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UAE의 적은 이란, 우리 적은 북한” 발언 적절했나?
윤석열 대통령이 현지시간 15일 오후 아랍에미리트(UAE)에 파병된 아크부대를 찾았습니다. 장병들을 격려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왜 UAE에 오게 됐느냐, UAE는 바로 우리의 형제국가이기 때문입니다…형제국의 안보는 바로 우리의 안보입니다. UAE의 적은, 가장 위협적인 국가는 이란이고, 우리 적은 북한입니다…우리와 UAE가 매우 유사한 입장에 있습니다."
장병들이 먼 타국에 와서 고생하고 있지만, 결국은 국익에 기여하는 것이니 자긍심을 갖고 복무해 달라는 취지에서 말한 '격려사'입니다.
그런데 이 발언이 알려지자 마자, 국내 중동 전문가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 했습니다.
■UAE와 이란이 '주적' 관계?
2023년 1월, 남북은 서로를 '주적'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UAE와 이란도 서로 총부리를 겨누는 '주적' 사이일까요?
UAE와 이란, 겉으로 보기엔 사이가 나빠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3개 도서를 놓고 영토 분쟁을 겪고 있습니다. 2016년에는 외교 관계를 격하한 적도 있습니다. 당시 사우디가 시아파 유력 성직자의 사형을 집행하자, 이란 내 일부 시아파 무슬림이 테헤란 주재 사우디 대사관을 공격하면서 이란과 사우디가 단교했습니다. 이에 많은 걸프 국가들이 이란과 수교를 단절하거나 국교를 격하했는데, UAE는 외교관계 수준을 대사급에서 공사급으로 낮추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두 나라는 남한과 북한처럼 '주적'으로 봐선 안 된다고, 여러 중동 전문가들이 지적합니다. 외교부가 2017년 3월 펴낸 아랍에미리트 개황을 보면 " 이란은 UAE의 주요 교역 파트너이자 최대 재수출 시장으로 양국간 실질적 경제 협력을 중시"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겉으론 껄끄러워 보이는 관계이지만, 내면에선 경제적 유대가 큰 '긴밀'한 관계란 겁니다. UAE의 대표적 도시인 두바이는 40만 명의 이란인이 거주하며 두바이 경제에서 핵심 역할을 한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2008년 경제위기로 두바이가 휘청했을 때 이란의 자금이 두바이를 살렸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입니다.
UAE는 중동 내 대표적 수니파 국가로 알려져 있는데, 천만 명에 이르는 인구 가운데 이란계 시아파의 비중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2021년 말부터 양국 관계 '해빙' 분위기
외교 관계만 보더라도 현재 양국은 '적대' 관계로 보이지 않습니다.
2021년 12월6일, UAE 왕가의 고위급 인사가 이란을 전격 방문했습니다. 셰이크 타흐눈 빈 자이드 알 나흐얀 UAE 안보 보좌관이 테헤란에서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 알리 샴카니 최고국가안보회의(NSC) 의장을 잇달아 만났습니다. 타흐눈 보좌관은 UAE의 실세 무함마드 빈 자예드 알 나흐얀 아부다비 왕세제의 동생으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당시 라이시 대통령은 타흐눈 보좌관에게 "중동 국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이란 외교 정책의 우선순위"라며 "UAE와의 관계 발전을 환영한다"고 말했습니다.
2022년 8월에는 UAE가 6년여 만에 이란에 대사를 다시 파견하며 외교 관계를 복원했습니다. UAE 외교·국제협력부는 당시 "이웃 국가인 양국의 관계를 강화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노력 중 하나"라고 말했습니다.
■한-이란 관계는 어떻게 되나?
이번 윤 대통령의 발언이 한-이란 관계에 미칠 파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한국에는 현재 70억 달러 가량의 이란 자금이 원화로 동결돼 있습니다. 미국 트럼프 정부가 2018년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탈퇴하고 대이란 제재를 복원하면서 이란의 석유 판매 대금 계좌가 동결됐기 때문입니다.
70억 달러는 외국에 동결된 이란 자금 가운데 가장 큰 규모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만큼 미국의 제재 이전에 이란과 한국의 교역이 매우 활발했다는 얘기입니다. 이란에서 우리 드라마 '대장금'은 2006년 방영 당시 90%라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했습니다. 한류를 타고, 한국산 가전제품과 화장품은 이란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란핵협상이 다시 타결돼 국제사회의 대이란 제재가 풀릴 경우, 이란 시장이 다시 열리게 됩니다. 인구 8900만 명에 막대한 자금력을 가진, 그야말로 중동 최대의 시장이 열리는 셈입니다.
때문에 70억 달러 동결로 가뜩이나 껄끄러워진 양국 관계가, 이번 대통령 발언으로 더욱 악화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겁니다.
백승훈 한국외국어대학교 중동연구소 전임연구원은 "우리 대통령이 직접 파병부대를 찾아 격려를 하고 한-UAE간 우호관계를 보여준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측면이 있다"면서도 "이란이라는 큰 시장, UAE-이란의 복합적 관계를 생각한다면 이처럼 단언적인 발언을 한 것은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윤진 기자 (ji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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