주의 추억을 곱씹는 날이 오겠지?' 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우리, 텐트 칠 수 있을까?
바위를 탐닉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남들은 바위 이름 맞추기를 했겠지만 우리는 틈만 나면 바위를 기어오르려고 했다. 벌써 몇 번째 배낭을 내려놓으려고 하자, 참다 못한 예진이가 앓는 소리를 했다.
"언니들! 이제 그만, 우리 갈 길이 멀어요!"
막내의 잔소리에 내리려던 배낭을 다시 고쳐 멨다. 속리산을 지키는 거대한 산적 '바위킹'에 홀려 포로가 될 뻔했다.
"그래! 우리 이제 앞만 보고 달리자!"
쉬지 않고 걸었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수록 기온이 재빨리 떨어졌다. 질척거리던 땅이 어느새 얼어붙었다. 그늘진 오르막은 거의 빙벽 수준으로 변해 있었다. 천왕봉 정상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얼음 위로 군데군데 바위가 살짝 튀어나와 있어 징검다리 건너듯 걸었다. 아이젠을 꺼냈다. 혜연이와 예진이는 얼마 남지 않은 정상까지 그대로 진행했다. 아이젠 덕분에 걸음이 쉬워졌다.
"먼저 가서 숙영지 좀 살펴볼게".
둘을 뒤로하고 앞서 올랐다. 정상에 올라 반대쪽 길을 내려다 봤다. 절벽만큼이나 급경사로 내리 꽂는 하산길이었다. 앙상한 나무 사이로 하얀 속살이 드러난 능선을 훑었다.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할 만한 거리에는 아무리 봐도 티피 텐트 하나 세울 만한 공간이 없었다. 둘이 정상에 도착했다. 둘에게 여기에 사이트를 구축할 것인지 계속 가야 할지 의논했다. 다음날 걸어야 할 거리도 만만치 않아 조금 더 걷기로 했다. 마땅한 공간이 없으면 텐트 없이 비박하기로 했다.
위에서 본 그대로 하산길이 무척 가팔랐다. 줄곧 농담과 장난을 쳤던 우리는 모두 진지해졌다. 생사를 넘나들 정도의 비상사태는 아니었다. 다만 자면서 아래로 굴러 떨어지지 않을 정도의 안전한 장소를 확보해야 했다. 해를 등진 동쪽 면은 이미 어둑해졌다. 길은 여전히 미끄럽고 경사는 더욱 심해졌다. 한 손은 잔나무들을 부여잡고 한 손은 스틱에 의지한 채, 발을 내디뎠다. 100m쯤 내려가자 공간이 나왔다!
티피 텐트는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만, 완벽하게 피칭하지 않아도 된다. 바람과 성에만 막을 수 있으면 된다. 티피 텐트 전문가인 혜연이도 이곳에 숙영지를 만드는 데 동의했다. 셋이 함께 누우려면 중간 폴은 세울 수 없었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끈을 걸어 꼭대기를 고정했다. 나무가 촘촘하게 있어 텐트 사이즈대로 펼칠 수 없었고 나무 위치가 애매해서 가이라인Guy Line(텐트의 흔들림을 최소화하는 줄)을 고정하기도 힘들었다. 가이라인을 스틱 손잡이에 걸고, 나무와 나무 사이에 스틱을 끼워 지렛대처럼 고정한 다음, 줄을 팽팽하게 당겼다. 그러니 점점 강해지는 바람을 곧잘 버텨냈다. 텐트 안에 그라운드 시트를 깔고 그 위에 매트를 깔았다. 잠자리만 폈을 뿐인데, 벌써 캄캄해졌다.
만약에 대비해 비상용 리액터를 가져왔지만, 장소가 협소해 사용할 수 없었다. 각자 가져온 빵과 간식으로 배를 채웠다. 행락에 물들어 있다가 오랜만에 알피니스트 흉내를 내니 이상하게 뿌듯하고 즐거웠다. 각자 침낭 안으로 들어가 누웠다. 얼굴을 내놓고 입김을 뿜어내며 떠들기 시작했다. 잠시 후 내 몸을 짓누르는 무게가 느껴졌다. 혜연이와 예진이가 미끄러져 내려온 것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음보가 터졌다. 세계 여행을 다닐 때, 홀로 오지를 걷다가 아무데나 멈춰 그대로 텐트를 치고 잤다. 그러다가 비탈에서 미끄러져 굴러다니던 생각이 났다. 예진이와 혜연이의 매트 밑에 등산화를 받침대처럼 꽂았다. 더 이상 미끄러질 일은 없었다. 안정을 되찾은 우리는 추위에 아랑곳 없이 침낭 밖으로 입만 내민 채 수다를 이어갔다.
