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래군의 인권과 삶] 2023년, 새해를 맞는 걱정
1월14일은 박종철 열사의 36주기 기일이었다. 겨울비가 간간이 흩뿌리는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서 우산을 쓰고 비옷 입은 사람들이 모였다. 같은 시간에 문익환 목사님의 29주기 추모식도 열렸다. 나는 잠시 문익환 목사님 추모식에 참석했다가 박종철 열사 추모식에 참석했다. 그날 이태원에서는 겨울비를 맞으며 10·29 이태원 희생자 추모식이 열리고 있었다.
박종철 추모식에서 그의 형 박종부씨는 “36년째 동생 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일이 아직도 익숙지 않다”고 말했다. 국회 앞에서 2021년 10월부터 16개월째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요구하는 천막농성을 하는 민주열사들의 유가족들도 그렇고, 매년 돌아오는 추석과 설날 명절에 아들, 딸의 합동차례를 준비하는 유가족들도 그렇다. 이제 막 유가족의 대열에 합류한 이태원 유가족들이 겪을 일이기도 하다.
나도 동생을 잃은 유가족이다. 자식을 잃고 형제를 잃은 유가족들의 곁을 35년째 지켜온다. 그러다가 2014년부터는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과 함께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가 났을 때는 누구라고 할 것 없이 “4·16 이후는 그 이전과 달라야 한다”고 공감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하고, 그 책임자들을 처벌하고, 그를 통해 안전사회를 앞당기자고 다짐을 했다. 그런 뒤 9년째에 접어들지만,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작업은 끝을 보지 못했다. 일부 책임자는 재판에 넘겨졌고 유죄 판결도 받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지난 연말 대통령의 특사로 풀려났다. 거기에 이태원 참사 책임자들은 여전히 정부 요직에 그대로 있다. 지금 정부에서 무책임의 시스템은 도리어 강고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정부서 ‘무책임’ 되레 강고해져
더욱이 이 정부는 중대재해 처벌마저도 후퇴시키려고 한다. 노동현장에서 기계의 부품이나 일회용 소모품으로 사용되고 폐기되는 노동자들을 더 위험한 지경에 빠뜨리겠다고 한다. 초단시간 노동이 급증하고, 모든 위험은 노동조합을 만들지 못하는 비정규직에게 몰리는 일이 가속화되고 있다. 그런 속에 정부는 3대 개혁을 외치고 있는데, 그 앞자리에 노동개혁을 놓고 있다. 노동귀족을 때려잡고, 이중구조의 노동시장을 개혁하겠단다. 그 노동귀족을 대표하는 노동자로 화물연대 노동자가 지목되었다. 화물연대 노동자들은 도로에서 15~16시간을 노동하고, 트럭 운전석에서 쪽잠을 자고는 한다.
대통령과 정부가 입만 열면 강조하는 인권과 법치와 자유는 그 내용이 바뀐 채로 사용된다. 자유를 억압하면서 자유를 강조하고, 인권 후퇴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개혁이라고 하고, 독재로 가면서 민주주의를 한다고 한다. 노동조합과 시민단체를 싸잡아 부패세력으로 몰아가면서 공안탄압을 예고한다. 다시 폭력과 탄압에 맞서, 또는 벼랑 끝에 내몰려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늘어날까 두렵다.
나를 비롯한 노조법 2·3조 개정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찬 바람을 맞으며 국회 앞에서 곡기를 끊고 단식농성을 했고, 지금도 천막농성을 하는 이유는 노동조합을 만들고, 단체교섭을 요구하고, 파업을 하는 게 당연한 상식으로 자리 잡게 법 개정을 하자는 것이다. 노동조합도 못 만들고 있는 법과 제도 밖의 노동자들에게 말을 주고, 힘을 주자는 내용이다. 집회와 시위가 시민의 당연한 권리이듯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을 누리는 것이 상식인 세상을 위해 70년 전에 만든, 낡은 법을 바꾸자는 것이다. 그래야 노사 간의 갈등이 대화로 해결되고, 일터는 안전해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의 시스템 차단, 지금도 늦었다
최근에 관심을 모으고 있는 <더 글로리>는 주인공에게 끔찍하게 각인된 상처를 보여준다. 주인공이 학교폭력을 당할 때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 피해자는 사적 복수를 꿈꾼다. 공적 인권보호 시스템이 무너진 자리에서 피해자 각자는 복수의 칼을 벼려야 할까? 폭력의 20세기를 건너와 더 심한 폭력에 내몰리고도 무권리의 상태에 놓인 사회적 약자의 손을 잡는 그런 연대, 그를 통해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 생명과 안전의 가치가 고양되는 그런 세상은 이제 꿈꿀 수 없는 것일까?
오는 20일에는 14년 전, 불길이 치솟는 망루에서 죽어간 용산 철거민들을 추모하기 위해 마석 모란공원에 다시 간다. 국가폭력을 더는 용인하지 않자고 다짐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사람이 더 죽기 전에 잔혹한 죽음의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 지금도 너무 늦었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4·16재단 상임이사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 강혜경 “명태균, 허경영 지지율 올려 이재명 공격 계획”
- “아들이 이제 비자 받아 잘 살아보려 했는데 하루아침에 죽었다”
- 최현욱, 키덜트 소품 자랑하다 ‘전라노출’···빛삭했으나 확산
- 수능문제 속 링크 들어가니 “김건희·윤석열 국정농단 규탄” 메시지가?
- 윤 대통령 ‘외교용 골프’ 해명에 김병주 “8월 이후 7번 갔다”···경호처 “언론 보고 알아
- 이준석 “대통령이 특정 시장 공천해달라, 서울 어떤 구청장 경쟁력 없다 말해”
- “집주인인데 문 좀···” 원룸 침입해 성폭행 시도한 20대 구속
- 뉴진스 “민희진 미복귀 시 전속계약 해지”…어도어 “내용증명 수령, 지혜롭게 해결 최선”
- 이재명 “희생제물 된 아내, 죽고 싶을 만큼 미안하고 사랑한다”
- ‘거제 교제폭력 사망’ 가해자 징역 12년…유족 “감옥 갔다 와도 30대, 우리 딸은 세상에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