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철 칼럼] 유신선거로의 ‘개혁’?
한국정치에는 널리 퍼져 있지만 잘못된 통념이 몇 가지 있다. 우선 박정희 정권 때부터, 특히 박정희와 김대중이 대결한 1971년 이후, 한국정치가 영남 대 호남의 지역대결이었다는 생각이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1979년 박정희 정권을 무너트린 것은 광주가 아니라 대구와 같은 영남인 부산·마산(부마항쟁)이었다. 87년 대선 이전에는 선거가 지역대결이 아니었고, 특히 영호남의 대결이 된 것은 90년 3당 통합 이후다. 우리 국회의원선거가 한 선거구에서 한 명을 뽑는 소선거구제였다는 생각도 비슷한 예다. 최근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중대선거구제(선거구를 크게 만들어 한 선거구에서 2~3명을 뽑는 선거구제)를 우리도 무려 15년이나 실시했었다. 구체적으로, 모든 선거구에서 여당을 당선시키기 위해 1973년 유신과 함께 도입하여 전두환 시대까지 실시했다. 정치학자로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것 중 하나는 정치권이 시대착오적이고 문제가 많은 이 선거구제를 심심하면 들고 나온다는 점이다.
1987년 민주화와 함께 사라진 이 제도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끌었던 새정치국민회의가 지역주의 타파를 이유로 1999년 처음 주장했다. 이후 ‘자유주의’ 진영에서 주기적으로 주장해 왔지만 ‘보수정당’의 반대로 도입되지 못했다. 한데 여러 사안이 그러하지만, 아닌 밤중에 홍두깨 식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이를 주장하고 나섰다. 게다가 김진표 국회의장이 이를 지지하고 나서면서 동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이는 ‘정치개혁’이 아니라 ‘정치개악’이다. 중대선거구제는 선거구가 현재보다 훨씬 커지기 때문에 지명도가 낮을 수밖에 없는 정치신인들에 대한 진입장벽이 더욱 높아져 ‘정치 정체’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미 천문학적으로 늘어난 선거자금은 훨씬 더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심각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지역주의가 약화된다면 그래도 이 제도를 도입해 볼 가치가 있지만, 그럴 것 같지 않다. 현재의 두세 개 지역구를 합쳐 하나의 지역구로 만들어 중대선거구를 만든 뒤 선거구마다 각 당에서 한 명의 후보만 내도록 법으로 강제한다면, 다른 지역당이 당선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 경우 현재 지역구 의원의 절반은 금배지가 날아가기 때문에 도입할 수 없는 제도이고, 한 당에서 복수후보를 허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해도 대립지역에 다른 지역당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오히려 한 선거구에서 같은 당 복수후보가 당선되기 때문에 당내 파벌정치만 심화될 것이다. 설사 순수가정으로 상대지역에서 대립지역 정당후보가 당선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무늬만의 지역주의 완화’일 뿐이며, 오히려 거대양당체제, 거대양당의 승자독식주의를 ‘최종봉인’하는 부작용만 생길 것이다. 이 같은 문제들 때문에 일본 등 중대선거구제를 시행하던 국가들은 대부분 이를 폐기했다. 긴 말이 필요 없이, 민주화 이후 중대선거구제를 처음 주장한 새정치국민회의 강령에 모든 답이 있다. “중대선거구제는 당내파벌 성행, 막대한 선거비용, 정국의 불안정성과 신진인사의 진출 제약 등 폐해가 심각해서 세계의 주요 국가들이 폐기한 제도”라고 정확히 지적한 바 있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지역정당체제를 고치려면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거나 대립지역 인재들을 비례대표에 우선배치하면 될 터인데 정치권이 왜 그러지 않고 시대착오적인 중대선거제를 도입하려는 것인가 하는 이유이다. 아마도 중대선거구제의 여러 문제들을 모르는 정치학적 무지가 주된 이유일 것이다. 또 정치신인의 진입장벽을 높이고 현역의원에게 훨씬 유리한 제도이기 때문일 것이다. 시급한 것은 ‘정치개혁’이란 이름 아래 중대선거제라는 ‘유신선거제도’로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선에서 공약했듯이 위성정당을 금지시키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강화하는 한편 김영배·민형배 의원 등의 제안처럼 국민을 설득해 의원정수를 늘려서라도 비례의석을 늘려 소외된 소수의 목소리가 정치에 반영될 수 있도록 다당제와 권력분점체제로 ‘정치교체’를 하는 것이다.
표의 가치를 균등화하기 위해 준연동형비례대표제를 도입했지만 거대양당이 위성정당을 만들면서 정치독점은 오히려 심화됐고 정의당 등 소수정당에 던진 표와 거대양당에 던진 표의 가치 차이는 1 대 7.2로 벌어졌다. 이 대표와 민주당은 대선이 끝났다고 말을 바꾸지 말고 약속을 지켜 자신들이 저지른 정치개악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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