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의 인물과 식물] 괴테와 장미
‘괴테는 자연과학자다’라고 하면, 많은 분이 의아해할 것이다. 과히 틀린 말은 아니다. 영국에 셰익스피어가 있다면, 독일에는 괴테가 있다. 특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나폴레옹이 몇 번씩이나 읽었던 소설로, 18세기 후반 전 유럽에 열광적인 팬덤이 형성되었던 그의 대표작 중 하나다.
그런데 그가 사물과 현상을 단지 서정적 시선으로만 바라본 것은 아니다. 아예 동식물에 현미경을 들이대며 철저히 탐구한 사람이 바로 괴테다. 1790년 그는 <식물변형론>이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총 86쪽에 걸쳐 123절로 구성된 작은 책자에는 그가 과학자의 시선으로 식물을 관찰하고 실험한 결과가 담겨 있다. 떡잎에서 출발하여 조금씩 변해가는 식물의 성장 과정을 설명한 이 책은 다윈의 ‘진화론’을 최대한 압축하여 설명하는 듯하다. 이 책의 핵심은 ‘잎이 모든 식물 기관의 출발점’이라는 명제인데, 1817년 괴테가 ‘형태학’이라는 학문을 창시하는 데 초석이 된 책이다.
<식물변형론>의 내용 중에는 장미 관생화(貫生花)라는 특별한 장미가 등장한다. 관생화란 꽃 속에 작은 꽃이 다시 형성되는 기형화로, 그가 관찰한 장미는 꽃 중앙에 다시 줄기와 잎이 발생하고 꽃잎이 피는 특이한 모습이었다. 이와 같은 기형 장미꽃의 관찰 경험을 통해 그는 ‘꽃은 잎이 변형된 형태’라는 생각을 확고히 하게 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그가 <식물변형론>을 쓰게 된 것이다.
괴테가 장미 관생화를 통해 생각해낸 변형의 원리는 현대 식물학에서 몇몇 사례를 통해 입증되었다. 최근 미국의 마이어로위츠 교수는 애기장대의 돌연변이에서, 영국의 코엔 교수는 금어초 돌연변이에서 괴테의 이론적 배경을 밝혀냈다. 최신 과학기술로 무장한 분자생물학적 연구를 통해 괴테의 이론이 입증되기까지는 거의 200여년이 소요되었다. ‘생태학’이라는 학문을 창시한 독일의 헤켈은 괴테를 다윈 ‘진화론’의 선구자로 칭송하였다.
전체와 부분의 관계를 과학적 방법을 동원하여 끊임없이 탐구하였던 괴테. 그는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허물고, 사물과 현상을 조명하는 데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인물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사회생물학자 윌슨이 주장한 통섭의 원류를 괴테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과학은 시(詩)에서 태어났다’는 그의 사유는 인문학에서 출발하여 자연과학에 접근한 괴테의 또 다른 철학 여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선 한국전통문화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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