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아시아의 콘텐츠 절대강호…제작 넘어 유통까지 키워야”[‘K컬처의 현재와 미래’ 좌담회]

임지선·최민지 기자 2023. 1. 1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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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이후 90년대 표현의 자유, 2000년대 인터넷 확산으로 한류 공유, 그리고 지금의 넷플릭스… K콘텐츠 ‘세 번의 도약’
20대 때 비틀스를 좋아하면 70대가 돼서도 계속 좋아하는 것처럼 K컬처 흐름도 지속될 것
토종 OTT가 해외로 나가서 한국 것을 실어보내주는 역할도 필요…정부는 성과 중심이 아닌 ‘안 보이게’ 지원해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홍석경 교수,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김윤지 수석연구원

여전히 우리는 어리둥절하다. 방탄소년단(BTS)이 한국 가수 중 처음으로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1위를 기록한 일도 벌써 3년 전이다. 2021년 9월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은 모든 나라에서 1위를 기록했고, 지난해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의 에미상에서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을 받았다. 1990년대 해외에서 만들어진 단어 ‘한류’를 넘어 이제는 K팝, K드라마, K웹툰이라는 이름의 전설을 쓰고 있다. 한국 밖에서 더 강력한 K콘텐츠의 인기를 어떻게 봐야 할지 우리는 아직도 모른다. 이 흐름이 계속 이어질지도 반신반의하는 시각이 많다. 과연 그럴까.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한류연구센터장인 홍석경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오징어 게임과 콘텐츠 혁명>의 공동 저자 김윤지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과 함께 K컬처의 현재와 미래를 논했다.

홍 교수는 “20대 때 비틀스를 좋아했던 사람이 70대가 되어도 좋아하는 것처럼 K컬처 흐름도 지속될 것”이라며 “정부는 ‘영화 하나 찍으려면 집 한 채 말아먹어야 한다’는 인식이 없어지도록 예술인들의 실업급여 등 안전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수석연구원은 “전형적이지 않은 게 K콘텐츠의 색깔”이라며 “한국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가 제작을 넘어 해외에서 유통·배급까지 할 수 있도록 확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담은 지난 4일 경향신문사에서 2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 K콘텐츠가 해외에서 관심을 받는 이유, K콘텐츠의 차별성은 무엇인가.

홍석경 교수(이하 홍) = 한국 콘텐츠가 한국 밖에서 인기있는 현상을 한국에선 지금도 이해를 잘 못한다. 기성세대는 K팝을 듣고 자란 세대가 아니라서 이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K콘텐츠는 아예 다른 세대, 글로벌 OTT와 유튜브 등 디지털 문화가 만들어냈다. 전형적인 보텀 업(bottom-up·상향식) 현상이다. 예를 들어 K팝 경제는 문화산업의 ABCD를 다 뒤집었다. 유튜브를 통해 음원을 공짜로 풀었다. 외국에선 이해를 못한다. 음원을 공짜로 풀고 팬덤을 키워서 팬덤의 욕망으로 앨범을 팔고 콘서트 표를 팔았다. 이 전환이 (외국 사람들은) 안 됐다.

김윤지 수석연구원(이하 김) = K콘텐츠에는 세 번의 도약이 있었다. 첫번째로 1990년대 민주화 이후 방송사에 자유로운 창작 분위기가 도래했다. 일본 드라마 수준으로 한국 드라마 수준이 올라왔는데 때마침 외환위기로 일본 드라마를 사오는 게 어려웠다. 이때 한국 드라마가 ‘일드’ 대체재로 아시아 시장에 들어갔다. 한류 드라마의 시작이다. 두번째 도약은 인터넷이 확산된 2000년대다. 아시아적 느낌, 미국 드라마 속성을 한데 녹인 한류 드라마가 파일로 엄청 공유됐다. 세번째 도약은 넷플릭스다. 넷플릭스라는 OTT에서 제작비와 소재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이 기회를 잡은 건 우리의 능력이다.

홍 = 한국 대중문화가 성공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은 표현의 자유 획득이다. 민주화 없이 생각할 수 없다. 서태지가 나온 때가 1992년이다. 정치 민주화에 몰입됐던 한국의 에너지가 분출한 것이다. 문화적 갈증이 큰 상태에서 만들어진 게 90년대 X세대 문화다. 드라마 <모래시계> <여명의 눈동자>가 모두 민주화 이후 나왔다. 드라마 <애인>은 불륜을 사랑 이야기로 만들었고, 문화연구자들은 처음으로 <애인> 드라마를 연구한 책을 냈다. 1세대 K팝이 나온 것도 이때다. 그때 수출하려고 한 게 아니다. 기획된 결과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우연도 아니다. 한국 발전사가 밀접하게 연결된 현상이다. 이게 가능했던 건 일본의 만화(망가) 문화 덕분이기도 하다. 일본 만화는 동서 간에 문화고속도로를 깔아놨다(일본 만화를 보면서 한국 드라마를 접하는 외국 사람들이 많았다는 의미). 그 위를 효율적으로 쌩쌩 달린 게 한류다.

