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노동 보도, '좋은 기획기사' 또는 '나쁜 사건기사'
'노동 보도 현황과 개선 방안 연구' 보고서 지적
집중취재 기획과 무분별한 단발성 기사로 이원화
"분쟁 때까지 보도 않는 보도가 분쟁을 부른다"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한국 언론사들의 노동 보도 전반이 일부 심층 기획보도와 일상의 무분별한 단발성 보도로 이원화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파업이 들어간 뒤에야 쟁점보다 경찰 투입 등 사건을 중심으로 보도하는 뉴스룸 관행이 문제 해결보다 악화에 일조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박영흠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과 안수찬 세명대학교 저널리즘대학원 교수, 박권일 독립연구자, 강태영 언더스코어 대표 등은 지난 10일 공개한 한국언론진흥재단 '노동 보도 현황과 개선 방안 연구' 보고서에서 이같이 진단했다. 보고서는 한국 노동 보도 전반의 특징을 빅데이터와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 수상 보도 분석, 15명의 노동 취재 경험이 있는 언론인과 5명의 연구자·활동가·변호사 심층 인터뷰 등을 수행했다.
보고서는 한국 언론의 노동에 대한 관심사가 장기간에 걸쳐 커졌다고 분석했다. 특히 20여 년 전에는 대부분의 노동 보도가 파업 이후 중계식 보도에 한정됐지만, 점점 다양해져 2022년 현재 기준으로는 산업재해나 갑질 등 다양한 주제가 등장했다.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 수상작 가운데 노동 보도의 비중도 높아졌다. 1990년대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달마다 0~4건이던 수상작이 2010년대 중반 이후 4~13건으로 늘었다. 노동 보도 수상작에선 연재 기획이 52.4%를, 연속 보도가 13.1%를, 장문 보도가 3.6%를 차지했다.
수상작들도 한계가 없었던 건 아니다. 보고서는 “(수상한) 노동 보도 대부분은 취재원을 실명으로 표기하지 않고 충분한 반론을 반영하지 않는 등 기사라면 당연히 갖춰야 할 기본 규범에 불충실했다”며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수백 명을 만나고 방대한 데이터나 문서를 함께 분석해 물증으로 제시하는 해외 유력 언론에 비해 취재의 치열성이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했다. 이 같은 노동 보도의 비중은 최근 들어 증가했다.
한편 노동 보도의 질적 개선은 '상향평준화'가 아닌 '보도의 이원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특정 이슈를 장기간 집중적으로 취재해 만든 '우수한 기획 보도'와 발표나 사건 전달 위주의 '일상적 단발 보도'가 마치 별개의 콘텐츠인 것처럼 제작된다”는 얘기다.
보고서는 여러 언론이 심층 기획보도에선 노동에 관심과 자원을 쏟아 양질의 저널리즘을 구현하지만, 일상에선 노동에 대한 관점과 자원, 역량이 부족해 노동 보도의 질이 매우 낮은 상태라고 했다. 보고서는 “여러 현직 기자들도 일부 '좋은 보도'와 대다수 '나쁜 보도'에 대한 극단적으로 엇갈린 평가를 내놓았다”고 덧붙였다.
노동 보도 전반을 돌아보면, '갈등과 사건'에만 집중하는 단발성 보도가 그 특징으로 꼽힌다. 보고서는 노동 취재 경험이 있는 언론인과 노동 전문가 인터뷰를 종합해 “언론은 파업의 폭력적 양상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거나 공권력 투입 여부, 체포된 노조원 수 등을 수시로 점검하며 파업 현황을 지나치게 자세히 중계하지만, 파업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해당 사업장에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고 파업을 시작한 뒤에도 정작 중요한 파업 이유에 대한 설명이나 노조 측 주장에 대한 검증은 충분히 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사건 중심의 보도가 이뤄지는 이유로는 '의지와 역량의 부족'을 꼽았다. 복수의 노동 취재 경험이 있는 기자들은 “시간과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보니 노동자들이 실제 일하는 현장에 가서 직접 취재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E, L기자)”며 “현장 분위기를 보는 것과 안 보는 건 천지 차이(G 기자)”라고 전했다. J 기자는 고용노동부 출입기자는 사내 하나뿐이며, 매일 발제하고 보도해야 하는 환경에서 “매일 현장에 나가 취재하고 또 다른 기사를 쓰고 모든 걸 다하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정작 집회와 파업 현장은 노동 담당 기자가 아닌 경찰팀이나 사건팀이 맡기 일쑤다. L 기자는 “현안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부족한 저연차 기자가 급하게 투입되어 취재하다 보니 기사의 심층성이 부족해지고 맥락에 대한 설명이 누락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보고서는 “갈등이 극단적 양상으로 표출되어야 비로소 관심을 갖는 언론의 이러한 보도 행태가 노동계의 투쟁을 극단적 방식으로 내몰고 노사갈등을 부추기는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
보고서는 S 기자의 인터뷰를 인용해 “아주 극단적인 상황이 되지 않으면 기사를 안 쓴다. 고공농성해야 기사를 쓴다. 파업을 해야 기사를 쓴다”며 “분쟁 형태가 되면 주목을 받다 보니까 분쟁이 된다. (…) 지금까지 3년 내내 대화하다가 대화를 안 들어줘가지고 올라간 건데”라고 전했다.
출입처 중심의 생산 관행도 문제의 원인 중 하나다. 보고서는 “심층적 기획기사의 생산을 가로막고 노동 보도의 품질을 저하시키는 핵심 요인은 출입기자로 하여금 출입처 발생 기사를 처리하는 데 매몰되도록 만드는 관행적 생산 시스템일 수 있다”고도 했다.
보고서는 언론이 노동 보도의 질과 사회적 효용을 높이려면 먼저 보수 성향 언론이 노동에 대한 과도하게 적대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제언했다. 보고서는 “많은 인터뷰 참여자들이 노동조합을 악마화하는 보수언론의 노조혐오 보도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했다”며 “사실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거나 기사의 방향 또는 회사의 논조에 맞춰 사실을 취사선택하는 등 정확하지 않은 보도로 현실을 왜곡하는 것은 저널리즘의 품질 차원에서 문제가 있다”고 전했다.
보고서는 언론이 갈등이 아닌 토론을 매개해야 한다고도 밝혔다. “언론이 노동을 진영 다툼의 전선으로 바라보는 대결적 사고를 버리고 문제 해결의 공론장 역할을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기사의 심층성과 다양성도 더해야 한다며 “까다로운 쟁점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효과적으로 전달하여 이슈에 대한 시민의 숙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깊이 있는 저널리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이를 현실화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노동 보도 인원을 늘릴 것 △'스트레이트 단독' 중심의 뉴스룸 관행 극복 △노동 담당 기자의 교육·훈련 프로그램 마련 등을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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