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고들기]'그알'·'PD 수첩' PD들은 왜 예능에 갔을까
"OTT 시대 접어들면서 아이템만 좋으면 얼마든지 기회"
"방송사 독점 끝, 무한 경쟁 시작…시청자 요구 부응"
"규제 약한 OTT와는 경쟁에서 불리…균형 맞춰야"
현재 파일럿 방송 중인 SBS '관계자 외 출입금지'는 시사·교양 본부 소속 PD들과 '무한도전' 김태희 작가의 합작품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 이동원 PD와 'TV 동물농장' 고혜린 PD가 프로그램을 이끈다.
김종국·양세형·이이경 3인이 구치소, 교도소, 인천국제공항 보안 구역 등 일반인들이 쉽게 가보지 못하는 각종 '금지 구역'을 누비고, 그곳에서 일하는 직업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다. 소위 리얼 버라이어티 형식이다.
연출 PD들 소속에 따라 '관계자 외 출입금지'는 '교양' 프로그램으로 분류되지만 고혜린 PD는 기자간담회에서 "결론적으로 우리가 가고 있는 방향은 교양 예능이다. 딱 규정할 순 없지만 얼마나 진정성 있게, 재미있게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프로그램 성격이 아닌가 한다. 예능과 교양의 협업은 많았지만 둘의 시너지가 잘 어우러지는 극대화된 프로그램"이라고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밝혔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쌓은 이동원 PD의 경험과 관점 역시 새로운 도전의 바탕이 됐다.
이동원 PD는 첫 방송 장소로 교도소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그것이 알고 싶다'를 했기 때문에 직접 가진 않았어도 교도소를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완전히 다른 공간이라 충격을 받았다. 교정 공무원들이 1만 7천 명이나 묵묵히 일하는데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미디어 등에서 왜곡된 이미지로 상처가 많으시더라. 그분들의 이야기를 꼭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그런가 하면, MBC 'PD 수첩'의 장호기 PD는 넷플릭스 예능 '피지컬: 100'으로 출사표를 던졌다.
'피지컬: 100'은 극강의 피지컬 100인 중 최강의 피지컬 1인을 찾는 서바이벌 예능으로 MBC가 제작, 오는 24일 다국적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플랫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된다.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문법을 찾아보기 어려운 서바이벌 게임 형식이지만 역시 프로그램은 '바디 프로필' 등 건강한 몸에 대한 관심이 드높은 현실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됐다.
장 PD는 우연히 헬스장 게시판에서 '이달의 베스트 보디(BEST BODY)'를 본 후 '가장 좋은 몸이란 무엇일까'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기준이라는 게 존재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결국 '피지컬: 100'은 단순히 보기 좋은 몸을 찾는 것이 아니라 각 분야에서 최고의 피지컬(Physical·육체)을 가진 100명이 '가장 완벽한 피지컬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온 몸으로 부딪히며 그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그린다. 근력과 밸런스, 지구력과 순발력 등의 신체능력은 물론, 강인한 정신력을 요구하는 미션들이 긴장감과 몰입감을 선사할 전망이다.
장 PD는 "특정 운동을 주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완벽한 몸'에 대한 콘텐츠이기 때문에 당연히 인간이라면 누구나 재미있게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말 다양한 출연자들을 섭외했고, 미션도 한 줄로 설명이 가능할 정도로 명료하게 만들었다. 운동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당연히 좋아하실 거라 생각하고, 운동을 잘 못하거나 운동에 관심 없는 분들도 큰 부담 없이 출연자들의 흥미로운 스토리를 따라갈 수 있도록 제작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미 수년 전부터 시사·교양과 예능의 구분은 무색해졌다. 사회성 짙은 프로그램들이 트렌드가 되면서 시사·교양 PD들이 기획한 스튜디오 예능 포맷 프로그램들이 일반 예능 프로그램들보다 인기를 끄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현재 방송 중인 프로그램으로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물론 과거 JTBC '썰전'처럼 그 반대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리얼 버라이어티, 서바이벌 등 예능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포맷으로의 시도는 유의미하다는 진단이다. 본격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시대에 접어들며 이 같은 경계는 더욱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다.
한 방송사 PD는 CBS노컷뉴스에 "시사·교양과 예능의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한 건 이미 10년 정도 됐다. 그런데 최근 유튜브 등 트렌드를 접한 젊은 PD들이 늘면서 좀 더 그런 현상이 적극적이면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 같다"며 "과거에는 지상파가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지만 OTT 시대가 도래하면서 채널의 의미가 사라졌고, 아이템만 좋으면 어떤 채널과 포맷을 통해서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출연하는 연예인들도 마찬가지"라고 짚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도 "과거 콘텐츠 시장은 소수 방송사들의 독점 체제였기에 딱히 변할 이유도 없었고 시청자들 소비 패턴도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급격하게 플랫폼이 늘어나고 무한 경쟁에 들어가면서 칸막이가 다 사라지고 있다. 시청자들은 점점 재미있고 자극적인 것을 원하니 그 요구에 부응해 시사, 교양 제작자들도 전통 프로그램과 다른 방식을 모색, 시도하게 된 것 같다. 기존 벽을 넘어가는 게 트렌드이기도 하다"고 분석했다.
대형 OTT 자본 유입과 그들이 주도하는 트렌드가 무조건 자유로운 기회만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주로 이런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방송사들은 공공의 가치를 위한 규제와 수익 추구를 위한 예능적 재미 사이에 상충을 겪을 수밖에 없다.
'피지컬: 100'처럼 제작은 방송사가, 플랫폼은 OTT가 맡아 돌파구를 찾을 수도 있지만 대개 OTT 오리지널 콘텐츠와의 경쟁에서 밀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렇다 보니 OTT에 대한 의존도만 갈수록 높아지는 실정이다.
이 PD는 "지상파보다는 종편, 케이블이, 종편, 케이블보다는 OTT가 수위 규제가 약하다. 결국 규제가 강할수록 시청자들은 프로그램이 '낡았다'고 느껴 접근하지 않게 된다. 물론 방송사들이 지켜야 하는 공공의 가치가 있지만 시청자 유입에 따른 광고 수익 등 제작비가 있어야 프로그램 제작을 하니 그 균형을 맞추는데 딜레마가 있다"고 토로했다.
하 평론가는 "규제를 많이 받는 조건에서 콘텐츠 경쟁을 하는 게 불리할 수밖에 없다. 이미 시청자들은 국내외 플랫폼을 가리지 않고 동등하게 보고 있다. 방송사 규제는 완화하고 뉴미디어 플랫폼은 높은 수위에 대한 감시 시스템을 만들어 형평을 맞춰나갈 필요가 있다. 하지만 외국 기준까지 염두에 둬야 해서 당장은 뾰족한 수가 없어 답답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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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유원정 기자 ywj2014@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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