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발명 인정 안 하는 특허청…기술 선도 역할 저버린 것”

송복규 기자 2023. 1. 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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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청, 성명이라는 형식적 조건만 따져”
“권리 갖기 위해선 인간·AI 모두 특허 가져야”
“AI 발명·창작 계속될 것…입법 방안 고민해야”
인공지능 '다부스(DABUS)' 개발자 스티븐 테일러 측 법률대리인들. 위쪽 왼쪽부터 덴톤스리 법률사무소 이두형·김동환 변호사. 아래 왼쪽부터 이원천 변호사, 리인터내셔널 특허사무소 심영보 변리사, 김찬회 변리사. /덴톤스리 법률사무소

인공지능(AI)이 발명과 창작을 하는 시대가 열렸다. 최근 과학계의 핫 이슈인 AI 챗봇 ‘챗GPT(ChatGPT)’가 보여준 성과가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연구진이 지난달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챗GPT가 쓴 의학 논문 초록은 과학자들이 구분할지 모를 정도로 완벽했고, 표절 검사도 100% 확률로 통과했다.

AI가 사람만큼이나 정확하게 글을 쓸 수 있는 시대에 과연 AI도 특허의 주인이 될 수 있을까. 한국 법원에서 AI 개발자와 특허청이 AI가 발명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를 놓고 소송전을 시작했다.

미국의 AI 개발자 스티븐 테일러가 진행하는 ‘다부스 프로젝트’는 AI가 스스로 지식을 습득해 발명품을 창작하고 특허 보호를 받을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프로젝트다. 테일러는 한국에서 특허를 출원하면서, 자신은 발명품에 대한 지식이 없고 다부스가 관련 지식을 습득한 후에 스스로 발명을 완성했다고 주장했다. 다부스는 식품 용기, 신경전달 램프 관련 특허를 출원했다.

하지만 특허청은 테일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허청은 “한국의 특허법과 관련 판례가 자연인만 발명자로 인정하고 있으며 미국과 영국, 독일 등 특허 선진국을 포함해 대다수 나라에서 같은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고 봤다. 특허청은 출원인을 자연인으로 기재하고 신청서를 다시 내라고 했다. 하지만, 테일러는 AI가 발명했기 때문에 사람인 자신은 출원인이 될 수 없다며 이를 거부했다. 특허청은 특허출원을 무효로 결정하고, 자연인만 발명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자 테일러는 특허청을 상대로 특허출원 무효처분 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인공지능 '다부스(DABUS)'의 발명 과정 도식도. /특허청

조선비즈는 이번 소송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기 위해 지난 12일 서울 서대문구 덴톤스 리 법률사무소 사무실에서 김동환·이두형·이원천 변호사와 리인터내셔널 특허사무소 소속 심영보·김찬회 변리사를 만났다. 덴톤스 리 법률사무소는 이번 소송에서 테일러의 법률대리인을 맡았다. 덴톤스 리 법률사무소와 리인터내셔널 특허사무소는 한국에서 다부스 프로젝트를 공동으로 수행하고 있다.

변호인단은 ‘AI 개발자를 출원인으로 적을 순 없나’라는 질문에 “발명자는 ‘다부스’”라고 명확하게 답했다. AI가 만든 물건인데 AI 개발자를 특허 출원인으로 적는 건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변호인단의 소송 전략은 무엇일까. 변호인단은 특허출원 과정에서의 ‘형식적 요건’을 소송의 주요 쟁점으로 끌고 갈 예정이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요건’은 특허출원 신청서 성명란에 자연인만 들어가야 한다는 특허청의 판단을 의미한다. 특허는 발명을 공개하고 독점권을 갖는 행위를 심사하는 제도인데, 진보성이나 신규성은 고려되지 않고 출원인의 ‘성명’이라는 형식적 요건에 특허청의 판단이 매몰됐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특허출원 관련 규정들을 명시한 특허법과 시행령, 시행규칙에 발명자를 자연인으로 한정한다고 못 박은 조항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발명의 주체가 당연히 자연인이나 법인인 것으로 가정돼 있을 뿐이다. 특허청도 특허출원 신청에서의 성명은 자연인만 가능하다고 설명했지만, 변호인단은 특허청 규정에도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김동환 변호사는 “이번 특허청의 결정은 발명품이 특허출원 심사가 들어가기도 전에 출원인의 성명만을 보고 AI면 발명을 심사할 수 없다는 판단”이라며 “개발자가 주장하는 취지는 특허제도 자체가 발명을 공개하고 독점권을 갖는 행위인데, 권리를 갖기 위해선 인간이나 AI나 특허를 출원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연인만 출원인 성명란에 기재될 수 있다는 형식적인 판단으로, 발명품으로 볼 수 있는 진보성과 같은 조건은 심사조차 하지 않은 것”이라며 “특허법에 따로 명시돼 있지 않은데, ‘성명’이 자연인만 해당한다는 주장은 근거가 부족해보인다”고 강조했다.

특히 변호인들은 다부스의 발명품이 국제특허(PCT)로는 출원됐지만, 한국에서는 무효처분된 것도 의아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테일러는 다부스를 발명자로 표시해 PCT를 출원한 뒤 한국을 포함한 16개국에 특허출원했다. 현재도 일본과 이스라엘, 인도, 중국, 싱가포르 등에 출원을 시도하고 있다.

이두형 변호사는 “특허법은 AI의 특허출원을 예상하고 제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다”라면서 “각 국가가 다르게 판단할 수 있지만, 한국 특허청은 기술적인 면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선도적인 역할 측면에서 의미 있는 판단을 기대했지만, 형식적으로 판단하고 AI 발명에 대해 심도 있는 판단이 나오지 않아 아쉬웠다”고 덧붙였다.

AI의 발명이 계속될 경우 향후 입법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특허법 자체가 AI가 발명을 할 수 있다는 가정을 하지 않고 제정됐기 때문에 보완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할 필요성이 높아진 것이다.

김동환 변호사는 “AI 발명 관련 논란이 생기는 것은 법이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인데, 입법으로 해결해야 할 부분도 있다”며 “AI 발명의 가능성이 알려진 만큼, 어떻게 취급할 것인지 법이 명확히 정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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