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수의이책만은꼭] ‘읽었다는 착각’과 문해력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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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문해력이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한 과외교사가 학부모로부터 "정치적 사견을 삼가 달라"라는 문자를 받은 후, "'사견'이란 말씀은 지나치신 게 아닐까 싶다"라고 답하면서 해프닝을 일으켰다.
'개인적 의견'이란 뜻의 사견(私見)을 '올바르지 못한 의견'이란 뜻의 사견(邪見)으로 잘못 알아들은 것이다.
이로 인한 사회 갈등이 문해력 문제로 비어져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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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적 읽기’하면 성찰… 타인 배려하게 돼
논란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음주운전과 경찰 폭행으로 복역했던 래퍼 노엘(장용준)이 신곡 ‘라이크 유’(Like you)의 가사를 발표하면서 “하루 이틀 삼일 사흘 일주일이 지나가”라고 소개해 사람들 비웃음을 샀다. 아마도 “하루 이틀 사흘 나흘”이라고 노래해야 할 것을 잘못 표현한 것일 테다. 최근 몇 해 동안 반복된 사건이다.
조병영 외의 ‘읽었다는 착각’(EBS북스 펴냄)에 따르면, 읽고 쓰는 힘을 둘러싼 논란은 생존 행동적 읽기가 의식성의 읽기를 압도할 때 일어난다. 생존 행동적 읽기란, 뱀을 보면 몸이 움츠러들고, 배가 고프면 먹이를 구하며, 매력적 연인을 만나면 저절로 눈이 돌아가듯, 판단 정지나 깊은 생각 없이 자동으로 반응하는 일이다.
이에 비해 의식적 읽기는 텍스트를 정확히 읽고 분석하고 판단하는 작업이 선행한다. 특별한 노력과 주의를 기울여 문서를 읽어낸 후, 맥락에 맞춰 적절한 이해를 도모하려는 태도 없이 글을 명확히 이해할 수 없다. 의식적 독자는 글을 대할 때 일단 멈춰 서서 묻고 따지면서 열린 마음으로 타인의 생각을 대하는 사람이다.
언어 환경의 변화를 살필 때, 청년 세대가 사견 같은 한자어에 약한 것은 자연스럽다. 노년 세대가 외래어나 컴퓨터 언어에 익숙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읽었다는 착각은 청년 세대만이 아니라 노년 세대에서 더 심각하다. 나이 들수록 문서 이해와 정보 활용 역량이 급격히 떨어지고 책도 훨씬 적게 읽는다. 고등교육률 등의 격차를 생각하면 50대 이상이 20~30대보다 전반적 문해력과 독서율이 떨어지는 현상은 이해할 만하다. 급격한 산업화와 정보화로 청년 세대는 전통문화에 약하고, 노년 세대는 낡은 아날로그 세계에 붙잡혀 있다. 이로 인한 사회 갈등이 문해력 문제로 비어져 나온다.
세상은 이메일, 문자 메시지, 뉴스, 안내문, 광고문 등 온통 글로 둘러싸여 있기에, 문해력은 업무를 잘 처리하고 좋은 삶을 사는 데 필수적이다. 문해력 높은 사람은 최대 2~2.5배 임금이 높고, 실업 위험성도 12% 정도 낮다.
21세기 사회에 적합한 고차원 노동은 고도로 복잡한 텍스트를 다루는 능력을 요구한다. 단순 노동은 로봇이 하고, 정해진 대답은 인공지능이 내놓는 시대다. 이제 인간 능력은 여러 자료를 분석하고 종합하여 일의 맥락을 고려해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창의적 사유에 달려 있다. 빠르고 즉각적인 생존의 읽기보다 정확하고 깊이 있는 읽기, 즉 통찰과 지혜가 깃든 의식성의 읽기가 더 중요하다.
의식적으로 읽으면 성찰하고, 성찰하면 성숙하며, 성숙하면 타인을 배려하고, 배려하면 공동체가 화목해진다. 읽기는 생각하는 사람을 만들고 어른의 자격을 갖추며 사려 깊은 공동체를 이룩하는 문명의 도구이다. 읽기가 약해지면, 가짜뉴스가 범람하고 선전·선동이 넘쳐나면서 갈등과 대립이 커져 공동체 전체가 망가진다. ‘읽었다는 착각’에 빠지지 않게 스스로 경계하고, 의식적으로 읽으려 하는 겸손한 태도가 갈수록 절실해진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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