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의 추락…작년에만 15만 명 해고됐다
[비즈니스 포커스]
2022년 빅테크 기업들은 최악의 한 해를 보냈다. 메타(페이스북)·애플·아마존·넷플릭스·구글 등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주가가 연일 하락하며 증발된 이들 기업의 시가 총액만 약 3조 달러(약 3800조원)에 달했다. 한 해 동안 메타의 주가는 66% 하락했고 테슬라는 57%, 아마존은 49% 떨어졌다.
2023년에도 빅테크 기업들의 악몽은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 4일 미국 증시 개장 첫날 테슬라의 주가는 12% 급락했고 애플 또한 주가가 하락하며 ‘시가 총액 2조 달러’ 선이 무너졌다. 아마존은 ‘역대급 규모의 해고’를 발표하며 위기에 대한 공포를 키우고 있다. 아마존을 포함해 지난 한 해 동안 빅테크 기업 등에 다니다 직장을 잃은 사람들은 약 15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심상치 않은 ‘빅테크 기업들의 추락’으로 20년 전 닷컴 버블을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닷컴 버블’은 2000년 미국 증시가 대폭락하며 역사상 최악의 버블 붕괴로 손꼽힌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일까. 닷컴 버블에 이어 최근 빅테크 기업들의 추락으로 ‘제2의 IT 버블 붕괴’가 될 수 있다는 경보음이 커지고 있다.
‘빅테크의 추락’, 얼마나 심각하기에
2022년 한 해 동안 주가가 65% 하락한 테슬라는 2023년 새해 들어 미 증시 개장 첫날인 1월 4일에만 주가가 12% 급락했다. 이후에도 여전히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중이다. 테슬라의 주가가 급락하면서 엘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도 불명예를 안았다. 230조원에 가까운 재산을 잃으며 1월 10일 기네스북의 최대 재산 손실 부문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운 것이다.
빅테크 대장주인 애플 또한 상황이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2023년 개장 첫날인 1월 4일 애플의 주가가 전일 대비 3.74% 하락한 125.07달러를 기록하며 ‘시가 총액 2조 달러(약 2529조원)’가 무너졌다. 이후 주가가 소폭 상승하며 시가 총액 2조 달러를 회복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불안한 흐름을 이어 가고 있다. 2020년 8월 처음으로 시가 총액 2조 달러를 돌파한 애플은 세계 증시 유일한 ‘시가 총액 2조 달러’ 규모의 기업이다. 지난해 1월에는 장중 한때 시가 총액 3조 달러를 돌파하기도 했었다.
2022년 50% 가까이 주가가 급락한 아마존 또한 ‘역대급 해고’ 소식으로 새해를 맞았다. 1월 4일 로이터에 따르면 앤드루 제시 아마존 CEO는 직원들에게 e일을 보내 회사의 정리 해고 규모가 1만8000명에 이를 것이라고 밝혔다. 아마존은 지난해부터 ‘비용 절감’을 이유로 정리 해고를 진행해 왔다. 당초 규모는 1만 명 정도로 예상됐는데 이보다 정리 해고 규모가 거의 2배에 가까운 숫자로 늘어난 것이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빅테크 기업 정리 해고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문제는 테크 기업들의 정리 해고는 이제 겨우 시작이라는 것이다. 미국 테크 기업과 스타트업들의 정리 해고 규모를 추적하는 ‘레이오프.fyi’에 따르면 2022년 한 해 동안 테크 기업과 스타트업들에서 해고된 직원 수만 15만3160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00년 닷컴 버블 붕괴 후 가장 많은 수치다. 트위터는 약 3만 명, 메타는 약 1만1000명을 해고했고 넷플릭스와 마이크로소프트(MS) 등도 대규모 정리 해고를 단행했다.
더욱이 연말 휴일을 끝낸 이후 기업마다 줄줄이 정리 해고를 발표할 것으로 예측되며 ‘제2의 닷컴 버블’에 대한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실제 아마존이 1만8000명의 정리 해고 규모를 발표한 당일인 1월 4일 기업용 소프트웨어 개발 기업인 세일즈포스도 직원의 약 8000명(10%)을 정리하겠다고 밝혔다.
20년 전 닷컴 버블, 같은 점과 다른 점
미국의 나스닥지수는 1998년 10월 1344를 바닥으로 2000년 3월 5133까지 불과 17개월 만에 4배 가까이 폭등했다. 그야말로 비이성적인 주가 상승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불어닥친 인터넷 열풍으로 기업 이름에 ‘닷컴’이 붙기만 해도 투자 자금이 몰리던 시절이었다. 이들 기업이 우후죽순 증시에 상장하며 ‘새로운 인터넷 시대’라는 장밋빛 환상으로 포장한 채 수많은 개인 투자자들을 끌어들였다. 실제 1984년에서 1991년까지 미 증시에 상장한 테크 기업은 100건이 채 안 되지만 버블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99년 한 해 동안 미 증시에 상장한 테크 기업의 수는 371개에 달했다.
