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돋보기] 정부의 새해 부동산 규제 완화책 상승 반전보다 매물 소화 과정 거칠 듯
정부가 2023년 새해 들어 전방위 규제 완화책 카드를 꺼내 들었다. 1월 3일 내놓은 규제지역 해제와 분양 시장 활성화 대책이 그것이다. 예상은 했지만 그 정도가 파격적이다. 지금까지 역대 정부가 숱한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지만 새해 벽두부터 내놓기는 처음인 것 같다. 그만큼 분양 시장과 건설 업체를 둘러싼 분위기가 긴박하다는 방증이다. 이번 대책으로 서울 강남 3구와 용산구를 빼고 전국이 규제지역에서 풀렸다. 1·3 대책은 주택 정책의 대전환을 의미한다. 이제는 규제 시대를 지나 탈규제 시대로 접어들었다.
본격적인 탈규제 시대 진입
강남 3구와 용산구를 빼고는 투기지역, 투기과열지구, 조정대상지역,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지역이 대책 발표 이틀 뒤인 1월 5일 자로 해제됐다. 이제 강남 3구와 용산구는 규제지역의 섬처럼 남았다. 그런데 낙폭이 심한 송파구는 왜 규제지역에 그대로 남았을까. KB국민은행 시세에 따르면, 지난해 송파구 아파트값은 5.88% 하락했다. 이는 서울 25개 구 가운데 도봉구(-6.40%) 다음으로 많이 떨어진 것이다. 하지만 강남 지역이라는 상징성, 과거 집값 불안 지역이라는 점 때문에 해제 지역에 포함되지 않았다. 정부는 시장 추이를 더 지켜보고 해제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판단한 듯하다.
규제 해제 지역에서는 취득세, 종부세, 양도세 등 세금 부담이 줄어들고 대출이 확대된다. 개인적으로 가장 눈에 띄는 규제 완화는 투기과열지구에서 재건축 조합원 지위 양도 허용 같다. 이제는 강남 3구와 용산을 벗어난 지역에서는 재건축 조합원은 아파트를 언제든지 팔 수 있다(단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선 2년 이상 실거주자만 매수 가능). 종전에는 조합설립인가를 받으면 1가구 1주택자에 한해 10년 보유에 5년 거주를 해야 팔 수 있었다. 조정대상지역에서 풀린 곳에서는 1주택자가 집을 한 채 더 사도 취득세로 1~3%의 일반 세율을 적용받는다. 1월 5일 이후 취득한 1가구 1주택자의 경우 매도 가격 12억원 이하 주택을 팔 때 양도세 비과세를 위한 2년 거주 요건도 없어진다. 2년만 보유하면 비과세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다만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돼 있을 때 집을 산 사람은 소급 적용이 안 된다. 2년 보유뿐만 아니라 2년 거주 요건을 지켜야 한다. 비규제지역으로 풀린 곳에서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 최대 70%까지 늘어난다. 그만큼 돈을 많이 빌려 집을 살 수 있다는 뜻이다.
분양 시장 숨통, 옥석 가리기 심해질 듯
이번에 급히 대책을 내놓은 것은 미분양이 급속하게 늘어난 게 큰 요인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11월 미분양이 5만8000가구(누계 기준)를 돌파했다. 전달보다 무려 22%나 급증한 것이다. 물론 1993년부터 28년간 연평균 7만5000가구에 비하면 적지만, 증가 폭이 너무 가파르다. 정부의 미분양 위험 경계 수치인 6만2000가구에 근접하자 정부가 바짝 긴장한 것 같다. 건설사와 분양 시장의 연착륙을 위해서라도 긴급 대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번 대책으로 사실상 분양가 12억원 초과의 중도금 대출 규제가 풀렸다. 1인당 중도금 대출 5억원 한도도 없어졌다. 초고가 주택이나 중·대형 평수도 중도금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수도권과 광역시, 규제지역에 적용됐던 1주택자의 처분 조건부 분양도 사라졌다. 그동안은 당첨자는 입주 후 종전 집을 2년 이내에 처분하겠다는 서약을 하고 분양을 받았다. 이 제도 폐지로 1주택자들의 갈아타기 청약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최대 10년이었던 수도권 전매 제한 기간도 크게 줄어든다. 강남 3구와 용산구 등 규제지역은 3년, 그 외 서울과 인천·과천·광명·하남 등으로 대표되는 수도권 과밀억제구역엔 1년이 적용된다. 1월 17일까지 계약한 강동구 둔촌주공도 1년이 적용된다. 수도권 분양가상한제 주택 등에 남아 있던 2~5년 실거주 의무도 폐지한다. 이젠 입주 때 전세를 주고 나중에 입주하는 단계별 내 집 마련 전략이 가능해진 셈이다.
