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야생동물 위한 ‘친절한 행정’
경기 연천의 한 국도변에는 투명 방음벽에 충돌해 죽어간 새들의 사체가 즐비하게 떨어져 있는 곳이 있다. 투명한 벽을 인지하지 못한 소형 조류가 먼저 죽고, 그 사체를 먹으려던 맹금류 역시 충돌로 목숨을 잃고 있다. 이 조류들의 사체를 먹으려 접근하던 고양이, 너구리 등의 동물까지 로드킬을 당하면서 방음벽은 그야말로 ‘야생동물의 무덤’이 되어가고 있다. 이처럼 죽음을 부르는 방음벽은 연천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 있다. 이렇게 참혹한 죽음이 숱하게 발생하는 현실은 시민, 전문가들의 자발적 캠페인을 통해 새들의 대량 폐사를 막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자치법규정보시스템에 따르면 16일 현재 조류의 유리창 충돌을 막기 위한 조례를 만든 지자체는 31곳에 달한다. 아직은 적은 수지만 ‘야생동물을 배려하는 행정’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사실 정부나 지자체와 멸종위기종을 포함한 야생동물의 관계를 살피다보면 배려와 존중보다는 파괴와 오염, 서식지 훼손 등 멸종과 폐사의 원인을 제공하는 사례가 훨씬 많은 것이 현실이다. 최근 일부 지자체에서 귀한 손님 대접을 하는 흑두루미도 숱한 개발사업으로 인해 쫓겨나고 내몰렸던 야생동물 중 하나다. 흑두루미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하던 낙동강 모래톱들을 없애버리면서 이들 멸종위기 조류가 일본까지 남하했다가 북상하는 이동경로를 서해안으로 바꾸게 만들었던 4대강 사업이 대표적 사례다. 최근 전남 순천시와 충남 서산시 등 7개 지자체가 서식지 확대를 위해 노력하자는 내용의 협약을 맺은 대상이 된 흑두루미가 4대강 사업 추진세력엔 배려와 보호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과거 한반도 전역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양서류 맹꽁이도 온갖 개발행위로 인해 멸종위기에 내몰린 사례다. 몸길이가 5㎝ 정도에 불과해 얕은 배수로나 2차선 도로조차 건너가기 힘들다보니 산란을 위한 이동조차 이들에게는 목숨을 건 장정이 되었던 것이다. 이런 맹꽁이들을 배려하기 위해 지난해 말 이미 콘크리트 타설까지 끝냈던 대치유수지의 산책로 경계석을 없앤 서울 강남구청은 ‘맹꽁이에게 친절한 행정’의 사례로 평가받을 만하다. 애초에 맹꽁이들을 배려하지 못했지만 “맹꽁이 통로를 막지 말아달라”는 청소년 모니터링단의 호소에 화답한 것은 그동안 개발사업에서 야생 동식물의 터전을 훼손하지 말라는 주민, 환경단체의 외침을 외면해온 여타 지자체들과는 구별되는 것이었다.
이처럼 야생동물을 배려하는 사례가 조금씩 늘고 있다고는 해도, 여전히 맹꽁이나 흑두루미를 먼저 고려하는 행정이 이례적인 일로 여겨지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 우리는 군사독재 시절 국가가 자행했던 국가폭력 사례들을 돌이키며 당시를 ‘야만의 시대’라고 부른다. 훗날 우리 후손들 역시 야생동물을 배려하는 행정은 드물고, 멸종으로 몰고가는 개발행위는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현재를 ‘야만적’이었다고 평가하며 우리를 탓할지도 모르겠다. 인류가 초래한 기후위기로 동식물 멸종의 속도가 빨라지고, 지구 역사상 여섯번째 대멸종이 다가오는 와중에도 오히려 멸종을 앞당기고 있었다는 미래세대들의 지적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야생동물을 배려하는 행정이 더 늘어나야 할 시점이다.
김기범 정책사회부 차장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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