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광장] '꼴찌의 슬픔에'에 공감하는 아이들에게

이상호 이상플러스 원장 2023. 1. 17.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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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교육 현장에서 가르친 지 어느덧 20여 년이 지났다.

당시의 아이들은 그다지 공감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나는 안다.

나중에 이 아이들이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 주변을 돌아보며 결국에는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는 것이 얼마나 지혜로운 일이었던 가를 깨달을 것이란 사실을.

모든 공동체의 뿌리인 '교육'에서조차 아이들의 공감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의 장래는 암담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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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교육 현장에서 가르친 지 어느덧 20여 년이 지났다.

국어 강의를 처음 하던 2001년의 겨울, 그날은 햇살이 바스락거리며 부서지는 오후였다. 현대 시 수업이었는데 마침 고1 아이들이 싸우고 있었다.

이유를 들어보니 한 학생이 여러 학생에게 놀림을 당하다가 참지 못해 서로 다퉜던 것이다. 여러 명이 낄낄대며 한 학생을 놀렸을 상황을 생각하니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원래 할 진도를 포기하고 아이들에게 『슬픔이 기쁨에게』라는 정호승 시인의 시를 설명했다.

이 시는 추운 거리에서 귤 파는 할머니에게 귤 값을 깎으며 기뻐하는 '이기적 기쁨'을 '이타적 슬픔'이 배려와 공감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 준다는 내용이다.

그 '이타적 슬픔의 힘'을 '이기적 기쁨'이 깨달을 때까지 기다려 준다는 의미도 노래하고 있다. 당시의 아이들은 그다지 공감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나는 안다.

나중에 이 아이들이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 주변을 돌아보며 결국에는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는 것이 얼마나 지혜로운 일이었던 가를 깨달을 것이란 사실을.

2023년, 올해 초에도 여전히 정치는 두 편으로 분열되어 시끄럽기만 하고, 경제는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사회는 타인에 대한 증오와 자신에 대한 무한 이기심으로 불안하기만 하다.

내가 그때의 시를 다시 떠올리는 거 건 아마 이 모든 혼란의 원인이 타인에 대한 공감 부족이 아니냐는 생각 때문이다.

모든 공동체의 뿌리인 '교육'에서조차 아이들의 공감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의 장래는 암담할 뿐이다.

공감의 가치를 가르칠 어른이 없고, 핸드폰 속에서 오로지 자신만의 시간을 최고로 삼는 아이들이 있는 한 서로서로 배려하는 우리의 수평적 관계 문화는 차츰 사라질 것이다.

그러고 보니 또 떠오르는 수필이 있다. 2002년에 출간된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라는 박완서 작가의 작품이다.

마라톤 대회에서 꼴찌로 달리는 마라토너가 포기하지 않도록 오랫동안 박수와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작가의 경험담이 녹아 있는 수필이다.

쓰러질 듯 쓰러지지 않는 그 마라토너의 인내력을 한 관중이 일깨워 준 것이다. 누구도 응원해 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마라토너에게 관중의 박수는 그의 지친 두 다리를 끊임없이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이다.

그렇다. 공감의 능력은 위대해서 내가 아닌 남의 마라톤 같은 인생에도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이런저런 생각에 바로 그 20여 년 전의 그날, 수업 전에 싸웠던 아이들이 수업 후에 언제 그랬냐는 듯 시시덕거리며 서로 놀고 있는 모습을 다시금 떠올린다.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그들에게 무언가 진지하고 큰 것을 바란다면 나의 시각에서 판단한 착각일 수도 있다.

그 아이들은 내가 '공감'이라는 추상적 관념을 주입하기 전부터 어쩌면 본능적으로 서로에게 공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교육적으로 '공감 교육'을 도외시해서도 안 된다. 어찌 됐건 어른으로서의 사회적 역할은 해야 하는 것이니까.

존경할 만한 어른이 점차 귀해지는 시대에 우리가 아이들의 모범이 되고, 타인에게 행하는 배려가 얼마나 소소한 행복이 되는지를 가르쳐 주어야 하니까.

빨리 배운 건 빨리 잊어버리고 오래 배운 건 오래가는 법이다. 세상의 모든 아이가 서로가 서로에게 따뜻이 배려하고 타인의 슬픔에 공감할 수 있도록 아주 오래도록 천천히 가르쳐 줄 생각이다.

애정을 가지고 '이타적 슬픔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꼴찌에게 보내는 진정 어린 응원'이 얼마나 소중한지 애들이 공감할 때까지 기다릴 예정이다.

나 역시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공감이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좋은 건… 내겐 그냥 어쩔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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