남은 규제도 풀릴까
강남 3구와 용산구의 규제지역 해제는 단기간에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아마도 주택 경기가 더 급랭하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해제를 쉽게 결정하기는 어렵다. 실거래 가격이 공시가격 이하로 떨어진 잠실을 포함한 송파구 주민은 억울할 수 있을 것이다. 6월 만기가 돌아오는 강남권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 여부도 관심거리다. 강남구 삼성·청담·대치동, 송파구 잠실동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이 6월 22일 만료된다. 집값이 급락하고 있어 해제될 가능성이 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은 매도자보다 매수자의 매입 조건을 까다롭게 하는 규제다. 허가구역에서 풀리면 직접 살지 않아도 갭투자가 가능해진다. 주택 시장 수요가 더 넓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다주택자에 대한 취득세 규제 완화, 중소형 아파트 매입 임대 사업 등록 허용 등은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여전히 주택 시장에 불확실성 변수로 남아 있는 셈이다.
부동산 시장 흐름이 바뀔까
최근 전국 아파트 매매수급지수가 소폭 상승했다.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감, 낙폭 과대 심리에 따른 반발 매수세 등이 맞물린 결과다. 그동안 거의 밑바닥에서 조금 꿈틀거리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매매수급지수는 여전히 기준치인 100를 크게 하회한다. 시장에 집을 사려는 사람보다 팔려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심리학에 ‘선택적 지각’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그렇지 않은 것은 보지 않게 되는 경향이다. 규제 완화를 놓고 집주인과 집을 살 사람은 동상이몽이다. 매도자들은 당연히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감을 키울 것이다. 내놓았던 급매물을 거둬들이고 있다. 과거에도 규제 완화책이 나오면 ‘급매물 회수, 호가 올리기 현상’이 나타났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매수 대기자들은 초점을 다른 데 맞추고 있다. 즉 하락 요인인 고금리, 경기 침체에 더 무게중심을 둔다. 이제 두 세력 간 힘겨루기가 진행될 것이다. 당분간 V 자형 반등은 어려울 것이다. 후행 지표이긴 하지만 주택구입부담지수나 PIR(가구 소득 대비 주택 가격 비율) 등 여러 지표가 여전히 높은 상황이다. 밑바닥에서 급매물 중심으로 거래가 이뤄질 수 있으나 상승 반전보다는 매물 소화 과정을 거칠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갑작스러운 고금리 태풍으로 시장을 지배했던 ‘공포’가 서서히 사라지고 있지만 여전히 살얼음판이다.
어떤 지표를 봐야 시장 흐름을 읽을 수 있나
우리가 체감할 수 있는 동행 지표는 매일 업데이트되는 서울시 아파트 거래량이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월 거래량이 500~700건에 불과하다. 가격은 속여도 거래량은 속일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침체 국면에서 거래량은 매수자 심리를 보여주는 바닥 지표다. 거래 절벽은 매수자가 집 살 생각이 별로 없다는 말이다. 서울 아파트 월별 거래량이 2000~3000건은 넘어야 거래 회복이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이보다 시장 흐름을 빨리 볼 수 있는 밑바닥 지표는 2000가구 이상의 대단지 랜드마크 아파트 거래량이다. 대단지 랜드마크 아파트는 시장에서 풍향계나 바로미터로, 시장의 선행성을 띤다. 따라서 일반 소규모 단지 아파트를 사더라도 항상 랜드마크 아파트 흐름에 주목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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