버블 붕괴의 전조가 된 것은 2000년 3월 게재된 한 칼럼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자매지인 바론(Barron)에 많은 수의 닷컴 기업이 현금 부족 상태이고 파산할 수 있다는 내용이 실렸다. 닷컴 기업에 대한 의혹이 높아지던 시기 미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상은 결정타가 됐다.
2000년 3월 10일 5133으로 고점을 찍은 나스닥은 2002년 1114로 약 80% 가까이 고꾸라졌다. 닷컴 기업들은 ‘닷컴 버블’ 동안 얻었던 수익률을 2000년 3월 이후 그대로 다 반납했다. 버블 동안 일어난 과도한 투자 경쟁과 과잉 설비는 많은 개인 투자자들에게 엄청난 손실을 떠안겼다.
최근 빅테크 기업들의 추락 역시 20년 전 닷컴 버블을 떠올리게 만드는 요소들이 적지 않다.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기간 동안의 ‘유동성 파티’에 힘입은 과잉 투자로 인해 기업 가치를 고평가 받은 테크 기업들이 상당수이고 Fed의 금리 인상이 테크 기업들의 주가 하락에 결정타가 됐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2000년 3월부터 시작된 ‘닷컴 버블 붕괴’는 무려 31개월간(2년 7개월)에 걸쳐 진행됐다. 2022년 시작된 빅테크주의 추락이 2023년에도 쉽게 멈추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는 이유다.
강재현 SK증권 애널리스트는 “테크주의 주가가 하락세로 돌아선 지 1년이 되면서 저가에 이들 기업을 매수할 수 있는 매력적인 기회로 현재 상황을 바라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며 “하지만 현재 테크주들이 처한 환경이 닷컴 버블 당시와 비슷하다는 점에서 우려된다”고 말했다.
닷컴 버블은 ‘과잉 투자’와 ‘성장’에 대한 맹신이 불러온 참사였다. 이는 닷컴 기업들의 몰락에 이어 하드웨어 기업들의 설비 재조정까지 한참 이뤄진 후 마무리됐다. 현재 기술주의 하락 역시 ‘금리 인상’이라는 변수 외에 팬데믹 기간을 거치며 테크 기업들에 대한 ‘과잉 투자’와 ‘성장에 대한 과신’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2022년 시작된 빅테크 기업들의 주가 하락세가 2023년에도 해소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닷컴 버블’과 현재 ‘테크주의 추락’은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당시 닷컴 기업들은 과잉 투자를 통해 미래 가치를 부풀린 채 실제로 수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들이 대부분이었다. 온라인 식료품 업체 웹밴, 20대 재미 교포인 조셉 박이 회장으로 있었던 미국 인터넷 택배 회사 코즈모닷컴 등이 대표적이다. 기대를 받으며 상장했지만 순이익 한 번 내지 못하고 결국 파산을 맞아야 했다.
이와 비교해 현재 아마존과 MS 애플 등은 혹독한 닷컴 버블 시기를 거치며 ‘살아남은’ 기업들이다. 1997년 5월 미 나스닥시장에 상장한 아마존의 초기 주가는 1달러였다. ‘닷컴 버블’을 타고 1998년 10달러 내외로 주가가 뛰었고 1999년에는 100달러까지 순식간에 높아졌다. 하지만 ‘닷컴 버블’이 꺼지며 주가 100달러는 무너졌다. 2년 동안 주가가 무려 95% 하락했던 아마존은 이후 큰 이익을 바탕으로 수많은 인수·합병(M&A)을 거치며 시장 지배력을 강화해 온 덕분에 지금과 같은 빅테크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저 장밋빛 환상으로만 기업 가치와 성장성을 부풀렸던’ 과거의 닷컴 기업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물론 현재 빅테크 기업들이 고평가돼 있었던 만큼 주가수익률(PER) 등이 낮아지는 것은 불가피하다. 실제로 지난 테크 기업들의 PER 역시 급속도로 하락했는데 그 속도가 거의 글로벌 금융 위기 때와 맞먹을 정도였다. 대표적으로 메타의 PER은 2022년 초만 하더라도 24배를 기록하고 있었지만 현재 11배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코로나19 기간 동안 부풀려진 기업 가치 등의 버블은 해소가 된 것으로 보이지만 빅테크 기업들이 이전과 같이 고성장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빅테크 기업들 가운데서도 수익 창출 능력 등을 기반으로 보다 냉정하게 ‘옥석을 가려내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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