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정의 더다이브 <17> | 美 미디어 빅뱅은 끝나지 않았다] 디즈니·넷플릭스·워너를 둘러싼 초거대 M&A 시나리오 ‘솔솔’
올해 미국 미디어 업계의 최대 화두도 생존이다. 고금리·고환율·고물가 3고(高) 시대 넷플릭스, HBO맥스, 워너브러더스디스커버리(이하 워너), CNN, 파라마운트글로벌, AMC네트웍스 등이 직원을 해고 중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목은 그다음 시나리오다. 이들은 우선 급한 불을 끈 뒤 장기 생존을 위한 ‘메가 딜’에 나설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세상을 흔들 딜 세 가지
디즈니, 애플에 팔리나
지난해 11월 20일(이하 현지시각) 한밤중 밥 아이거 전 최고경영자(CEO)가 월트 디즈니 컴퍼니(이하 디즈니) CEO로 복귀했다. 아이거는 15년 동안 디즈니를 이끌다가 2020년 영광스럽게 퇴진한 인물이다. 그를 다시 불러낸 것은 디즈니의 실적 부진이었다. 지난해 3분기 디즈니+ 등 스트리밍 서비스 사업부의 영업손실이 14억7000만달러(약 1조8000억원)에 달했다.
그의 고강도 처방에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아이거가 디즈니를 애플 같은 기업에 매각해 강력한 시너지 추구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아이거는 픽사(2006년), 마블(2009년), 루카스필름(2012년), 21세기 폭스(2019년)를 차례로 인수하며 애니메이션 제작사였던 디즈니를 일약 세계 최대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끌어올린 바 있다. 아이거는 스티브 잡스가 설립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인 픽사를 인수한 인연으로 애플 이사회에도 참여했다.
두말할 나위 없이 애플의 현금 여력은 충분하다. 애플은 매년 80억~90억달러(약 9조9000억~11조2000억원)에 달하는 잉여 현금을 쌓아두는 초우량 기업이다. 그동안 팀 쿡 애플 CEO는 특허와 인재 중심의 소규모 기업 인수를 선호해왔다. 하지만 고(故) 스티브 잡스와 인연이 깊은 아이거의 복귀로 쿡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2022년 4월 실적 발표 때 쿡이 “대기업 인수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발언도 새삼 조명받고 있다.
컴캐스트, 워너 인수 가능성 커
1963년 설립된 컴캐스트는 미국 케이블 방송 2위 사업자이며, 미국 1위 인터넷 서비스 업체다. 2013년 NBC유니버설을 손에 넣는 등 노련한 인수합병(M&A)으로 미국 최대 미디어 복합 기업 중 하나가 됐다.
영화 전문 매체 ‘할리우드리포터’는 내부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 컴캐스트가 워너를 인수해 NBC유니버설과 합병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브라이언 로버츠 컴캐스트 CEO가 워너의 지배 구조 변경이 가능한 시점인 2024년 4월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자슬라브 워너 신임 CEO의 행보도 이런 전망에 무게를 실어준다. 그는 2022년 4월 초대형 합병 회사 워너가 출범한 직후 CNN+를 폐지하고 9000억원을 들인 영화 ‘배트걸’ 상영 계획을 보류시켰다. 산하 HBO맥스 제작진도 대거 해고하며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도 중단시켰다. 그의 비용 절감 조치를 두고 회사 매각을 위한 재무제표 개선 활동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물론 회사 대변인은 워너의 매각설을 부인하고 있다.
컴캐스트가 워너를 인수할 자금력은 충분하다. 원래도 재무 구조가 탄탄한 회사인데 ‘훌루 지분’이라는 꽤 괜찮은 실탄까지 보유하고 있다. 훌루는 넷플릭스에 대항하기 위해 월트 디즈니, 뉴스코퍼레이션(21세기 폭스), 컴캐스트, 타임워너가 공동 투자해 설립한 스트리밍 회사다. 그런데 디즈니가 폭스를 인수하고 타임워너의 모회사 AT&T가 훌루 지분까지 넘기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디즈니가 최대 주주로 올라섰다. 컴캐스트는 경영권을 행사할 수 없는 훌루 지분을 디즈니에 매각해 수조원의 현금을 쥘 가능성이 크다.
넷플릭스, MS에 매각설
2022년 넷플릭스는 처음으로 광고 요금제를 도입했다. 그해 1분기 처음으로 구독자 증가세가 꺾인 후 광고를 보는 대신 구독료가 싼 요금제를 속전속결로 내놓았다. 전문가들이 눈여겨본 것은 넷플릭스가 광고 파트너로 마이크로소프트(MS)를 낙점했다는 점이다.
