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을 자극하는 모차르트와 라파엘로의 예술세계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정의내리는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그것은 삶의 여러 차원에 걸쳐있으며 미학적, 문화적, 도덕적 관념과도 연결되는 철학적 문제다.
고대 피타고라스 학파는 숫자로 표현이 가능한 비례와 조화, 그것을 통한 균형을 아름답다고 표현했다. 한마디로 그리스 로마 석조물과 석상에서 느껴지는 황금비율이라는 객관적인 잣대가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기준이었던 것이다.
이후 18세기 철학의 최고봉이자 근대미학의 틀을 완성한 칸트는 아름다움에 주관성을 부여했다.
그는 아름다움에 대한 정의를 단순히 개인의 호불호에 관한 문제로도 보았지만, 주관적인 차원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일반적 보편성 또한 아름다움을 설명하는 중요한 요소로 통찰했다.
즉, 미(美)에 대한 경험은 나의 감정 뿐만 아니라 상대의 감정 역시 비슷하게 느낀다고 했다. 칸트가 사용한 ‘주관적 보편타당성’과 ‘공통의 감각’이라는 용어는 근대 미학적 틀을 제공하고 있으며, 이후 비트겐슈타인의 미학과도 연결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편적으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문화적으로 오랜 시간 답습해온 본능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좌우가 대칭인 얼굴을 유전적으로 선호하고 귀를 크게 자극하는 로큰롤보다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며 태교를 한다. 심지어 식물들도 모차르트의혀 음악을 들었을 때 활력을 얻고 더욱 생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가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을 때 즐거우며, 라파엘로의 아기천사 그림을 볼 때 사랑스런 감정을 느끼는 것은 어찌 보면 본능에 가까운 것일 수도 있다.
30대에 단명한 천재라는 공통점 외에 무의식을 자극하는 모차르트와 라파엘로의 예술세계에서 주관적 보편타당성을 가지며 공통의 감각을 자극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 조화와 균형- 화음의 물결
모차르트와 라파엘로의 예술세계에서 조화와 균형은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그들의 작품은 조화와 균형 속에서 여러 멜로디를 하나로 엮어 어울리게 만드는 하모니와 같다.
모차르트는 아름다운 선율들을 짜맞추어 그것으로 스토리를 풀어내는 타고난 이야기 꾼이었다.
그의 현악 사중주 19번 KV 465 <Dissonant>는 이름처럼 제목이 ‘불협화음’이다. 현악 사중주곡중 유일하게 서주를 가지며 아래 성부부터 차례로 협화음이 아닌 불협화음으로 시작하고 있는데, 이런 실험적인 시도에서조차 그는 노련하게 여러 화음들을 사용하며 조화롭게 선율들을 풀어내고 있다.
모차르트 음악의 찬미자이자 당대 저명한 음악가인 바이올리스트 카를 디터스도르프(Carl von Dittersdorf)는 쉴새 없이 넘쳐나는 모차르트 음악의 아이디어와 선율에 대해 극찬했다.
그는 “아름다운 그의 멜로디를 이해했다 싶은 순간 훨씬 더 매력적인 선율이 나타나고, 이윽고 그것조차 어느 순간 다른 매혹적인 선율로 교체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청중들은 아름다운 화음과 선율 속에 숨이 막히고 결국 그 많은 멜로디들이 기억이 다 나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이런 화음의 물결은 음악 뿐만 아니라 라파엘로의 회화에서도 나타난다.
라파엘로는 조화와 균형 속 명료한 색채감과 대칭되는 구도, 주제를 잃지 않는 다양한 움직임으로 작품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주고 있다.
그의 초창기 작품 중 <삼미신>과 <기사의 꿈>은 리듬감이 엿보이며, 용과 싸우는 <성 게오르기우스> 작품에서는 공간 속 구조적 화음을 이루는 음악적 감각이 뛰어나다.
아기천사의 표정으로 유명한 <시스티나 성모>에서는 그림 아래 천사의 표정이 심리적 깊이감을 주고 있는데, 이는 주제의 중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주변과 아름답게 화음을 이뤄주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전성기작품인 <갈라테아 요정>과 <아테네 학당> 역시 회화 중심부의 주제가 확고히 드러나면서도 주변의 다양한 움직임들이 놀라울 정도로 서로 균형과 대칭을 이루고 있다.
