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1뷰] 한일, 강제동원 해법에 '속도' 내지만…해결 과제는 여전히 산더미
日의 '사과' 방식도 주목…'과거 담화 및 선언 계승' 방식 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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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이창규 기자 = 4년여 동안 한일관계 개선을 가로막고 있던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 배상 관련 해법안의 노선은 일단 '제3자 변제' 방식으로 잡혔다. 양국 정부로서는 조속한 관계 회복을 위한 최선의 방안을 도출했다고 할 수 있으나 관건은 피해자들의 마음을 어떻게 달랠 수 있느냐다.
정부는 지난 12일 '강제징용(동원) 해법 관련 공개토론회'에서 그동안 일본과의 협상 과정을 공개하고 추진할 해법안의 방향을 발표했다. 해법안은 그간 꾸준히 제기됐던 예상대로 제3자 변제인 '병존적 채무인수' 방안으로 정해졌다.
한국과 일본 양국 기업이 마련한 재원으로 '일재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주체가 돼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는 방안이다.
일본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체결로 피해 배상 책임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주장하고 있고 일본 전범기업인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은 지난 2018년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각각 1억원 또는 1억5000만원의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우리 대법원 판결을 수용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해당 해법안이 최대한 마련할 수 있는 절충안이라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피해자들의 입장은 '기술적' 방안을 찾는 것 못지않게 '감정적' 문제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으로, 여전히 병존적 채무인수가 최종적 해법안으로 확정되기 위해서는 해결되어야 할 과제들이 남아있는 상황이다.
◇ 피해자 동의 없는 제3자의 변제 가능?
일본 정부는 우리 정부가 제안한 '병존적 채무인수' 방안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분위기다. 토론회 이후 양국 외교장관이 전화통화를 통해 강제동원 등 현안을 논의한 데 이어 16일 외교 당국 간 국장급 협의까지 이뤄지면서 해법안 마련을 위한 논의에 속도가 붙고 있다.
미일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을 방문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도 "신속한 해결을 통해 (한일관계를) 건전한 형태로 되돌려 발전시키겠다"며 한일관계의 조속한 개선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우리 정부의 해법안에 기본적으로는 '동의'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지난주 공개토론회에서도 피해자들의 반발이 크게 불거진 것처럼, 현재 피해자 측은 병존적 채무인수 방안에 의구심을 갖고 있다.
정부는 피해자 측이 보유한 대법원 판결에 따른 채권은 '법정 채권'으로 피해자 동의 없이도 제3자 변제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토론회에 참석한 최우균 법률사무소 자유 변호사는 "(법정 채권은) 사적자치의 원칙이 적용될 여지가 없고 당사자가 채권 추임에 반대한다고 하더라도 제3자가 변제할 수 있다는 것이 유력한 학설의 논리"라며 "그래서 채무자가 아닌 재단의 경우에도 제3자 변제의 논리에 의해서 일단 변제할 수 있다는 게 학설의 논리"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피해자 측은 일본 기업이 대법원 판결을 '국제법 위반'이라며 수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점을 지적하며, 이런 상황에서는 제3자 변제도 성립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제3자 변제를 위해서는 주체인 재단(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일본 기업들의 채무를 인수해야 하는데 일본 기업들이 스스로를 채무자로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채무를 인수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게 피해자 측 주장이다. 또한 재단이 채무를 인수받아 절차를 진행하더라도 법원에서 각하돼 결국 변제가 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 일본 기업, 재원 마련에 참여할까…배상금 혹은 발전기금?
정부의 주장대로 제3자 변제가 가능하더라도 일본 기업들이 재원 마련을 위해 실제 출연할 지도 관건이다. 현재 피해자 측이 '병존적 채무인수' 방안을 격렬하게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도 일본 기업의 참여 없이 우리 기업들이 출연한 자금으로만 배상금을 지급할 것으로 우려하기 때문이다.
심규선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이사장은 앞선 토론회에서 "우선 한일청구권협정 수혜 기업인 포스코가 내도록 되어 있는 40억원으로 재판에서 승소한 15명에게 지급하고 다른 수혜 기업에서도 최소한 40억원 이상의 기부를 받아 유족들을 위해 사용하겠다"라고 말했다.
포스코는 지난 2012년 재단에 100억원을 출연하겠다고 발표한 뒤 현재까지 60억원을 이미 기부했다, 나머지 40억원에 대한 기부도 요청이 들어올 경우 절차를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포스코의 출연 이후 일본 기업들이 동참할 지 여부다. 피해자 측이 우려하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일본 기업들이 자금 출연을 꺼리는 것은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라는 결과로 인해 자신들이 '전범 기업'으로 낙인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이에 일본 기업이 재원 마련에 참여할 경우 전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제거하기 위해 '배상금'이 아닌 '미래발전기금'과 같은 이름으로 금액을 출연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이 경우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의 출연한 재원을 통한 배상금을 받아들일지는 불확실하다. 피해자들은 일본의 사죄가 필요하다는 입장에서 다른 명목으로 출연된 자금을 일본의 진정한 사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 일본의 '사과'는 어디까지 이뤄질까?
일본의 사과 여부도 핵심 사안이다. 앞서 일본 정부는 지난 1993년 '고노(河野) 담화'와 1995년 '무라야마(村山) 담화'를 통해 식민지 지배에 대해 사죄했다. 지난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통해서도 식민지 지배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사죄' 의사를 표했다.
그러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집권 때 담화와 선언에 대한 제대로 된 이행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한일관계에 균열이 갔다. 이로 인해 강제동원 해법 문제는 단순한 배상 문제를 넘어 피해자들의 감정과도 연결된 매우 민감한 현안이 됐다. 피해자들의 오랜 한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배상과 함께 일본의 사과가 반드시 필요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일본은 여전히 강제동원에 대한 피해 배상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체결 당시 총 5억달러의 유·무상 경제 원조를 통해 상당 부분 해결됐다는 입장을 부각하고 있다. 기시다 총리도 미국을 방문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일관계 개선을 강조하면서도 "1965년 국교정상화 이래 구축한 우호 관계를 따를 필요가 있다"라고 말해 한일청구권협정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이런 일본의 입장으로 인해 해법안이 도출되더라도 일본의 '불가역적인' 사과를 이끌어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일본이 향후 또다시 사과를 번복할 경우 한일관계의 파열은 물론 피해자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다시 입히기 된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우려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현실적인 수준에서 일본의 사과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일본이 과거 담화를 '계승하겠다'라는 입장을 표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는 방법론으로 이어진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양국 간) 새로운 합의문이 나오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겠지만 그렇게까지 어려울 수 있다면 기존 담화 내용들을 다시 읽고 그 부분에 대한 충실한 계승 및 이행을 확실히 이야기하는 것이 좀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생각된다"라고 말했다.
정부 역시 이같은 방안을 실현 가능안 안으로 상정해 일본과의 협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피해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일본의 '성의 있는 행동'을 요구하는 모양새다. 이는 지난 2015년 일본군 강제위안부 문제 합의 당시 정부가 피해자들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해 전격적인 합의에도 불구, 여론의 '역풍'을 맞았던 경험도 반영된 기조다.
자연스럽게 이 문제가 해결될 경우 이번 사안은 예상보다 빠르게 합의점을 찾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동시에 피해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일본의 사과' 방안을 받아내지 못할 경우 속도를 내는 듯한 강제동원 문제 해결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yellowapoll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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