- 예전 한국은 김기덕 감독 영화처럼 강한 표현 방식 혹은 독특한 장르물에 강점이 있는 나라로 인식된 경향이 있다. 여전히 아시아 콘텐츠에 대한 편견이 작용하는 것 아닌가.

김 = 지금 K콘텐츠에는 두 가지 흐름이 공존한다. 1990년대부터 이어진 달달한 로맨스 형태의 한류 드라마가 지금도 발전해오고 있다. 넷플릭스의 국가별 차트를 보면,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등의 나라에서 상위 10위가 모두 한국 드라마다. <갯마을 차차차>처럼 달달한 드라마들이다. 우리는 북미 시장을 더 크게 보는 경향이 있지만 여전히 아시아 쪽에서는 달달한 형태의 한류 드라마를 즐겨 본다. 북미와 유럽에선 장르물이 인기다. 장르물에 강한 나라라고 하는 건 우리가 넷플릭스를 북미 시장 중심으로 봐서 생긴 오해다.

홍 = <오징어 게임>이 너무 성공해서 다른 걸 안 보려고 한다. 실제로 글로벌 톱 10 콘텐츠를 보면, 아시아 시장에서 더 인기있는 건 <오징어 게임>이 아니라 <갯마을 차차차>다. 한류 드라마라고 불려온 것들의 힘은 여전히 세다.

-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OTT들이 한국 콘텐츠에 계속 투자할까.

홍 = 넷플릭스뿐 아니라 글로벌 OTT들은 아시아 시장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북미와 유럽 시장은 포화 상태다. 중산층이 커가는 아시아 시장에서 잘되는 콘텐츠가 중요하다. 여기에 절대 강자는 한국이다. 한국은 개별 산업이나 트렌드로서 (아시아를 공략할) 역량이 된다는 것을 보여줬으니 당연히 한국에 투자할 수밖에 없다. 오랫동안 투자하리라고 본다.

김 = 넷플릭스는 아시아 시장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한국 드라마를 잘 활용했다. 애플이나 디즈니가 한국 드라마에 성공하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아시아 시장을 잘못 다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년부터 한국 드라마를 만들기 시작했다. 아시아 시장이 커질수록 한국 드라마 수급은 커질 것이다.

홍석경 서울대 교수(왼쪽)와 김윤지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이 지난 4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K콘텐츠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대담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 K팝과 K콘텐츠의 인기는 이어질까.

홍 = 2015년만 해도 이 흐름이 ‘3년 간다’ ‘5년 간다’ 이런 설문조사를 했다.

김 = 그때는 다들 짧게 봤다. 10년 못 간다고 했다. 금방 꺾인다고 했다.

홍 = 이제는 그런 설문조사 안 한다. 청년 시기의 문화는 계속 간다. 20대 때 듣던 음악을 40대에 또 듣지 않나. 그걸 왜 K팝에는 적용하지 않을까. 이건 자신감의 부족뿐 아니라 내재화된 콜로니얼리즘(colonialism·식민주의)이다. 20대 때 비틀스 좋아하면 70대에도 비틀스를 좋아한다. 이건 당연한 문화적 흐름이다. 물론 좋아하는 방식은 달라지겠지만. 그 밑에서 또 새로운 게 나올 거다. 문화의 역동성이란 게 그렇다. 한국을 플랫폼으로 해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에서 새로운 흐름이 나올 수 있다. 유행하다 사라진 라틴 팝 같은 건 아니다.

김 = 미국 드라마는 다 히어로물이다. 우리는 다른 걸 추구한다. K콘텐츠는 전형적이지 않다. 이게 K콘텐츠의 색깔로 자리 잡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제작을 넘어서 유통·배급도 해야 한다. 한국 OTT가 해외 나가서 한국 것을 실어보내주는 역할도 해야 한다. 어려운 비즈니스이긴 하지만 수익은 제작보다 유통·배급에서 더 나온다. 국내 OTT 시장은 너무 작다. 시장을 넓히려면 아시아와 미국으로 나가야 한다.

- 토종 OTT는 국내 시장에서도 글로벌 OTT에 밀리는데 해외 진출이 가능할까.

김 = 정부의 예산이 그쪽으로 흘렀으면 좋겠다. 돈이 많이 드는 비즈니스이긴 하지만 OTT가 해외로 진출하면 K콘텐츠의 흐름이 더 좋아질 것이다. 한국 제작자들이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등지에 들어가서 그 문화권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현재 한국의 제작 능력을 보면 해볼 만하다. 제작만 해서는 이 시장을 버틸 수 없다.