이는 화면전체에 흐르는 끊임 없는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인물배치와 구도를 조화롭게 만드는 그의 탁월한 솜씨가 작품을 통해 돋보인 것이라 할 수 있다.
◆ 이성과 감성
예술에 있어서 설득의 요소는 아주 중요하다. 누군가를 설득할 수 없는 예술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에 따르면 설득에는 3가지 요소가 있다. 바로 ‘에토스(인품·인격)’, ‘파토스(감성)’, ‘로고스(이성)’인데 모차르트와 라파엘로의 작품에는 이 세가지 요소들이 적절히 사용 되고 있다.
특히 ‘감성(Pathos)’을 다루는 예술에 있어서 ‘이성적(Logos)’ 요소는 작품을 잘 표현하기 위한 필수적 요소다.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서로 중첩되며 다양한 선율들과 표정을 갖고 있는 모차르트 음악에는 자신의 감성을 표현하기 위한 이성적 장치들이 있다.
그의 음악은 보통 2마디 또는 4마디씩 대화하는듯한 선율적 대구를 이루는 특징이 있는데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뮤지크(Eine kleine Nachtmusik)>같은 현악 소곡집이나 피아노 소나타 등에서 명확히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멜로디가 아닌 베이스나 반주 부분은 으뜸화음이나 (버금)딸림화음등을 풀어서 쓰는 일명 ‘알베르티 베이스(Alberti bass)’기법을 주로 사용했는데, 이는 관객이 그의 음악을 더욱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외에도 마술피리나 여러 오페라 속에 숨겨둔 상징들은 그의 탁월한 작곡기법 속에 녹아있다.
어린 시절부터 연주여행을 하며 다양한 문화적 경험을 했고 작곡가인 아버지로부터 혹독한 훈련을 받았던 모차르트는 런던시절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Johann Christian Bach)를 만나면서 더욱더 음악적 자양분을 흡수했다.
라파엘로 역시 아름답고 조화로운 그의 회화 속에 다양한 테크닉적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성 미카엘>과 <삼미신>을 포함한 그의 초기작은 스승 페루지노(Pietro Peruggino)의 영향이 보인다.
이후 피렌체에서 바르톨로메오(Fra Bartolommeo)의 화면구성법과 다빈치의 스푸마토 기법 등을 배워 피렌체 파(派)의 화풍으로 발전했는데, 이 시기 그의 성모상 작품은 다빈치의 영향이 뚜렷하다.
로마의 바티칸으로 건너간 그는 <아테네 학당>, <파르나소스>, <성체의 논의> 등 걸작들을 남겼는데, 이는 미켈란젤로로부터 얻는 조형적 배치법의 영향이라 볼 수 있다.
<갈라테아의 승리>같은 명작 역시 베네치아 학파 화가 세바스티아노 델 피온보(Sebastiano del Piombo)로부터 채화법을 습득해 탄생됐다. 이렇듯 그들의 아름다운 작품들은 학습된 이성적(Logos)요소들이 열정적인 감성(Pathos)을 통해 발현된 결과물인 것이다.
◆ 우아한 아름다움(Grazia)의 원형
‘우아한 아름다움(Grazia)’은 모차르트와 라파엘로가 추구하던 예술적 이상향이며 단정한 선의 형태, 명료한 색채감과 기품 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작품의 우아함 속에 숨겨져 있는 에토스(Ethos)적 아름다움에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과 상상력이 원천으로 자리잡고 있는데, 특히 모차르트의 느린 악장과 라파엘로의 성모상에서 이런 특징들이 잘 나타난다.
모차르트의 음악이 모나지 않고 우아한 이유는 그의 순수한 기질도 있지만 시대적 상황과 분위기 역시 중요한 영향을 주고 있다. 모차르트가 활동하던 시기의 음악은 대중을 위한 것이기보다 황실과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다.
