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찰제 도입에 광고까지… 초상화 대중화 이끈 채용신[윤범모의 현미경으로 본 명화]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 2023. 1. 17. 03:01
“왜 우리나라 박물관에서는 여성 주인공의 그림을 볼 수 없습니까?”
나는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서양에 가면 박물관에서 여성을 그린 그림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우리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심지어 여성 나체화도 많지 않느냐는 것이다. 1980년대 미국 뉴욕에서 여성 화가들의 시위를 보았다. “미술관에서 여성이 대우 받으려면 옷을 벗어야 하는가.” 누드 그림의 모델은 여성이지만 화가는 남자라는 지적이다. 그래서 여성 작가들은 목소리를 높였다. 미술관에서 대우를 받으려면 단지 나체 모델뿐인가.
17세기 숙종 때의 일화이다. 임금님은 왕비의 자태를 초상화로 남기고 싶었다. 초상화 제작은 대개 도화서 화원의 일이었다. 하지만 국왕의 왕비 초상화 제작 꿈은 실행할 수 없었다. 당시 신하들의 반대 때문이었다. 아무리 왕비라 하지만 여자인데 어떻게 남자가 여자를 그릴 수 있느냐는 논리였다. 남녀유별 유교문화 사회의 반영이다. 조선 후기는 공식적으로 여성을 초상화의 주인공으로 삼을 수 없었다. 하기야 여성은 작가 생활은커녕 사회 활동조차 할 수 없는 시대였다. 우리 박물관에서 여성을 그린 그림을 볼 수 없는 이유다.
나는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서양에 가면 박물관에서 여성을 그린 그림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우리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심지어 여성 나체화도 많지 않느냐는 것이다. 1980년대 미국 뉴욕에서 여성 화가들의 시위를 보았다. “미술관에서 여성이 대우 받으려면 옷을 벗어야 하는가.” 누드 그림의 모델은 여성이지만 화가는 남자라는 지적이다. 그래서 여성 작가들은 목소리를 높였다. 미술관에서 대우를 받으려면 단지 나체 모델뿐인가.
17세기 숙종 때의 일화이다. 임금님은 왕비의 자태를 초상화로 남기고 싶었다. 초상화 제작은 대개 도화서 화원의 일이었다. 하지만 국왕의 왕비 초상화 제작 꿈은 실행할 수 없었다. 당시 신하들의 반대 때문이었다. 아무리 왕비라 하지만 여자인데 어떻게 남자가 여자를 그릴 수 있느냐는 논리였다. 남녀유별 유교문화 사회의 반영이다. 조선 후기는 공식적으로 여성을 초상화의 주인공으로 삼을 수 없었다. 하기야 여성은 작가 생활은커녕 사회 활동조차 할 수 없는 시대였다. 우리 박물관에서 여성을 그린 그림을 볼 수 없는 이유다.
이건희컬렉션의 기증 작품 가운데 명품을 모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을 개최했다. 진열 작품 가운데 여성 초상화(‘노부인의 초상’·1932년)가 있었다. 지체 높은 집안의 노부인 모습이다. 하얀 치마저고리의 차림으로 단정하게 앉아 있는 정면 자세이다. 시대는 바뀌었다. 여성을 초상화의 주인공으로 삼다니! 참으로 이례적인 작품의 화가는 채용신(1850∼1941)이다. 도화서 화원은 중인 출신이지만 채용신은 정산(현재 청양)군수까지 지낸 양반 출신이다. 누구에게 초상화 기법을 배웠는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근대기 초상화의 대가로 명성을 날렸다. 현재 채용신의 초상화 작품은 150점 정도를 헤아릴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경매에서 작고 작가의 작품을 구입한다. 최근 출판된 ‘2021 신소장품’ 도록에 채용신의 작품도 수록되어 있다. 그중 부인상 ‘유인명 초상’(1925년)은 하얀 한복 차림에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앉은 자세이다. 옷 주름의 자연스러운 표현과 배경의 병풍과 바닥의 화문석 돗자리 등 세필로 섬세하게 그렸다. 특히 얼굴은 채용신 특유의 기법으로 사실적 표현 기량을 보여주었다. 세필의 반복은 명암을 나타내면서 주인공의 인품까지 읽을 수 있게 했다. 조선시대의 초상화 전통은 수염 하나라도 틀리지 않게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핍진(逼眞)함에 있다. 당시 초상화를 보고 오늘날 의학적으로 주인공을 진찰할 수 있을 정도다. 게다가 주인공의 내면 세계까지 표현하는 전신사조(傳神寫照)의 경지를 강조했다.
