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재생에너지 100%의 함정
탈(脫)탄소 시대에 종교적 구호처럼 여겨지는 단어가 ‘RE100′이다. 기업이 쓰는 에너지 전부를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renewable energy)로 100% 전환하자는 것이다. 영국 한 민간단체가 2014년부터 외친 캠페인 구호다. 화석연료와 작별하고 태양·바람 같은 자연을 소재로 전력을 생산하자는 취지이니 친환경적으로 들린다. 그래서 법적 구속력이나 강제성이 전혀 없는데도 RE100을 따르지 않으면 기후 악당처럼 여기는 분위기가 형성돼있다. 우리 기업들도 이 프레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같은 논리로 무탄소 전원인 원자력으로 화석연료를 100% 달성하자는 뜻에서 ‘NE100′(nuclear energy 100%), 이산화탄소 포집·활용·저장 기술인 CCUS를 활용해 화석연료를 그대로 쓰자는 ‘FE100′(fossil fuel 100%)이란 구호가 나온다면 어떨까. 전 세계 여러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환경에 반하는 행위라며 융단폭격이 가해질 것이고, 특히 에너지 다양성과 선택권을 박탈하려는 시도에 대해 위험하다는 비판 여론이 일 것이다. RE100의 ‘함정’은 여기에 있다. 에너지원 단일화가 가진 문제는 똑같은데도 오직 RE100만이 완전 무결한 지상 과제처럼 포장돼있다.
탄소중립의 목적은 앞으로 배출될 탄소를 줄여 2050년까지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 아래로 ‘방어’하는 것이다. 세계 각국이 2050년까지 탄소배출을 제로(0)로 만들면 이 목표에 다다를 수 있다는 전제다. 종점은 같지만 나라마다 기점이 다르기에 파리협약에서 각국 사정에 맞게 여정을 짜라고 기본 원칙을 세웠다. RE100은 이 대원칙을 흔들고 있다. RE100을 주장해 이득 보는 것은 결국 재생에너지 생산 단가가 싼 유럽·미국 등 서방 국가다. 지형적 한계로 재생에너지 생산이 어려운 우리나라엔 불리하다. RE100을 결코 순수한 친환경 구호만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탄소중립에 더 어울리는 단어는 ‘GE100′(green energy 100%)일 것이다. 친환경을 뜻하는 ‘녹색’으로 규정된 에너지원 안에서 각국 사정에 맞게 탄소감축 시나리오를 짜는 게 합리적이다. 유럽연합(EU)과 우리나라는 ‘택소노미’(녹색분류체계)에서 재생에너지와 더불어 원전과 천연가스를 녹색 에너지로 규정했다. 20년 전 탈원전을 선언한 벨기에는 최근 러시아 전쟁으로 에너지 안보 문제가 촉발하자 이를 철회하고 원전 2기 가동을 10년 연장하기로 했다. 이런 방식이 유연하고 현실적인 탄소중립이다.RE100에 휘둘리다보면 탄소 중립을 위해 녹색 에너지로 규정한 이들 에너지도 종국에 활용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일각에선 미국과 유럽에 이미 유리하게 짜인 RE100의 흐름을 우리가 거스르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오히려 이럴 때 GE100 같은 개념으로 우리 기업이 흐름을 만들어내길 바란다. 재생에너지는 탄소중립의 ‘수단’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이 돼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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