왕가나 귀족이 모인 커다란 방에서 그들은 커피나 차를 마시며 음악을 즐겼고, 그들의 고상한 취향은 음악에도 어느 정도 반영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아하고 때론 온화하며 꿈꾸는듯한 그의 느린 악장들은 여러 감정선이 혼재되어 있으며, 시대를 초월해 현대에서는 영화의 아름다운 장면에 배경음악으로 자주 사용되고 있다.
한편 ‘우아한 아름다움(Grazia)’은 르네상스 시기 라파엘로와 동일시 되는 단어였다. 그의 수많은 성모상들은 비슷한 작품을 찾기 힘들고 각각의 작품은 심오함과 우아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풍부한 상상력은 천사들의 표정에서도 선명하게 나타나며 우아한 아름다움에 대한 명확한 미적 자각은 작품을 기품 있게 만들어 주었다.
특히 그의 작품 <시스티나 성모>와 <갈라테아 요정>은 누구를 모델로 하지 않고 오직 상상만으로 아름다운 여인을 그려낸 것이다.
이렇듯 모차르트와 라파엘로가 추구한 ‘우아한 아름다움(Grazia)’은 예술적 이상향이라는 큰틀 속에서 개인의 순수함과 상상력 그리고 시대적 요구가 모두 포함된 표상이라 할 수 있다.
◆ 고전의 완성
18세기 독일의 고고학자 빙켈만(J.J.Winckelmann)이 ‘고전(Classic)’이라는 단어를 언급한 이후 고전은 누구에게나 쉽게 이해되고 모범적이며 조화롭고 시대초월적인 성격을 뜻하는 단어가 됐다.
모차르트와 라파엘로의 예술세계 또한 고전이 추구하는 정의와 일치하며 그것의 완성에 있다. 그들의 예술을 정의하자면 ‘혁신보다는 종합’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이전 세대와 하이든의 음악적 어법을 충실히 발전시켜 완성했으며 베토벤으로 넘어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해주었다.
라파엘로 또한 다빈치의 명암법과 스푸마토 기법 그리고 미켈란젤로의 조형구도 등을 조화롭게 습득해 르네상스 고전주의의 완성을 이루어 내었다. 모차르트와 라파엘로는 베토벤과 미켈란젤로처럼 혁신을 이루어 내지는 않았지만 시대의 완성을 보여주었다.
그들의 마지막 작품인 <레퀴엠>과 <그리스도의 변모>는 모두 미완성으로 이후 제자들이 완성했지만 최후의 걸작으로 꼽힌다.
특히 라파엘로의 <그리스도의 변모>에 대해 <예술가 열전(le Vite)>을 집필한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는 가장 아름답고 신의 경지에 이른 작품으로 극찬했다.
귀족과 대중, 평론가 모두에게 사랑 받은 모차르트와 라파엘로, 그들에게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작품 <아테네 학당>에서 플라톤의 손가락은 하늘, 아리스토텔레스의 손가락은 앞을 향하고 있다. 그들 철학의 지향점의 차이, 즉 이데아가 이상세계와 현실세계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모차르트와 라파엘로의 아름다움은 이상과 현실을 아우르는 그 어디쯤 있는 것이 아닐까.
☞ 추천음반
모차르트의 교향곡은 카를 뵘(Karl Bohm)과 오토 클렘퍼르(Otto Klemperer) 그리고 전집을 발매한 네빌 마리너(Sir. Neville Marriner)의 음반을 대중적으로 추천한다. 원전연주를 좋아하신다면 호그우드(Christopher Hogwood)의 전집도 훌륭하다.
피아노협주곡은 개인적으로 루돌프 제르킨(Rudolf Serkin)과 클라라 하스킬(Clara Haskil), 피아노 소나타는 릴리 크라우스(Lili Kraus)의 연주가 아름답다. 바이올린 연주는 아르투르 그루미오(Arthur Grumiaux)와 오이스트라흐(David Oistrakh)를 추천하겠다.
◆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서울대 음대 재학 중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비엔나 국립음대와 클리블랜드 음악원 최고연주자과정 최우수 졸업. 이 후 Memphis 심포니, Chicago civic오케스트라, Ohio필하모닉 악장 등을 역임하고 London 심포니, Royal Flemisch 심포니 오디션선발 및 국내외 악장, 솔리스트, 챔버연주자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eigenarti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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