홍 = 그 시작은 아시아에서 해야 한다. 넷플릭스를 통해 한국 드라마를 처음 본 사람들이 많다. <오징어 게임>을 통해 한국 드라마를 보게 된 것이다. 이들에게 10년, 20년 전 한국 드라마는 모두 ‘새것’이다. 이들에게 <내 이름은 김삼순>은 너무 재미있는 드라마다. 이런 드라마들이 쌓여있다. 리메이크 등 과거에 쌓아놓은 IP(지식재산권)를 활용해야 한다. 해외로 OTT가 진출하려면 우리 콘텐츠 외에 중국, 일본 콘텐츠도 사야 한다. 플랫폼화해야 한다. 그게 이미 K팝에서 시작됐다. K팝은 이미 플랫폼화됐다. 외국 아이돌을 다 흡수하고 있다. 산업적으로 굉장히 선진적이다. 스트리밍 시절에 앨범을 이렇게 많이 파는 나라가 어디 있나. (K팝이 플랫폼화됐다는 말은 K팝 그룹에 외국인 멤버를 기용하고, 해외에서 아예 한국인 없는 K팝 그룹이 나오는 등 산업으로 거듭났다는 의미다.)

- 이만큼 K컬처가 성장한 배경을 두고 해외 언론은 정부 지원을 많이 거론한다.

김 = 문화산업이 중요하다고 처음 말한 건 김영삼 정부 시절이다. 제도 정비는 김대중 정부 때다. 벤처캐피털이 영화에 투자해도 세제 혜택을 받도록 투자 생태계를 만들어줬다. 영화는 지원으로 큰 게 맞다. 그러나 K팝이나 K드라마는 그렇지 않다. 서구 학자들의 게으른 분석이다.

홍 = 그렇게 묻는 외국 기자들에게 되묻는다. ‘이만큼 지원하면 이만큼 나오는 자판기인가.’ 과거 한국 정부가 5개년 경제개발 계획을 세우고 금반지 팔아서 외환위기 이겨내는 모습 등을 보고 그렇게 해석한다. 그들(외국인) 입장에선 ‘톱다운’이어야 이야기가 되는 거다. 그래서 계속 헛발질 분석을 한다.

- 정부 지원의 정책적 방향은 어떻게 잡아야 할까.

홍 = 외국은 문화에 돈을 많이 쓴다. 프랑스나 스웨덴은 제작자가 유능하면 1인 회사여도 선지원을 한다. 위부터 아래까지 촘촘하게 정부 지원을 한다. 문화 향유 부분도 아이들과 (공연·영화) 보라고 ‘가족 패스’를 준다. 외국은 영화 넉 달 찍고 여섯 달 논다. 실업급여도 준다. 그러나 한국은 시나리오 작가가 굶어죽기도 한다. 정부 지원을 받으려면 ‘가난’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다. 산업이 잘되려면 능력있는 사람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영화 하나 찍으려면 집 한 채 말아먹어야 한다는 인식이 없어야 한다. 안전하게 자기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김 = 정부가 안 보이게 일하면 좋겠다. 외국의 문화 지원 제도를 찾으려고 하면 찾기가 힘들다. 그들도 없지 않다. 지원 제도가 많은데 안 보이게 몰래 숨겨놓았다. 우리 정부는 무엇인가 진행하면 작은 것도 크게 드러낸다. 공무원들이 너무 성과 중심으로 가는 건 지양해야 한다.

홍 = 정부가 일을 할 때는 정확한 대상자를 찾아야 한다. 정부나 유관기관들이 해외에서 열리는 K팝 공연 홍보를 할 때도 그들에게 ‘Visit Korea’ 홍보를 할 게 아니다. K팝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국 오는 게 꿈이다. ‘Visit Korea’ 홍보는 K팝 팬 바깥에 해야 한다. 일하는 방향을 제대로 설정해야 한다.

김 = 민간이 잘할 수 있는 영역에선 정부가 손을 떼고 뒤로 가야 한다. 정부는 안 보이는 쪽으로 꾸준히 돈을 쓰는 게 좋다.

- 한국 대중문화계에는 저작권, 촬영 스태프들의 인건비 배분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김 =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은 <기묘한 이야기>(미국 드라마) 제작비의 3분의 1로 만들었다. 낮은 수준의 인건비는 시장 초기 진입에 도움이 되지만 퀄리티를 유지하려면 이 정도 인건비로는 안 된다. 좋은 인재가 들어오지 않는다. K웹툰을 보자. 한국 웹툰은 수익 분배 구조가 좋다. 저작권을 조금씩 나눠준다. 재능 있는 작가들이 요새 드라마 안 하고 웹툰으로 가려고 하는 이유는 수익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도 슬슬 K콘텐츠 인건비를 올릴 준비를 해야 한다.

홍 = 촬영 스태프들의 연금 시스템을 제작사가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프로젝트와 프로젝트 사이 일이 없는 기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은 그뿐이다. 다들 창작욕은 가득한데 그 안에서 승자가 다 가져가지 않도록, 빗물이 내려오도록 해야 한다. 국가가 직접 나서서 물건을 팔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

- 앞으로 K컬처가 주의해야 할 점은.

홍 = 인종과 젠더 차원에서 감수성이 다소 떨어진다. 한국은 다문화적인 경험이 많지 않다. 좋은 의도여도 표현의 문제를 조심해야 한다.

임지선·최민지 기자 vis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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