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애인의 과거

김태훈 논설위원 2023. 1. 17.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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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성 변호사가 ‘유학생 출신’이라는 남편 말이 거짓인 것을 알고 이혼했다. 오랜 세월 함께 살았고 자녀가 있었으며 부부 사이에 큰 문제도 없었지만 “믿을 수 없는 남자와 더는 살 수 없었다”고 했다. 과거 남녀가 갈라서는 이유로 주로 꼽힌 것은 이처럼 학력을 속이거나 범죄 전과 등을 감추는 행위, 상대의 부정(不貞), 경제적 무능, 가정 폭력 등이었다.

▶남녀의 헤어짐을 다루는 대중가요나 소설·영화도 이로 인한 파국에 초점을 맞춘 게 많았다. 박상민 노래 ‘무기여 잘 있거라’는 약혼식 날 애인의 숨겨둔 아내가 아이를 안고 식장에 들이닥치자 충격받은 여자가 머리 깎고 절에 들어간다는 내용이다. ‘우린 서로가 사랑을 하고 결혼도 하기로 했지만/ 우리 약혼하던 그날에 (중략) 웬 아이를 떡 안고서 나타나게 되었던 거야.’ 영화 ‘화차’의 여주인공은 다른 여자를 살해한 뒤 그 여자로 신분을 위장해 결혼하려다가 파국을 맞는다.

▶그런데 연인의 결별 사유에 최근 들어 학폭(學暴)이 추가됐다. 배우자 될 사람의 폭력 성향을 알아보기 위해 학교 생활기록부를 조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한다. 혼전 건강진단서나 졸업증명서 교환은 전에도 있었지만 생활기록부 확인은 전에 없던 세태다.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처럼 학폭을 다룬 작품이 인기를 끄는 것도 새로운 변화다.

▶교육부가 지난해 초·중·고 학생 387만명을 대상으로 한 학폭 실태 조사에서 5만4000명이 피해를 호소했다. 코로나로 대면 수업이 축소됐던 2020년 줄었다가 다시 늘었다. 폭력 양상도 흉포화하는 추세다. 집단 구타에 물고문 불고문까지 한다. 이런 사람들은 독신을 각오해야 할 것 같다. 한 결혼 정보 회사가 미혼 남녀에게 물었더니 ‘연인이 학폭 가해자라면 헤어진다’는 응답이 70%를 넘었다. 폭력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큰 여성 쪽은 더 단호해서 ‘결혼할 수 없다’는 반응이 84%나 됐다.

▶김동인 단편 ‘발가락이 닮았다’의 주인공은 총각 시절 불임 진단을 받았다. 결혼 후 뜻밖에도 아내가 임신하자 기뻐했는데 태어난 아기가 자신을 닮지 않았다. 아내를 믿고 싶었던 남자는 아이에게서 어떻게든 자기와 닮은 부분을 찾아 결혼을 지속하려 애쓴다. 결혼의 첫 조건은 서로를 향한 믿음이다. 그 믿음의 조건에 ‘학교 폭력을 쓰지 않았던 배우자’도 포함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학폭 전력은 아이돌 가수나 배우·운동선수처럼 세인의 주목을 받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됐다. 이젠 학교 때 주먹 휘두르면 결혼도 하기 어려운 세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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