채용신은 전업 화가로 공방 시스템을 도입했다. 가족 단위로 작업하면서 가업을 3대나 잇게 했다. 그는 직업 화가답게 작품 가격의 정찰제를 실시했다. 전신상 100원, 반신상 80원 등이었다. 동시대 일반 화가들의 작품 가격보다는 저렴했다. 현재 화폐가치로는 100만 원쯤 될 듯하다. 문제는 광고 인쇄물을 만들어 적극적으로 홍보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채용신은 사진을 활용했다는 특징도 가지고 있다. 사진을 보내주면 똑같이 그려주겠다는 광고였다. 만약 실물과 닮지 않았다면 화가가 책임지겠다고 했다. ‘황현 초상’(1911년)의 경우는 사진을 활용한 대표적 작품이다. 하기야 채용신은 아들에게 서울 종로에서 사진관을 운영하게 했다. 1920년대만 해도 남녀유별의 사회여서 여성들은 남성 사진사의 사진관 출입을 꺼렸다. 이에 채용신은 며느리 이홍경에게 사진술을 가르쳐 여성 전문 사진관을 운영하게 했다. 한국 사진사에서 이홍경의 역할은 매우 크다. 채용신 후손 가운데 채시라 배우도 있다.
채용신의 초상화 작업은 남녀를 구별하지 않았다. 작품 제작비만 내면 누구나 다 고객이었다. 면암 최익현 등 애국지사의 초상화 작업도 많이 했지만 지역 유지 혹은 부부 초상도 다수 남겼다. 시대는 바뀌었다. 채용신의 여성 초상화는 이를 반영한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미술관에서 여성 모델의 그림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채용신의 이색 작품으로 ‘운낭자 초상’(1914년·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을 들 수 있다. 이 그림은 기녀 최연홍을 그린 것이다. 가슴을 살짝 풀어헤치고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이다. 채용신의 정형적 초상화 기법과는 다르지만 27세 젊은 여성의 전신을 화면에 담았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채용신은 작품 전면에 자신의 이름을 당당하게 쓰고 낙관을 했다. 조선시대 이래 초상화에 화가의 이름을 당당하게 밝힌 유일한 사례이기도 하다. 그만큼 초상화가로서 자신감이 넘쳤다는 의미일 것이다.
근래 전북 전주와 정읍에서 채용신 전시를 볼 수 있었다. 말년을 보낸 지역에서의 채용신 재조명 작업은 치하할 만하다. 하기야 욕심을 낸다면, 정읍지역에서 채용신 작품을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미술관이라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채용신은 전업 화가로 공방 시스템을 도입했다. 가족 단위로 작업하면서 가업을 3대나 잇게 했다. 그는 직업 화가답게 작품 가격의 정찰제를 실시했다. 전신상 100원, 반신상 80원 등이었다. 동시대 일반 화가들의 작품 가격보다는 저렴했다. 현재 화폐가치로는 100만 원쯤 될 듯하다. 문제는 광고 인쇄물을 만들어 적극적으로 홍보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채용신은 사진을 활용했다는 특징도 가지고 있다. 사진을 보내주면 똑같이 그려주겠다는 광고였다. 만약 실물과 닮지 않았다면 화가가 책임지겠다고 했다. ‘황현 초상’(1911년)의 경우는 사진을 활용한 대표적 작품이다. 하기야 채용신은 아들에게 서울 종로에서 사진관을 운영하게 했다. 1920년대만 해도 남녀유별의 사회여서 여성들은 남성 사진사의 사진관 출입을 꺼렸다. 이에 채용신은 며느리 이홍경에게 사진술을 가르쳐 여성 전문 사진관을 운영하게 했다. 한국 사진사에서 이홍경의 역할은 매우 크다. 채용신 후손 가운데 채시라 배우도 있다.
채용신의 초상화 작업은 남녀를 구별하지 않았다. 작품 제작비만 내면 누구나 다 고객이었다. 면암 최익현 등 애국지사의 초상화 작업도 많이 했지만 지역 유지 혹은 부부 초상도 다수 남겼다. 시대는 바뀌었다. 채용신의 여성 초상화는 이를 반영한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미술관에서 여성 모델의 그림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채용신의 이색 작품으로 ‘운낭자 초상’(1914년·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을 들 수 있다. 이 그림은 기녀 최연홍을 그린 것이다. 가슴을 살짝 풀어헤치고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이다. 채용신의 정형적 초상화 기법과는 다르지만 27세 젊은 여성의 전신을 화면에 담았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채용신은 작품 전면에 자신의 이름을 당당하게 쓰고 낙관을 했다. 조선시대 이래 초상화에 화가의 이름을 당당하게 밝힌 유일한 사례이기도 하다. 그만큼 초상화가로서 자신감이 넘쳤다는 의미일 것이다.
근래 전북 전주와 정읍에서 채용신 전시를 볼 수 있었다. 말년을 보낸 지역에서의 채용신 재조명 작업은 치하할 만하다. 하기야 욕심을 낸다면, 정읍지역에서 채용신 작품을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미술관이라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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