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골 시신 방치한 딸, 오히려 모친에게 얹혀살아”

전지현 기자 2023. 1. 16. 21:0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인천 ‘모친 백골시신 방치’ 구속된 40대 사연
어머니 시신을 집에 방치한 혐의를 받는 딸 A씨가 지난 13일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인천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일부 이웃 “순하고 말 느릿”
“세상에 단둘만 남은 듯 생활”
주민센터엔 2013년 자료뿐
이웃들 “누가 사는지 몰라”

지난 11일 밤 인천 남동구 모 빌라에서 딸 A씨(47)가 함께 살던 어머니 B씨(76)의 시신을 2년 넘게 방치한 혐의로 긴급체포된 후 구속됐다. 백골이 된 노모의 사체가 있던 방에선 ‘엄마가 숨을 쉬지 않는다. 2020년 8월’이라고 적힌 메모가 발견됐다.

A씨는 6남매 중 셋째딸이었다. 경찰은 A씨가 “어머니 앞으로 나오는 연금이 끊길까봐 사망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경찰과 동 행정복지센터에 따르면 모녀는 B씨 앞으로 나오는 기초연금 30만원과 국민연금(유족연금) 20만∼30만원으로 생활한 것으로 보인다. 어머니가 숨진 후에도 연금을 타기 위해 사체를 신고하지 않은 딸. 주변인들은 그를 어떻게 기억할까. 경향신문은 사건이 알려진 지난 12일 이후 인천 남동구 인근에서 모녀를 기억하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거주지 인근에서 만난 한 주민은 “딸 A씨가 다리 아픈 모친 B씨를 부축하며 다녔다”고 기억했다. 거동이 불편해지기 전까지, 거꾸로 딸을 보살폈던 것은 모친이었다. 모녀의 이전 거주지에서부터 알고 지낸 정모씨와 그의 아내는 “직전 빌라에 살 땐 할머니(B씨)가 다리가 아프긴 해도 정정했다”며 “딸(A씨)이 모친에게 얹혀살았다”고 했다. 당시에는 모녀가 ‘조카’라 칭하던 어린 여자아이와 함께 살았는데 이사한 이후엔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정씨 부부는 A씨가 “엄마와 세상에 단둘만 남은 사람 같았다”고 회상했다. A씨는 늘 모친과 같이 다녔다고 한다. 정씨 부부는 “사람이 순한데, 내성적이고 말을 느릿느릿하게 했다”며 “세상과 단절돼서 사는 사람 같았다”고 했다. 모녀는 이전 집에서 월세 40만원을 내고 살다 대출을 받아 현재 집으로 이사온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집은 2016년 8월 어머니 B씨 명의로 매입됐다.

행정당국은 딸 A씨가 경제적 능력이나 사회생활 경험이 적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동 행정복지센터는 지난해 모녀 가구의 소득인정액은 어머니의 연금을 포함해 월 65만원이었다고 밝혔다. 숨진 B씨는 2011년 5월부터 2013년 12월까지 기초생활수급자였지만 소득확인 조사 때 부양의무자(A씨 이외 형제자매)의 소득이 증가해 기초생활수급자에서 탈락했다. 소득 조사가 이뤄진 2013년 A씨는 ‘구직 중’으로만 조사됐다. 2023년 현재 딸 A씨는 무직으로 추정된다.

A씨는 같은 빌라에 거주하는 고모씨(76)에게 모친의 상태를 전하기도 했다. 고씨는 지난해 초 “엄마 잘 걸어다니시냐” 물으니 A씨가 “엄마가 맨날 누워있기만 한다”고 대답했다고 전했다. 두 달쯤 전 고씨가 다시 안부를 물었을 땐 A씨가 “엄마 죽었어요”라고 답했다고 했다. 고씨는 ‘어르신이 돌아가셨구나’ 생각했지만 B씨의 시신이 집에 남아 있을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경향신문이 만나 대화를 나눈 이들 대부분은 두 모녀를 기억하지 못했다.

주민들은 ‘이곳은 서로 왕래가 없는 동네’라고 했다. 먹고살기 바쁜 동네라 그렇다고 했다. 아침 일찍 출근해 저녁 늦게 퇴근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모녀의 바로 옆집에 사는 한 주민은 기자에게 “옆에 할머니와 딸이 살았는지도 몰랐다”며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상은 숭실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16일 “2년 동안 어머니 시신을 방치했다는 게 정신적으로 취약한 상태에 있는 분일 가능성이 있다”며 “이런 분들을 발굴해 상담이나 자활 센터를 통해 지역사회에 참여하게 해야 하는데, 부족한 인력상 쉽지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역사회의 이웃들이 관심을 갖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구청에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