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대통령이 제1야당 대표와 이렇게 오래 안 만난 것은 처음이다?
대통령실, 야당과 회동 추진·이재명 대표는 수차례 영수회담 제안…성사는 안 돼
전임 대통령들은 이르면 취임 당일, 늦어도 110일 만에 만나
(서울=연합뉴스) 정성호 기자 이아미 인턴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 8개월이 넘도록 대통령과 제1 야당 대표 간 회동이 성사되지 않으면서 여야 협치가 점점 더 요원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인 문희상 전 국회의장은 13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역대 대통령 중에 이렇게 야당과 대화 안 하는 대통령은 처음 봤다"고 말했다.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도 4일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나와 "윤석열 대통령이 돼서 도대체 한 번도 야당 쪽 인사하고는 아마 상견례조차 안 하지 않느냐"며 "이런 대통령이 어디 있느냐"고 말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12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미 여러 차례 대통령과의 회담을 제안했고, 그 제안은 지금도 유효하다"면서 여야 최고 책임자 간 회담을 거듭 압박했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회담은 언제나 열려 있다"면서도 여러 제반 여건을 고려해야 한다며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여당인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한 발 더 나가 "대통령이 범죄 피의자와 면담할 때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차가운 반응을 보였다.
이에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해 5월 10일 취임 직후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등 여야 3당 지도부와 첫 회동을 추진한 바 있다.
하지만 이 회동은 불발됐다. 여당 관계자는 "민주당이 시간이 안 맞는다고 알려왔다"고 밝혔다. 당시 민주당 내 일각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안 문제로 여야가 대립 중인 상황에서 회동은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언론들은 보도했다.
또 윤 대통령은 이달 2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2023년 신년인사회'를 열면서 김진표 국회의장 등 5부 요인과 이재명 대표, 정의당 이정미 대표, 여당 의원 등을 초청했으나 이 대표 측은 불참했다. 야당에선 이정미 대표가 유일하게 참석했다.
대통령과 제1 야당 대표 간 만남은 '영수(領袖)회담'으로도 불리며 정국의 꼬인 실타래를 푸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여야 정쟁의 와중에도 양보와 타협으로 협치를 끌어내는 마당 역할을 했다. 특히 과거 대통령이 여당 총재 또는 대표를 하면서 제왕적 권한을 행사하던 시절에는 재량권을 발휘할 여지가 크다 보니 더 극적인 타협이 이뤄지기도 했다.
다만 현재 대통령실은 영수회담이란 용어에 부정적이다. 대통령이 여당 총재를 겸하던 권위주의 시대의 잔재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실제 행정부와 입법부 간 분리 원칙에 따라 당정(黨政) 분리에 나섰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나는 행정부 수장이지 여당 영수가 아니며, 만약 영수회담을 하려면 민주당과 한나라당 대표끼리 만나 회담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이후로도 대통령들은 주요 야당 지도자나 지도부와 만나 정국 현안을 논의하고 국정 운영에 대한 협조를 당부하곤 했다. 그렇다면 전임 대통령들의 경우 취임 후 이런 만남이 성사되기까지 얼마나 걸렸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대통령 직선제로 당선된 노태우 전 대통령 이후 역대 대통령들은 이르면 취임 당일(문재인 전 대통령), 길게는 110일(김영삼 전 대통령) 만에 제1 야당 대표와 회동했다.
1988년 2월 25일 취임한 노태우 전 대통령은 취임 93일 만인 그해 5월 28일 야 3당 총재와 청와대에서 만나 광주 민주화운동 해결책, 제5공화국 비리 진상 규명 등에 관해 논의했다.
이후에도 노 전 대통령은 10차례 이상의 다자회담을 비롯해 야 3당 총재와 연쇄 영수회담을 했다. 그중 두드러지는 것은 1990년 1월 있었던 연쇄 영수회담이다.
노 전 대통령은 11일, 12일, 13일 김대중 평화민주당 총재,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와 연이어 만났는데, 이 회담은 3당 합당의 초석이 됐다.
3당 합당이란 '여소야대' 상황이었던 1990년 1월 22일 집권 여당인 민주정의당과 야당인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이 합당해 거대 여당인 민주자유당이 탄생한 사건을 말한다. 3당 합당의 물밑 작업이 영수회담에서 이뤄진 것이다.
3당 합당으로 만들어진 민주자유당은 현재 국민의힘의 전신으로, 제1 보수 정당의 뿌리가 됐다. 합당 이후에는 평화민주당이 유일한 원내 야당으로 남았다.
1993년 2월 25일 취임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취임 110일 만인 6월 15일, 청와대에서 야당인 민주당 이기택 대표와 처음으로 회동했다.
약 2시간 25분 동안 단독대좌로 진행된 이날 회동에서는 정국 개혁 방향을 비롯해 개혁 입법, 북한 핵 문제, 금융실명제 등에 관한 폭넓은 협의가 이뤄졌다.
