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재래시장[2030세상/김지영]
김지영 스타트업 투자심사역(VC)·작가 2023. 1. 1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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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광장시장'을 찾았다.
광장시장은 서울 최초 최대 재래시장으로 원단과 한복이 주였으나 청계천 복원 후 관광객이 몰리면서 '먹자골목'이 유명해졌다.
어떤 곳도 흉내 낼 수 없는 재래시장만의 독보적 콘텐츠.
하지만 냉정하게는, 이는 비단 재래시장만의 화두가 아닌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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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광장시장’을 찾았다. 광장시장은 서울 최초 최대 재래시장으로 원단과 한복이 주였으나 청계천 복원 후 관광객이 몰리면서 ‘먹자골목’이 유명해졌다. 학생 땐 데이트 코스로 종종 찾았지만 마지막 방문이 10년도 더 전이었다. 그런 그곳을 느닷없이 다시 떠올린 것은 일이 잘 안 풀리던 늦은 저녁, 익숙한 동네, 이름난 맛집보다는 색다른 ‘경험’으로 기분전환을 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입구에서부터 입이 떡 하고 벌어졌다. 줄지어 늘어선 음식 좌판 너머 분주한 상인들, 반짝이는 불빛,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 삼삼오오 어깨를 포개 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들. 내국인과 외국인, 20대부터 장년층까지 그 구성도 다양했다. 집에서 딱 20분 옮겨왔을 뿐인데, 다른 시공간으로 빨려 들어온 듯했다. 떡볶이, 순대부터 족발, 회, 빈대떡에 이르기까지, 거리를 빼곡히 메운 대부분의 메뉴가 1만 원을 넘지 않았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폭이 좁고 딱딱한 의자에 열선이 흘러 훈훈했다. 소주를 주문하자 상인분이 건너편 상회를 향해 “○○ 이모!” 외치며 손가락 열 개를 펴 보였다. 이윽고 저쪽에서 병 부딪는 소리가 아찔한 검정 봉지를 들고 와 건네더니 졸아드는 떡볶이를 보고 “뒤집으라” 한마디를 무심히 남기고 떠났다. “한국이란 곳에 여행 온 것 같아.” 종이컵에 소주를 따라 마시며 동행과 나는 연신 눈을 반짝였다. 잔치국수, 돼지껍데기, 잡채에 소주 두 병을 해치우고도 2만6000원밖에 나오지 않았다.
자리를 옮겨 손바닥만 한 모둠회에 소주 한 병을 더 비우고, 그러고도 아쉬워 다른 집에서 육회와 빈대떡을 먹었다. 영업 끝났다는 말을 끝으로, 놀이동산 폐장 시간에 맞춰 나오듯 아쉬운 걸음으로 골목을 나왔다. 시장 특유의 생동감과 다국적 분위기, 싸고 다양한 먹거리…. 좋았던 이유는 끝도 없지만 하나만 꼽자면 식상하지만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는 그 ‘사람 냄새’였다. 어떤 곳도 흉내 낼 수 없는 재래시장만의 독보적 콘텐츠.
한편, 시끌벅적한 음식 좌판 너머에는 문 닫은 매장들이 세트장의 배경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먹자골목’을 제외하곤 발길이 뜸해진 지 오래인 씁쓸한 현실이었다. 하지만 냉정하게는, 이는 비단 재래시장만의 화두가 아닌지도 모른다. 은행도 서점도 찾지 않은 지 오래고, 마트도 백화점도 맛집 모시기에 열을 올린다. 대부분의 거래 기능을 가상 공간에 위임하면서 오프라인은 점차 경험의 장으로 남는다. 방문할 이유, 즉 경험 콘텐츠 경쟁이 도래한 것이다. 재래시장이라는 공간의 기능을 단순히 ‘장보기’로 좁혀 마트의 경쟁재로 정의하는 편협한 시각을 버려야 하는 이유이다.
