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기관사가 본 전장연 시위

한겨레 2023. 1. 16.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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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주저함은 없었는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지난 2일 오전 서울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 승강장에서 지하철 탑승을 시도하는 가운데 경찰이 배치돼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황철우 | 서울지하철 2호선 기관사

경기 남양주시 모란공원 들머리엔 ‘우동민 열사 여기 잠들다’라는 안내판이 놓여 있다. 고인은 이명박 정권 때 국가인원위원회 사무실에서 농성하다 급성폐렴으로 숨을 거뒀다. 당시 국가인권위는 ‘장애인 차별 폐지’를 외치는 중증 장애인의 농성을 중단시키기 위해 전기와 난방을 끊고 엘리베이터 가동을 중지하고, 심지어 음식물 반입까지 허용하지 않았다. 고인을 편안하게 모실 비용조차 없었던 이들은 고인의 삶을 잊지 않기 위해 남모르게 공원 입구 나무 밑에 유골을 묻었다.

올해 우동민 열사 추모제는 서울지하철 4·6호선 삼각지역에서 진행됐다. ‘장애인도 지하철을 타고 싶다’는 외침을 뒤로한 채 열여섯 대의 지하철은 삼각지역에 서지 않고 그대로 지나갔다. 역사 내 승객이 갑자기 몰려서 안전을 고려한 조치도 아니다. 수천 명의 시위대가 운집한 것도 아니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의 요구를 막기 위해서다. 오세훈 시장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수용한 법원의 강제조정도 거부하고 직원과 경찰을 앞세워 장애인 탑승을 가로막았다. 255일 동안 진행된 장애인 권리예산 입법을 위한 지하철 탑승 선전전이 강제로 중단되었다. 서울지하철에서 장애인 탑승이 거부당한 첫 사례다.

그동안 서울지하철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4호선 혜화역에서 시작한 ‘출근길 지하철을 탑니다’라는 탑승선전전은 시작부터 승객의 많은 불편함을 초래했다. 장애인의 승하차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열차 지연운행으로 지각이 속출했고, 객실 안 혼잡도는 높아졌다. 당일 열차 운행을 담당하는 승무원은 1시간 이상 연장운행을 해야만 했으며, 열차 지연운행에 대한 승객들의 빗발치는 항의를 고스란히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지하철 역사 내 안내방송은 “전장연의 불법시위로 지하철 운행이 지연되고 있다”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전장연의 장애인 권리예산 입법 투쟁으로 지연되고 있다”는 설명으로 바뀌었다. 지하철을 이용해 출근하고 한두 번 갈아타는 것은 장애인이라고 비장애인과 다를 수 없으므로 불법을 운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200여 일 넘게 진행한 탑승선전전은 4호선에서 3호선과 2호선을 거쳐 다시 4호선으로 이어졌다. 서울교통공사도 달리 막을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이렇게 길게 진행될 일이 아니었다. 서울시장과 정치권이 장애인의 목소리를 귀담아들었다면 벌써 해결될 일이었다. 그들은 오히려 뒷전에 물러나 있으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갈등만을 부추겼다. 그사이 이용 승객의 불편과 직원들의 피로감은 높아졌다.

장애인의 지하철 첫 시위는 2001년 2월 ‘서울역 선로 점거’였다. 당시 4호선 오이도역 장애인용 리프트 사고로 장애인 부부가 숨지고 다친 것에 항의해 장애인들이 안전기준 마련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사고는 멈추지 않았다. 2002년 5월 광화문역과 9월 을지로입구역에서 중증 장애인이 자신의 몸과 선로를 쇠사슬로 묶는 시위가 이어졌다. 지하철 계단 옆 휠체어 전용 리프트의 안전기준 강화와 지하철 역사 내 승강기 설치를 요구했다. 그때도 시민들의 반응은 우호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장애인 단체의 지속적 투쟁과 시민사회의 연대로 현재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서울지하철 역사는 90%를 넘어섰다. 절박한 투쟁으로 권리보장을 얻어낸 것이다. 지금은 장애인뿐 아니라 어르신, 임산부, 환자 등 교통약자도 줄을 서서 이용하고 있다. 장애인의 죽음과 투쟁으로 이 시설이 만들어지고 유지되고 있음을 아는 이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아픈 곳, 소리 나는 곳에 먼저 손을 내밀기는 쉽지 않다. 특히 사회적 약자의 몸부림과 투쟁이 나와 조직을 불편하게 하면 침묵하거나 무시한다. 전장연의 지하철 탑승선전전을 대하는 시선도 다르지 않다. “장애인 권리예산 입법 투쟁을 하필이면 지하철 출근 시간에 하냐?”는 볼멘소리 앞에서 이토록 긴 시간 동안 책임을 방기한 서울시장과 정치권을 질타하는 목소리는 조직되지 못했다. 서울시장이 지하철 무정차 통과를 시도할 때, 투쟁 때마다 교통약자의 이동권 보장을 외치던 서울교통공사노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연대는 당장의 어려움과 곤란함을 뒤로한 채 함께 비를 맞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장애인 투쟁이 길어지는 이유는 함께 비를 맞는 것을 주저하는 우리 내부에 있는 것 같아 그저 미안하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탄압이 거세지는 지금, 우동민 열사를 기억하며 그들과의 연대를 더 굳세고 튼튼하게 해야 할 한 해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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