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금형에도 “기후 불복종 재판 첫 승리” 외친 기후위기 활동가들

강한들 기자 2023. 1. 16.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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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포럼 진행 방해 혐의’ 재판
당초 벌금 1200만원서 절반 깎여
판결문에 ‘기후위기’ 명시한 성과
긴급성 등 인정받지 못해 아쉬워
김영준 녹색당 기후정의위원회 위원, 이상현 전 서울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이은호 기후정의위원회 공동위원장, 문성웅 기후정의위원회 위원(왼쪽부터)이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녹색당사에서 손팻말을 들고 있다.

지난 11일 기후위기 직접행동에 나섰던 녹색당 소속 4명의 활동가가 모두 합쳐 55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2021년 10월 포스코 주최로 서울 강남구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에서 열린 ‘수소 환원 제철 포럼’ 행사장에 들어가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벌금형을 받았지만 녹색당은 이날 논평에서 “한국 기후 불복종 재판 역사상 첫 승리”라며 “기후정의 깃발이 재판정에 나부꼈다”고 자축했다. 법원이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시위의 정당성을 일부나마 인정해 판결문에도 명시했기 때문이다.

재판의 피고인이었던 녹색당 소속 이은호 기후정의위원회 공동위원장, 김영준·문성웅 기후정의위원회 위원, 이상현 전 서울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을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녹색당사에서 만나 ‘승리’의 이유를 물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3월 활동가 4명에게 사전에 등록되지 않은 행사장에 들어갔다는 이유(공동주거침입죄), 포스코 행사 진행을 방해했다는 이유(업무방해죄)로 1인당 300만원의 벌금을 내라고 약식명령했다. 활동가들은 이에 불복해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정식 재판에서는 감경을 받았다. 두 명에게는 벌금 100만원씩, 나머지 두 명에게는 각각 200만원과 150만원의 벌금형이 선고됐다. 애초 1200만원이던 벌금이 절반 이상 깎였다.

무죄 판결을 받지는 못했지만 녹색당은 재판 후 성명에서 ‘기후정의 깃발이 재판정에 나부낀 승리’라고 평가했다. 우선 재판부가 판결문에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적었다. 직접행동의 ‘목적의 정당성’도 인정했다.

이상현 전 공동운영위원장은 “감경은 기후 정의의 승리라기보다는 ‘소기의 성과’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이 판결이 다른 기후 재판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 관심이 환기돼서 승리가 앞으로 이어져 ‘진짜 승리’를 하자는 마음으로 승리라고 말했다”고 했다. 이은호 공동위원장은 “가장 늦게 바뀌는 사법부에 (기후위기 대응) 첫 디딤돌을 놨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재판은 길었지만, 시민들의 ‘연대’가 활동가들의 든든한 힘이 됐다. 시민 2035명은 탄원서로 힘을 보탰다. 지난해 10월 공판은 평일 낮에 열렸지만 재판정 좌석이 모자랄 정도로 많은 시민이 방청했다. 문성웅 위원은 “피고인석에서 고개를 살짝 돌려 보면 방청 연대를 온 분들이 주먹을 꽉 쥐며 무언의 응원 메시지를 보내줬다”며 “그분들이 아니었다면 더 긴장했을 거 같다”고 말했다. 김영준 위원도 “뒤통수가 뜨거운 느낌”이었다고 했다.

‘긴급성’, ‘상당성’ 등 정당행위를 인정하는 다른 요건들이 인정되지 않은 점은 아쉬웠다. 이은호 공동위원장은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상향해 유엔에서 발표하기 직전에 행동했던 것”이라며 “탄소 예산 등을 고려하고, 산업계에서는 NDC를 낮추라고 요구하던 와중이라 대단히 긴급했다”고 말했다. 판결문은 ‘직접행동’이라는 방식의 상당성은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이상현 전 위원장은 “행동이 효과적이어야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는데 우리는 포스코처럼 옥외 광고를 ‘도배’할 힘이 없다”며 “1인 시위, 집회, 정책 제안도 해보았지만, 효과는 적었다. 재판부가 ‘직접행동’의 대안으로 말한 것의 효과를 직접 입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사가 항소하지 않으면 활동가들도 항소하지 않을 예정이다. 다만, 벌금을 낼지는 고민 중이다. ‘직접행동’이라는 수단의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 벌금을 내지 않고 노역을 살 각오를 한 활동가도 있다. 장기적으로는 온실가스 배출의 책임을 회피하는 기업을 재판정에 ‘피고인’으로 세울 수 있는 근거를 만드는 입법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17일에는 가덕도신공항 특별법 통과를 주도한 더불어민주당사 건물을 봉쇄했던 멸종반란에 대한 재판, 18일에는 ‘DOOSAN’ 조형물에 녹색 페인트를 뿌리며 두산이 ‘그린워싱’을 한다고 주장했던 청년기후긴급행동의 ‘기후 재판’이 예정돼 있다.

이상현 전 위원장은 “한국을 비롯한 세계의 모든 기후 재판 법정에서 승리의 소식이 들리길 바란다”며 “인류 공동 집인 지구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더 긴밀하게 논의해 함께 싸우고 함께 이기고 싶다”고 말했다.

글·사진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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