다음날 아침 텐트 밖은 말 그대로 '곰탕' 속이었다. 동쪽 하늘은 붉은 태양빛이 안개에 스며들어 오렌지빛을 띠었다. 오렌지빛이 진해질수록 따뜻한 기온이 퍼졌다. 아침 식사로 준비해 온 파운드 케이크를 나누어 먹었다. 겨울이라 종주하는 사람이 없는지 인적은 없었다. 따사로운 분위기 속에서 전의도 점점 누그러졌다.
"우리 오늘 피앗재 산장으로 하산할까?"
"좋아요!"
이심전심이었다. 부담이 없어지니 여유가 생겼다. 성에가 녹을 때까지 기다렸다. 안개가 걷히고 조망이 트였다. 나무가 촘촘하지 않았다면 자다가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졌을지도 모르겠다. 누울 자리를 주고 안전하게 지켜준 자연에 감사인사를 했다. 가파른 하산길은 여전히 얼어붙어 있었다. 모두 아이젠을 찼다. 등산로에 설치된 난간에 매달리다시피 얼음 위를 걸었다. 난간이 있는 걸 보니, 상습 결빙구간인 듯했다. 한참을 내려와서야 직립보행이 가능했다. 걸어온 길을 돌아봤다. 성난 파도를 헤쳐나가는 바이킹처럼 우뚝 솟은 천왕봉 너머로 '바위 킹King'들이 늘어서 있었다.
피앗재 산장으로 가는 길도 한적했다. 엉켜 있는 넝쿨을 헤치며 걸었다. 작은 마을이 나타나고 피앗재 산장 간판이 보였다. 백두대간의 여느 산장이나 주막과 마찬가지로 입구에는 각양각색의 시그널로 빼곡했다. 굳게 닫혀 있던 문에서 사장님이 나오셨다.
"사장님! 맥주 세 병만 주세요!"
내려오는 내내 '각 1병'을 외쳤던 우리는 인사가 끝나기 무섭게 맥주를 주문했다. 병 뚜껑을 따자마자 벌컥벌컥 들이켰다. 마무리까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산행 코스
첫째 날 : 세심정휴게소(512m) 문장대 정상(1,054m) 천왕봉(1,058m) 박지(984m) 총 거리 7.5km(5시간 30분)
둘째 날 : 피앗재(650m) 피앗재 산장(330m) 7km(3시간 30분)
충북 알프스 통제구간
산불방지 통제구간: 묘봉~문장대 코스, 구병산~서원리 코스 11~12월, 3~4월 (매년 기간은 차이 있을 수 있음)
비법정 탐방로 : 문장대~관음봉~북가치(약 4km)
통제 구간 확인 방법 : 네이버지도 어플(산행코스에 붉은 라인을 확대하면 기간까지 확인 가능)
민미정의 깨알 팁
가이라인이 없다면 스틱으로!
가이라인은 텐트에 연결하는 끈을 지칭한다. 야영장에 바람이 강하게 분다거나 텐트 지붕에 눈이 많이 쌓였을 경우 텐트가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게 잡아주는 역할이다. 캠핑 분야에선 일반적으로 '가이라인 설치하기' 정도로 통용된다. 이번 산행 때 우리는 티피텐트를 가져갔는데, 숙영지가 상당히 좁아 텐트 모양을 바로 잡기가 힘들었다. '끈 길이를 짧게 해서 고정하면 되지 않느냐'는 의견이 있을 텐데, 숙영지 주변을 둘러싼 나무가 텐트와 너무 가까이 있어 끈을 연결하기가 애매했다. 그래서 스틱으로 가이라인을 대신했다. 급조한 것 치고 텐트를 단단히 잡아줘 아침까지 멀쩡했다.
월간산 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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