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임 칼럼] ‘난쏘공’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사회
[제정임 칼럼]
제정임 |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장
지난해 성탄절 세상을 떠난 조세희 작가는 2008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난쏘공) 출판 30주년에 즈음한 <한겨레> 인터뷰에서 “책을 쓸 당시엔 30년 뒤에도 읽힐 거라곤 상상 못 했다”고 말했다. 이 연작소설은 도시 재개발로 밀려난 철거민 가족이 절망 끝에 목숨을 버리거나 신산한 삶을 이어가는 반면, 부자들은 입주권 매입 등으로 쉽게 돈을 벌며 가난한 이들 위에 군림하는 세태 등을 그렸다. 조 작가는 “앞으로 또 얼마나 오래 읽힐지 알 수 없지만, 세상이 지금 상태로 가면 깜깜하다는 것, 그래서 미래 아이들이 여전히 이 책을 읽으며 눈물지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내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14년 뒤 눈을 감으면서 조 작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아이들까지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고 말하는 사회에서, 새 정부가 부동산 투기 빗장을 다시 열어젖히는 것을 보며 억장이 무너지진 않았을까.
윤석열 정부는 치솟는 집값에 분노하는 민심을 업고 집권했지만, 부동산 정책은 ‘집값 살리기’를 노골적으로 겨냥하고 있다. 국내외 금리가 오르면서 아파트 가격 등이 하락세를 보이자 ‘징벌적 규제를 정상화해 부동산 시장 연착륙을 유도하겠다’며 감세와 규제완화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집을 여러채 가진 이들의 종합부동산세를 줄여주고, 양도소득세 중과유예를 연장한 데 이어 취득세 인하도 추진한다. 다주택자 대출 규제를 완화하고 임대사업자 혜택도 되살리기로 했다. 전매제한과 실거주 의무 등 분양·청약 규제를 전반적으로 풀고 부동산 규제지역을 대폭 축소하며,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쉽게 해제할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의 재량도 넓힐 계획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투기 목적 거래까지 쉽게 할 수 있게 만들어, 집값을 떠받치고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뜻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대출 금리가 치솟고 집값은 떨어지는 바람에 ‘하우스 푸어’, 즉 집 가진 빈민이 된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지 정부 대책은 잘 보이지 않는다. 너무 비싼 집값·방값 때문에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 등 ‘지옥고’를 전전하는 주거취약계층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도 뚜렷하지 않다.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임대주택은 올해부터 5년간 공급될 물량이 최근 5년보다 4만호가량 줄어든다고 한다. 국토교통부 2021년 조사에서 서울의 소득 대비 집값 비율(PIR)은 14.1배였다. 중간 소득 가구주가 수입을 한푼도 안 쓰고 14년 이상 모아야 서울에 중간 수준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뜻이다. 2017년 12배에서 더 높아졌다. 이 ‘미친 집값’을 낮추지 못한다면 청년들이 결혼을 포기하고 저출생이 가속화하는 문제도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다.
배문성 투자분석가는 저서 <부동산을 공부할 결심>에서 여러 데이터를 제시하며 “집값을 좌우하는 것은 공급 물량보다 금리”라고 주장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이전 정부보다 주택 공급량도 늘리고 다주택자 증세와 규제 강화를 했는데도 집값을 못 잡은 것은 코로나19 대응 과정 등에서 초저금리로 돈이 많이 풀린 탓이 크다고 진단했다. 이어 중·장기적으로 집값이 안정되려면 투자 대상으로서 주택의 매력이 사라지게 하는 높은 세금 등의 정책을 일관되게 유지해, 다주택자가 매물을 내놓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정부는 금리 상승기에 집값을 안정시킬 절호의 기회를 얻었지만, 이 처방과 거꾸로 가면서 장차 투기가 재연될 토양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국민이 얼마나 주거복지를 누릴 수 있느냐는 정부가 ‘집’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좌우된다. 정부가 집을 돈벌이와 경기부양의 수단으로 본다면 두둑한 밑천과 정보력을 가진 다주택자들이 더욱 부자가 되고, 전월세난과 지옥고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정부가 국민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수단으로 집을 바라본다면 홍수가 닥쳐도 반지하에서 희생자가 나오지 않는 사회, 빈손의 젊은이도 쾌적한 공공임대주택에서 출발할 수 있는 사회가 가능할 것이다. 지금 정부가 할 일은 다주택자 중과세와 대출 규제를 일관되게 유지하고, 공공임대주택을 늘리며, 세입자를 보호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을 잘 정착시키는 것이다. 지역균형발전을 통해 수도권에 몰린 인구를 고루 분산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야 소박한 행복을 꿈꾸던 도시빈민 가족이 투기 열풍에 내쫓기는 난쏘공의 비극을 ‘옛날이야기’로만 읽는 날이 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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