넷플릭스가 자신의 운명을 좌우할 광고 파트너로 애드테크(adtech) 초보인 MS를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MS는 2021년 12월에서야 AT&T가 보유한 디지털 광고 솔루션 업체 ‘잔드르(Xandr)’를 인수했다. 잔드르는 외부 영업을 해 본 적이 없는 회사다.
미국 리서치 회사 니덤의 애널리스트 로라 마틴은 “넷플릭스가 왜 MS와 파트너십을 맺었는지 의아하다”면서 “넷플릭스가 MS를 자사를 인수할 유력한 후보자로 보고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은 것”이라고 말했다.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CEO는 2007~2012년 MS 이사회 멤버로 활동한 적이 있다. 브래드 스미스 MS 사장도 넷플릭스 이사회에 참여하고 있다.
두 회사는 게임 사업 부문에서도 시너지를 낼 수 있다. MS는 비디오 게임 스트리밍 서비스 확대를 원한다. PC·TV·스마트폰· 태블릿PC 등 서로 다른 기기에서 끊김 없이 게임을 즐기는 게임 스트리밍 시장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고의 스트리밍 기술을 보유한 넷플릭스는 최적의 파트너다. MS도 게임 사업을 강화하려는 넷플릭스의 야망에 도움을 줄 수 있다. MS는 게임 콘솔(X박스) 사업을 수십 년째 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2022년 인수한 ‘스프라이 폭스(Spry Fox)’를 포함해 총 6개의 게임 제작사를 사들였다.
끝없는 격랑, 왜?
1980년 50여 개의 미국 미디어 기업은 숱한 M&A를 거치면서 단 4개 사(월트디즈니컴퍼니·컴캐스트·워너·파라마운트글로벌)의 우산 아래로 들어가게 됐다. 미국 미디어 업계는 1996년 이후, 2010년 이후 거센 파고에 휩싸이면서 재편된다. 1996년엔 미국 전기통신법 개정으로 미디어 소유 집중 규제가 완화돼 M&A 바람이 불었다. 2010년은 넷플릭스 스트리밍 혁명이 시작된 해다. 그 위력을 감지한 전통 미디어 기업들이 M&A로 몸집 불리기에 나섰다.
케이블방송·인터넷TV(IPTV)·위성방송 같은 전통 유료 방송을 끊고 넷플릭스를 구독하는 이른바 ‘코드 커팅(code cutting)’은 계속 진행 중이다. 미국 유료 방송 시장 매출은 2016년 약 1169억달러(약 146조원)에서 2020년 911억달러(약 113조원)까지 줄었고 2025년에는 2016년 대비 절반 수준인 647억달러(약 80조원)로 쪼그라들 전망이다.
거대 테크 기업이 미디어 영역으로 계속 진군하는 것도 미디어 빅뱅이 가속화한 이유다. 2022년 아마존은 스파이 영화 ‘007’ 시리즈와 스포츠 영화 ‘록키’ 시리즈 등을 보유한 MGM을 85억달러(약 10조원)에 사들였다.
애플TV+의 오리지널 영화 ‘코다’는 2022년 아카데미 작품상까지 거머쥐었다. 넷플릭스가 제작한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에미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6관왕에 올랐다.
미디어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스트리밍 혁명을 일으킨 넷플릭스가 정작 생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넷플릭스는 190여 개국에 진출해 단숨에 스트리밍 제국을 건설했다. 하지만 비즈니스 모델이 구독 하나로 단출하다는 점은 약점으로 꼽힌다.
빅테크 규제는 변수
앞서 언급한 초거대 M&A 시나리오가 성사되려면, 경쟁 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게 쉽지 않다. 당장 ‘아마존의 저격수’ 리나 칸이 수장으로 있는 미 연방거래위원회(FTC)가 MS의 대형 비디오 게임 업체 액티비전블리자드 인수에 제동을 건 상태다. 인수가격은 687억달러(약 85조원)였고 올 6월 안에 인수를 마무리할 예정이었다.
미국 1, 4위 출판사 간 약 3조원 규모의 합병 여부로 관심을 모았던 펭귄랜덤하우스와 사이먼앤드슈스터 간 M&A 거래도 결국 무산됐다. 또 구글 모회사 알파벳은 광고 사업 부문을 분사할 것으로 알려졌다. 반(反)독점법 소송을 피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반독점 소송에서 항상 이기는 것은 아니다. 2018년 미 법무부는 AT&T와 타임워너의 합병에 대한 반독점 소송에서 크게 패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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