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서, 미쓰비시컵 준우승으로 베트남과 ‘뜨거운 안녕’
박항서 감독은 경기가 끝나자마자 옆에 있던 코치, 벤치에 있던 선수들에게 밝은 표정으로 악수를 건넸다. 비록 경기는 졌지만, 대회 준우승이라는 성과를 자랑스러워 하자는 의미로 보였다. 이날은 약 5년 동안 베트남 대표팀과 함께한 박 감독의 마지막 경기였다. 원정이었는데도 국경을 건너 온 베트남 팬들이 뜨거워진 눈시울로 박 감독의 사진을 들고 기립 박수를 쳤다.
박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이 16일 태국 빠툼타니의 탐마삿 스타디움에서 열린 ‘동남아 월드컵’ 2022 아세안축구연맹(AFF) 미쓰비시일렉트릭컵(미쓰비시컵) 결승 2차전에서 0대1로 졌다. 이로써 1·2차전 합계 2대3으로 태국에 우승컵을 내줬다.
박 감독은 지난 10월 “지금이 베트남을 떠날 가장 적기라는 판단을 했다”며 이 대회를 마치고 베트남 사령탑에서 내려오겠다는 뜻을 베트남축구협회에 전달한 바 있다.
박항서 감독은 그전까지 눈에 띄는 지도자가 아니었다. 2002 월드컵 대표팀의 코치를 지낸 뒤 4강 신화의 후광에 힘입어 그해 가을 부산아시안게임에서 국가대표팀을 이끌었지만, 동메달에 그쳤다. 이후 경남·전남·상무 등 K리그 사령탑으로 약 10년을 보냈다.
2017년 9월 베트남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박항서 감독은 부상당한 선수에겐 직접 발마사지를 해주고, 생일 맞은 선수에겐 손 편지를 쓰는 자상함을 보였다. 반면 선수들이 긴장을 늦출 때는 불같이 화를 냈다. 박 감독의 뜨거운 리더십으로 선수들이 하나로 뭉쳤다.
베트남은 박 감독이 사령탑에 오른 직후인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자국 역대 최고 성적인 4강에 진출했고, 같은 해 스즈키컵(현 미쓰비시컵)에서 10년 만에 우승컵을 안았다. ‘축구 불모지’ 베트남에 ‘광풍’을 불러온 박 감독이었다.
베트남 주요 도시 광고판에 박항서 감독의 얼굴이 뒤덮혔다. 길거리에서 ‘박항세오’가 울려 퍼졌다. 베트남 국부(國父) 호찌민과 박 감독의 초상이 나란히 걸려 있는 가게도 많았다. 그렇게 5년을 지내는 동안 박 감독은 꾸준히 성과를 냈다. 지난해에는 2022 카타르 월드컵 최종예선에 진출하면서 베트남의 축구 역사를 또 한번 새로 썼다. 현지 언론과 팬들은 박항서를 ‘스승님’이라고 불렀다.
지난 13일 열린 결승 1차전은 베트남 땅에서 펼쳐지는 박 감독의 마지막 경기였다. 관중석에는 베트남어로 ‘감사합니다, 박항서!’라고 쓰여 있는 현수막이 펄럭였다. 박 감독은 “5년 동안 많은 베트남 국민에게 뜨거운 격려를 받았다. 그 마음을 어떻게 잊겠나. 항상 마음 깊이 새기고 간직하겠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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