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산의마음을여는시] 빈집

2023. 1. 16.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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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 다가옵니다.

그동안 애써 외면했던 아버지가 살던 집을 가봅니다.

사방으로 돌아드는 길 끝 아버지의 빈집을 나는 모른 척했습니다.

오늘은 문짝이 떨어지고 내일은 지붕이 허물어졌습니다, 아버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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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희
아버지가 고삐를 놓아버린 시골집은 잘 지낼까
몇 번이나 그 근처에 갈 일이 있었지만
발끝을 오므리고 아버지의 그늘을 에둘러 걸었다
 
내가 지나칠 때마다 빈집은 시위하듯 무너져 내렸다
오늘은 문짝이 떨어지고 내일은 지붕이 허물어진다
살아있을 때도 아버지는 빈집 같았다
 
사방으로 돌아드는 길 끝
선 채로 무너지는 기분이었을까
빈집을 나는 모른 척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순간부터
버려진 세간들이 집을 버티는 동안
나는 아버지를 버티고 있었다
명절이 다가옵니다.

그동안 애써 외면했던 아버지가 살던 집을 가봅니다.

사방으로 돌아드는 길 끝 아버지의 빈집을 나는 모른 척했습니다.

빈집은 내가 지나칠 때마다 시위하듯 무너져 내렸습니다.

오늘은 문짝이 떨어지고 내일은 지붕이 허물어졌습니다, 아버지처럼.

아버지는 당신의 꿈을 포기하곤 나에게 아버지의 꿈을 심었습니다.

나는 안방으로, 거실로, 그리고 부엌으로 따라다니는

아버지의 눈초리를 피해 다녔습니다.

아버지의 꿈을 짐짓 모른 척했던 나를 보고 결국 고삐를 놓아버린 아버지.

아버지는 선 채로 무너지는 기분이었을까요?

제주(祭酒) 한 잔 올립니다.

먼 데 계신 아버지가 내 어깨를 다독이며 왔다 갑니다.

박미산 시인, 그림=원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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