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미분양 매입”…취약층 보호라는데 ‘건설사 구제’ 눈총
‘반값’ 아니면 기존 예산으론 수도권서 매입, 공공임대 불가
정부가 취약계층 보호를 명목으로 민간 미분양 아파트 매입 검토에 들어갔지만 적절성을 놓고 비판이 나오고 있다.
미분양 사업장에 대해 5조원 규모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보증상품을 마련하는 등 이미 공적자금을 투입한 상황에서 악성 미분양 물량을 사들인다면 과도한 지원이란 것이다. 건설사 연쇄부도를 해결할 목적으로 미분양 아파트를 사들이다 재정건전성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16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정부는 아파트 미분양이 위험수준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면서 미분양 주택 매입 검토에 나섰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국토부 업무보고에서 “미분양 주택들이 시장에 나오는데 정부, 공공기관이 이를 매입하거나 임차해서 취약계층에게 다시 임대하는 방안도 깊이 있게 검토해주길 바란다”고 주문한 데 따른 것이다.
지난해 11월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수는 5만8027가구로, 정부가 미분양 위험선으로 판단하는 6만2000가구에 근접했다. 이 중 ‘악성 미분양’으로 분류되는 ‘준공 후 미분양’은 7110가구에 달한다.
정부는 기존 매입임대주택과 동일한 방식으로 준공 후 미분양 매물을 매입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매입임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기존 주택을 사들인 뒤 청년·신혼부부를 비롯해 경제취약계층 등에 저렴하게 임대하는 주거복지사업으로, 이 같은 방식으로 미분양 아파트를 사들여 공공임대 물량으로 풀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한정된 예산이다. 준공 후 미분양 매물이라 하더라도 아파트는 기존 다세대·다가구와 매입단가에서 차이가 크다. 정부가 올해 매입임대주택(3만5000가구)에 편성한 주택도시기금은 6조763억원이다. 단순 산술로도 가구당 매입비용으로 1억7300만원가량을 쓸 수 있는 셈이다. 아무리 할인분양을 하더라도 수도권 미분양 아파트 36~59㎡ 중 2억원 미만으로 매입 가능한 물량은 없다.
그동안 LH가 다세대·다가구 주택 중심으로 매입임대 물량을 사들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정부가 멱살을 잡고 ‘반값보다 더 싸게 안 주면 가만히 안 둔다’고 하지 않는 이상 기존 분양가보다 큰 폭의 할인가로 미분양 물량을 넘기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지난해 공공임대 예산을 그렇게 삭감해놓고 이제 와서 미분양을 매입임대로 사들인다는 것은 난센스”라면서 “미분양은 잘 안 팔리는 지역에 지었거나 고분양가이거나 각각 원인이 있는데 대통령이 나서서 ‘미분양을 사줘라’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해 보인다”고 말했다.
미분양 아파트를 환매조건부로 반값에 매입해 공공임대로 풀어줄 것을 줄곧 주장해온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역시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
정택수 경실련 정책국 부장은 “미분양 주택을 매입해 무주택 서민에게 공급하는 것은 적절하지만 분양가격을 거의 그대로 지불하고 산다면 건설사 수익 올려주기밖에 안 된다”고 지적했다.
류인하·심윤지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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