차게 식은 거리를 돌아보며 다음을 기약한다. 그땐 뭘 먹을까, 일찍 와서 구제 상가도 돌아봐야지. 마트만큼 편리하지도 백화점만큼 쾌적하지도 않지만 줄 수 있는 경험이 분명할 때 주차, 화장실 같은 장애물은 오히려 사소해짐을 깨닫는다. 중요한 것은 이 공간이 품고 있는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는 것, 함께 오고 싶은 이들의 얼굴을 헤아리며 가슴이 뛴다는 것이다. 당신도 분명 반할 것이다, 나처럼.
입구에서부터 입이 떡 하고 벌어졌다. 줄지어 늘어선 음식 좌판 너머 분주한 상인들, 반짝이는 불빛,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 삼삼오오 어깨를 포개 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들. 내국인과 외국인, 20대부터 장년층까지 그 구성도 다양했다. 집에서 딱 20분 옮겨왔을 뿐인데, 다른 시공간으로 빨려 들어온 듯했다. 떡볶이, 순대부터 족발, 회, 빈대떡에 이르기까지, 거리를 빼곡히 메운 대부분의 메뉴가 1만 원을 넘지 않았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폭이 좁고 딱딱한 의자에 열선이 흘러 훈훈했다. 소주를 주문하자 상인분이 건너편 상회를 향해 “○○ 이모!” 외치며 손가락 열 개를 펴 보였다. 이윽고 저쪽에서 병 부딪는 소리가 아찔한 검정 봉지를 들고 와 건네더니 졸아드는 떡볶이를 보고 “뒤집으라” 한마디를 무심히 남기고 떠났다. “한국이란 곳에 여행 온 것 같아.” 종이컵에 소주를 따라 마시며 동행과 나는 연신 눈을 반짝였다. 잔치국수, 돼지껍데기, 잡채에 소주 두 병을 해치우고도 2만6000원밖에 나오지 않았다.
자리를 옮겨 손바닥만 한 모둠회에 소주 한 병을 더 비우고, 그러고도 아쉬워 다른 집에서 육회와 빈대떡을 먹었다. 영업 끝났다는 말을 끝으로, 놀이동산 폐장 시간에 맞춰 나오듯 아쉬운 걸음으로 골목을 나왔다. 시장 특유의 생동감과 다국적 분위기, 싸고 다양한 먹거리…. 좋았던 이유는 끝도 없지만 하나만 꼽자면 식상하지만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는 그 ‘사람 냄새’였다. 어떤 곳도 흉내 낼 수 없는 재래시장만의 독보적 콘텐츠.
한편, 시끌벅적한 음식 좌판 너머에는 문 닫은 매장들이 세트장의 배경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먹자골목’을 제외하곤 발길이 뜸해진 지 오래인 씁쓸한 현실이었다. 하지만 냉정하게는, 이는 비단 재래시장만의 화두가 아닌지도 모른다. 은행도 서점도 찾지 않은 지 오래고, 마트도 백화점도 맛집 모시기에 열을 올린다. 대부분의 거래 기능을 가상 공간에 위임하면서 오프라인은 점차 경험의 장으로 남는다. 방문할 이유, 즉 경험 콘텐츠 경쟁이 도래한 것이다. 재래시장이라는 공간의 기능을 단순히 ‘장보기’로 좁혀 마트의 경쟁재로 정의하는 편협한 시각을 버려야 하는 이유이다.
차게 식은 거리를 돌아보며 다음을 기약한다. 그땐 뭘 먹을까, 일찍 와서 구제 상가도 돌아봐야지. 마트만큼 편리하지도 백화점만큼 쾌적하지도 않지만 줄 수 있는 경험이 분명할 때 주차, 화장실 같은 장애물은 오히려 사소해짐을 깨닫는다. 중요한 것은 이 공간이 품고 있는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는 것, 함께 오고 싶은 이들의 얼굴을 헤아리며 가슴이 뛴다는 것이다. 당신도 분명 반할 것이다,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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