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영혼을 잠식할 수 있다면".. 하나의 그림, 꿈꾸는 추상
3월 25일까지 갤러리2 중선농원
"공간 그리고 나의 확장" 조명
작품 하나로 가득 채워진 공간이라니. 그 안에서 온전히 부유하거나 혹은 투사된 의식과 ‘하나’될 수 있다면 사실 무엇과도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존재의 충만감을 더해줄 법 합니다.
제주시 아라동의 갤러리2 중선농원이 전현선 작가의 개인전 ‘형태들’을 지난 3일부터 개최하고 있습니다.
전시장을 가득 메워, 넘칠 듯 뻗어가는 작품은 차라리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게 나을 듯 싶게 만듭니다. 이미지를 차마 하나의 시선으로 품기엔 어려워 보입니다.
작가는 하지만 "관람객들이 작품을 보고 무엇을 그렸는지, 어떤 내용인지 떠올리기보다 '나를 둘러싼 그림과 그 안에 존재하는 나'라는 상황에 집중하기를 바란다"고 전시 취지를 전합니다.
■ 다양한 '형태'.. '텅 빈' 공간에 주목함
전시는 애초 '그림'이란게 실물과 닮거나 아니거나 의미와 내용이 있다고(혹은 있다고 믿거나), 또는 그 형태가 의미하는 것을 알아내고 내용을 읽어나가는 것이 그림 감상법이라 생각하는 기존 틀을 벗어난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형태들(Shapes)'전에서 만날 수 있는건 의미나 내용의 구분을 무색하게 만드는 '텅 빈' 형태 뿐입니다.
'형태'는 특정 대상을 가리키는게 아닌, 보는 이들의 시선을 캔버스 프레임 밖으로 끄집어 내거나, 혹은 나란히 놓거나 대칭해 마주 보는 거울 같은 역할을 합니다.
전시장이란 공간 속에서 그림은, 가득 차 있지만 어떤 의미로는 '텅 비어' 있습니다.
'그림'을 하나의 '공간'으로 마주하는 경험이 낯설다 느껴지는 그 순간, 인식의 지평은 이미 경계를 한 뼘 넓혔습니다.
■ "분할 그리고 확장, 만나다".. 타자와 '거리두기'
그림의 안과 밖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다는 작가는, 캔버스라는 화면 안에 서사를 담는 행위(그림의 안)와 더불어 그림이 단순히 이미지에 그치지 않고 공간 그 자체로 확장하는 것(그림의 밖)을 동시에 시도합니다.
도형들은 그 자체의 추상성 만큼이나 갖는 의미망이 상당합니다.
사적인 경험이나 인간관계일 수도 있고 특정한 사물, 어떤 상황이거나 상태 그리고 작가 작업의 근원일 수도 있습니다.
서사의 줄기를 기반으로 작가는 도형들의 배치와 구도를 통해 '다름' 혹은 '이해', '한계'를 체현하며 그 사이에서 '적당한' 접점을 찾는 '과정' , 일종의 거리두기의 한 방법론을 보여줍니다. 그런 작업입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한 작품에 모두 담거나 분리하는 방법 가운데 분리 즉, 그림의 밖으로 공간이 확장되는 걸 택했습니다.
작가는 여러 캔버스를 조합하되, 처음부터 자신의 그림이 (밖으로) 연결될수 있다는 기능성을 전제하고 작업을 하면서 분할과 확장의 묘를 적절하게 발휘한 것으로 보입니다.
■ 5점 작품 선봬.. "해체 그리고 재구성"
전시장에 설치된 작품들은 일종의 유닛 모듈 가구처럼 공간에 맞게 재구성되어 선보입니다.
'나란히 걷는 낮과 밤', '두 개의 원기둥', '두 개의 기둥과 모서리들', '위로 자라는 그림 1', '위로 자라는 그림 2' 등 모두 5점의 작품을 설치했습니다.
가로 2미터, 세로 1.5미터의 캔버스가 8개 혹은 4개가 모여 하나를 이루는 그림 5점을 해체하고 재조합한 결과, 작품은 한 공간에서 완성되면서 다시 자라고 뻗어나가는 지향성을 확보합니다.
그렇게 한 화면, 공간에 펼쳐진 그림은 어떻게 보면 추상화 같은데 도형 사이 미세한 음영으로 입체감을 선사하면서 불현듯 익숙한 사물들을 등장시킵니다.
작가는 그림을 '추상화' 혹은 '구상화'로 명확히 구분하는게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림은 기본적으로 '추상'이라며, 점에서 선이 되고 선에서 면이 되면서 만들어진 도형들의 집합으로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 추상에서 구상으로.. "모든 형태들에게 고함"
작가는 평면과 입체가 결합된 조각 작품처럼 추상과 구상이 결합된 화면을 만들고 싶다면서 작업을 이어갑니다.
그렇게 작품 주변으로 시선을 돌리면 포스트잇을 붙인 듯 그림 속에 다시 그림이 등장합니다.
작가는 2016년부터 이같은 방식을 작업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노트북에 창을 여러 개 띄워놓듯, 어떤 주제에서 시작한 대화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른 주제로 자연스레 연결되듯이 한 화면에 떠오르는 단상들을 그대로 늘어놓는게 자신에게 더 맞는 그리기 방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때문입니다.
그림과, 그림 속 그림의 관계는 매번 달라 밀접하게 관련되기도 하고 전혀 관계가 없기도 합니다.
그림 속 그림들은 관람객의 시선을 흐트러뜨리거나, 화면을 이해하는 단서 역할을 합니다.
갤러리2 중선농원은 전시장만 존재하는 공간으로, 작가는 작품만으로도 꽉 찬 공간에서 작품을 구성했다고는 하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작품이 최종 설치된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은 그 자신일지 모른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전시 제목의 '형태들'이란 단지 그림만이 아닌, 그 시선에 놓인 작가는 물론 모든 이들을 포용한 그릇으로 해석됩니다.
전시는 오는 3월 25일까지 갤러리2 중선농원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회화의 확장성을 모색해온 전현선 작가는 캔버스 안팎의 '관계'에 관심을 갖고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회화 안에서 경계를 넓히고 있는 작가는 한눈에 담기 힘든 규모 있는 작품으로, 회화에 대한 통상적인 시선을 해체하며 새로운 방식을 지속 제안합니다.
전시와 함께 책을 펴내, 최근 7년여 작업을 묶은 '모든 것도 아무 것도'(2022, 해적프레스) 등을 비롯해 여러 책을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개인전으로 '열매와 모서리' (2020, 갤러리2)와 '나란히 걷는 낮과 밤' (2018, 대안공간 루프) 등을 갖고 '아트 스펙트럼 2022' (2022, 리움미술관) 등 다수 그룹전에도 참여했습니다.
JIBS 제주방송 김지훈 (jhkim@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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