당시 민주당은 회동에 대해 "여야 영수가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고 국정 현안에 상당 부분 의견을 함께한 것을 환영한다"고 호평하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도 단독 영수회담이나 여당 지도부를 포함한 다자회담의 형식을 취해 10번 넘게 야당과 만났다.
1998년 2월 25일 취임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취임 이틀 후인 27일 여야 연쇄 영수회담을 했다. 야 3당과의 조찬 회담 뒤 한나라당 조순 총재와는 단독 영수회담을 갖고 총리 인준을 위한 야당의 초당적인 협조를 부탁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임기 중 8회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와 영수회담을 했다. 2000년 10월에는 영수회담을 2개월마다 한 번씩으로 정례화하는 방안에 합의하는 등 여야 협력을 통한 '상생의 정치'를 실현하는 데 애쓴 것으로 평가된다.
2003년 2월 25일 취임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 14일 만인 3월 11일 김종필 총재가 이끄는 자유민주연합 지도부와 만찬을 시작으로 야당과 회동했다. 이어 다음 날인 12일에는 박희태 대표권한대행 등 제1야당인 한나라당 지도부를 만나 약 1시간 30분 동안 경제 문제, 북핵 사태, 대북송금 특검법 등 국정 전반에 관한 의견을 교환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노 전 대통령은 영수회담이란 용어는 꺼렸지만 야당과는 자주 만났다. 여야 5자 회동, 4자 회동 등 다자 회동의 형태로 먼저 대화정치를 제안하기도 했다. 그중 제1야당 대표와의 단독 회동은 두 차례였다.
노 전 대통령은 2005년 9월 7일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단독 회담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지역주의 타파를 명분으로 한나라당에 총리·내각 임명권을 주겠다는 '대연정'을 제안했고 2시간 30분간 이어진 회담에서 이 문제를 설득했지만 아무런 접점을 찾지 못했다.
2007년 2월 9일에는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와 청와대에서 만나 사법개혁 관련법과 사립학교법 등 주요 쟁점 법안이 임시국회에서 처리될 수 있도록 협력하기로 했다.
2008년 2월 25일 취임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취임 59일 만인 그해 4월 24일 여당인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와 야당인 통합민주당 손학규·박상천 공동대표 등 양당 지도부를 초청, 국정 운영 전반에 대한 초당적 협력을 요청하고 해외 순방 결과를 설명했다.
이 전 대통령이 제1야당인 민주당 측과 단독 영수회담을 가진 것은 ▲ 2008년 5월 20일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 회동 ▲ 2008년 9월 25일 정세균 민주당 대표 회동 ▲ 2011년 6월 27일 손학규 민주통합당 대표 회담까지 임기 동안 총 3차례였다.
이 외에도 이 전 대통령은 자유선진당 심대평 대표와 단독으로 만나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후 초당적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2013년 2월 25일 취임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취임 46일 만인 2013년 4월 12일 민주통합당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 등 야당 지도부를 청와대로 초청해 북한의 도발 위협에 대한 초당적 협력을 당부했다. 이어 부실 인사 논란에 관해 직접 유감의 뜻을 표하며 사과하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야당과 회동 시 주로 3자 회담으로 만나 단독 영수회담을 한 적은 없다. 2015년 3월 17일에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여야 3자 회담을 하고 경제 재도약을 위한 초당적 협력을 요청했다.
그러나 임기 후반으로 가면서는 야당 쪽에서 여러 차례 영수회담을 요청했으나 성사되지 않았고, 최순실 국정개입 사태가 불거진 뒤인 2016년 11월 7일에는 박 전 대통령이 국정 혼란 타개책을 논의하자며 영수회담을 제안했지만 야 3당으로부터 사실상 퇴짜를 맞았다.
2017년 5월 10일 취임한 문재인 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서둘러 야당과 만났다.
취임 당일 국회 본청 내 5당 당사를 찾아가 정우택 자유한국당 당 대표 권한대행,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를 차례대로 만나 협조를 청했다.
2017년 7월 19일에는 여야 4당 대표와 청와대에서 115분간 오찬 회동을 하고 정상외교의 성과를 설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문 전 대통령의) 들러리 서지 않겠다"며 불참했다.
홍 대표는 당 대표 취임 후 영수회담 요청을 줄곧 거절하다가 2018년 3월 7일 여야 5당 대표 오찬 회동 때 처음으로 문 전 대통령과 만나 안보 문제 등을 논의했다.
문 전 대통령과 홍 대표 간 첫 영수회담은 2018년 4월 13일에 열렸다. 청와대에서 비공개로 진행된 이 회동에서 홍 대표는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을 임명한 것과 청와대발 개헌안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16일로 윤 대통령이 취임한 지 252일이 됐다. 그러나 아직까지 제1야당 대표와의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다.
[표] 역대 대통령의 제1 야당과 첫 회동
meteor30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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