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력 받는 K-원전 수출…尹정부, 韓원전 생태계 조기 복원 ‘전력투구’
韓 원전산업 경쟁력도 탈원전 이전의 65% 불과
국내 원전 기업들 “조기 일감 공급이 가장 시급”
올해 일감 공급에 3.5조원…매년 원전 1기 준공
두산에너빌리티의 사내 협력사인 원비두기술은 원자로·증기발생기 등 주기기 제관·용접 전문 중소기업이다. 이 업체는 작년 12월 신한울 3‧4호기 주기기 일감 중 26억원 규모의 원자로 냉각제계통 파이프 제작을 따냈다. 박봉규 원비두기술 대표는 “수주 계약서 덕에 기존 대출을 연장했고, 자금난 타개에 큰 도움을 받았다”며 “앞으로 더 많은 일감이 공급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정부는 신한울 3‧4호기 착공과 주기기 계약에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을 고려해 일감 조기 공급을 추진했다. 정부의 발 빠른 지원 덕에 원비두기술은 눈앞의 위기를 뚫고 나갈 수 있었다. 윤석열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고집한 전(前) 정권 5년 동안 망가진 국내 원전 생태계를 되살리고자 올해 원전 일감 공급에 3조5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이는 작년보다 31%(1조1000억원) 증가한 규모다. 또 2025년까지 매년 원전 1기를 준공할 계획이다.
아직 정상화 단계에 도달한 건 아니지만, 정부의 조기 복구 전력투구에 국내 원전 생태계도 서서히 온기를 느끼고 있다. 해외에서 잇따라 들려오는 원전 수출 관련 희소식도 일감 확보가 간절한 원전 업계를 흥분시키는 포인트다. 정부는 원전 생태계 복원 가속화를 위해 일감 공급은 물론 금융·인력 등의 지원을 더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 정책자금 늘려 저금리 대출 주고, 인력 충원 지원
산업통상자원부는 천영길 산업부 에너지정책실장이 17일 경남 창원 지역에 있는 원전 협력업체 3곳을 방문해 원전 생태계 복원 성과를 점검했다고 밝혔다. 천 실장은 원비두기술을 비롯해 피케이밸브와 고려공밀공업을 찾아 현장 목소리를 들었다.
이날 천 실장이 원비두기술에 이어 두 번째로 방문한 고려정밀공업은 금속류 가공 전문업체로, 원자로 제어봉 구동장치(CEDM) 노즐 가공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 회사는 탈원전 후폭풍과 인플레이션 충격에 경영 차질을 빚던 작년 11월 한국수력원자력의 원전 협력업체 대상 동반성장협력대출을 만났고, 시중은행 대비 낮은 이율로 8억원의 자금 수혈을 받는 데 성공했다.
한수원을 비롯해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기술보증기금·신용보증기금 등이 제공하는 정책자금은 지난해 3800억원에서 올해 4500억원으로 늘었다. 조형섭 고려정밀공업 대표는 “동반성장협력대출이 한수원의 1차 협력업체뿐 아니라 2‧3차 협력업체까지 확대돼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며 “더 많은 기업이 이런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정책 프로그램 홍보가 강화되면 좋겠다”고 했다.
피케이밸브는 산업용 밸브를 전문적으로 제조하는 중견업체다. 원전 모터 구동밸브, 비상 원자로 감압밸브 등에 관한 원천기술을 보유했다. 피케이밸브는 원전 비중 확대 흐름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신규 인력 수급에 어려움을 느꼈다. 산업부는 원자력생태계지원사업을 통해 피케이밸브가 필요로 하는 인턴 채용과 정규직 전환을 지원했다. 전양찬 피케이밸브 대표는 “사업 참여 만족도가 아주 높았다. 올해도 참여할 의향이 있다”고 했다.
◇ 원전 산업 경쟁력, 탈원전 전의 65% 불과…“지원 확대”
이번에 천 실장이 원전 협력업체를 잇달아 방문한 건 한국형 원전 수출이 더욱 탄력을 받으려면 문재인 정부 탈원전 정책에 무너진 부품 공급 생태계부터 되살려야 한다는 절박감 때문이다. 정부가 일감 조기 공급을 통해 원비두기술과 같은 원전 업체를 지원하는 것도 업계의 가장 큰 니즈에 호응하기 위해서다.
다행히 지난해 8월 한수원이 3조원 규모의 이집트 엘다바 원전 건설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등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원전 세일즈가 속속 성과를 내고 있어 국내 많은 협력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산업부는 엘다바 사업 하나만으로도 100여개 기업이 납품 기회를 가져갈 것으로 본다. 폴란드·체코 원전 사업 수주 등에서도 성과를 내려면 협력업체를 중심으로 한 국내 원전 생태계가 하루빨리 살아나야 한다.
탈원전 정책 폐기를 국정과제 최상단에 올린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우리나라 원전 생태계는 서서히 무너졌던 체력을 회복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목소리다. 지난 정부 5년간 무리한 탈원전 강행으로 수십년 동안 쌓아온 원전 산업 경쟁력이 크게 휘청였기 때문이다. 양금희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작년 8월까지 폐업한 중소 원전 업체는 69곳에 이른다. 전체의 14.7%에 달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작년 7월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재 국내 원자력 산업 경쟁력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시행 이전과 비교해 65% 수준에 불과하다. 설문조사에 응한 기업들은 원전 산업 경쟁력 회복을 위한 가장 시급한 과제로 ‘조속한 일감 공급’(46.9%)을 꼽았다. ‘원전 착공 관련 인허가 규제 개선’(28.1%), ‘금융 부담 완화’(17.2%), ‘한계기업 지원’(7.8%) 등이 뒤를 이었다.
정부는 원전 수출 확대를 위해 국가별 원전 수요를 분석해 범정부 차원의 세일즈 외교에 나설 예정이다. 특히 ‘원전수출전략추진위원회’를 중심으로 현재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 체코와 폴란드 원전 수주에 집중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국내 원전 생태계 복원에도 속도를 낸다는 전략이다. 천영길 실장은 “올해 원전 생태계 복원이 가속화할 수 있도록 신한울 3‧4호기 일감의 신속한 공급을 필두로 금융·인력 등 지원 정책의 대상과 규모를 더욱 확대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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