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도시철도 역명에 ‘조방’을 넣는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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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전 부산시 동구 범일2동 조방철물공구상가에서 만난 김아무개(71)씨에게 이 일대를 일컫는 '조방'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묻자 돌아온 답변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이곳을 조방으로 불렀다. 어떤 유래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부산 사람 누구한테나 조방으로 잘 알려진 곳"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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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방이 조방이지. 마, 다른 이름이 있능교?”
16일 오전 부산시 동구 범일2동 조방철물공구상가에서 만난 김아무개(71)씨에게 이 일대를 일컫는 ‘조방’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묻자 돌아온 답변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이곳을 조방으로 불렀다. 어떤 유래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부산 사람 누구한테나 조방으로 잘 알려진 곳”이라고 말했다. 공구상가와 길 하나를 사이에 둔 자유도매시장에서 만난 이아무개(67)씨는 “조방이 옛날에 무슨 기업 이름의 줄임말이라고 들은 것 같다. 오랫동안 여러 사람에게 잘 알려진, 익숙한 지명”이라고 했다.
조방은 1917년부터 1968년까지 범일동에 있던 면방직 회사인 ‘조선방직’의 줄임말이다. 일본 미쓰이 재벌이 설립했는데, 번성할 때는 직원이 3천명을 넘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한반도에서 생산되는 면화를 싼값에 사들여 면직물로 가공한 뒤 조선인들에게 비싸게 팔아 수익을 챙겼다.
낮은 임금과 장시간 노동으로도 악명 높았다. 1922년과 1930년, 1933년에 조선방직 노동자들이 노동조건 개선 등을 요구하며 파업 투쟁을 벌였다. 해방 뒤 미군정에 몰수돼 정부 재산이 되었다가 1955년 민간에 불하됐지만, 막대한 부채 때문에 1968년 부산시에 인수된 뒤 이듬해 회사가 해산됐다. 회사가 사라진 뒤에도 인근 지역은 전통시장들과 상가, 예식장 등이 밀집한 번화가였다. 사람들이 이곳을 자연스럽게 ‘조방’으로 부르게 된 이유다.
2012년 독립운동가인 고 이광우의 아들 이상국씨가 “조선방직은 식민지 노동약탈의 상징이다. 조방이라는 이름이 버젓이 사용되고 있는데 민족적 자존심을 크게 훼손하는 일”이라며 지역이나 업소명에서 ‘조방’ 사용을 금지하자고 제안했다. 이광우는 1943년 조선방직 파괴 계획을 짜고 공장 안 노동자 숙소, 부산진시장 등지에서 항일전단을 나누어 주다 일제 경찰에 체포돼 1945년 해방 전까지 옥살이를 했다. 2007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고문 후유증으로 고통을 겪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범일동에는 조방이 들어간 상호가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최근엔 부산 동구까지 가세했다. 도시철도 1호선 범일역에 ‘조방 앞’이란 명칭을 병행 표기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한달 동안 범일2동 주민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마쳤고, 올해 상반기에 전체 구민을 대상으로 2차 설문조사를 진행한 뒤 결과를 검토해 부산교통공사에 역명 병행 표기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한다. 역명 병기와 별개로 거리 표지석과 안내판 설치도 계획되어 있다. 원도심인 동구의 상권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동구 교통행정과 관계자는 “부정적인 의견도 있어 신중하게 진행할 예정이다. 주민 의견을 수렴해 결과를 보고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전쟁범죄 사죄·배상 운동을 펼치고 있는 부산겨레하나의 한 관계자는 “찬반양론이 있을 수 있지만, 일제 식민 역사를 한번 더 생각해봤으면 한다. 공공기관이 일제강점기 수탈 기업의 이름을 굳이 대중교통 역명에 표기하려고 나서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영동 기자 yd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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